50년의 해로, 그 비밀.

우리모두는 그 모습과 살아가는 모양새는 제각기 달라도 한결같이 자기인생을
살고 있다.
인생(人生)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인생에는 통과의레 라는게 있다.
통과의례(通過儀禮)는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반드시 거치게 되는 주요
의식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관,혼,상,제 다.
관례(冠禮)는 옛날에 남자가 성년이 되면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하는 예식이며,
혼례(婚禮)는 혼례식의 준말로서 결혼이고,
상례(喪례)는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이며,
제례(祭禮)는 제사를 지내는 예법, 예절이다.
같은 인생을 불교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로 풀이한다.
인생통과의례에서 혼례를 명시하는 것은 결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며
이를 인륜대사(人倫大事)라고도 부른다.
인간의 생활에서 그만큼 큰 행사라는 뜻으로서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1세기인 지금 ‘결혼’은 고전적인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우선 결혼안하고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고 개인적인 선택도 많다.
앞으로도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다음이 남녀간 남친, 여친으로 지내는 사이가 있고,
결혼예식없이 동거하는 거플도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단연많고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전통적인 가족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도 이 주류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결혼하는 숫자에 버금가게 이혼도 많으며 따라서 재혼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60세 이상의 노부부중 약 38% 정도가 황혼이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시작된 졸혼(卒婚)이라는 이상한 풍속도 볼 수 있다.
앞으로 남녀관계로서의 결혼문화도 상당회 바뀔것같다는 예측을 해 볼 수 있다.

우리부부는 작년5월 금혼식을 기념했다.
금혼식(金婚式)은 서양풍속 으로서 결혼50주년을 축하는 의식이다.
남남인 남녀가 서로만나 결혼하고 함께 50년을 살았으니 대단한 일이다.
정말 결혼식 주례사처럼 100년해로하고 있는 중이다.
해로(偕老)는 부부가 한평생을 같이살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그날 나는 아내에게 흑장미 50송이를 선물했으며,
아내의 애창곡인 이은상시, 박태준곡 사우(思友)-동무생각을 첼로로 연주해서
들려줬다.
그리고 둘이 금혼식기념여행으로 일본의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나는 우리 부부의 생활에 대해 늘 감사하고 있다.
1960년대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으며 남매를 낳아 제대로 키워
독립시켰다.
칠십중반인 아내와 팔십대인 내가 지병없이 건강한것도 감사할 일이다.
제집에서 경제적으로 큰걱정없이 사는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이가 드니 전보다 감사할 일들이 먼저보인다.

우리부부가 다른 부부들과 특별히 다른점은 없다.
같이 어려운 시기를 살면서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으며 서로를 이해하지못해
부딪힌일도 많다.
내가 현역일때까지는 나는 우리부부의 일상에 대해 특별히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정년퇴직후 노후를 살면서 비로서 우리부부가 대단히 독특한 삶을 산다는
점을 깨달았다.
우선 두 사람 다 건강한 것이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부부를 아주 젊게보고 있다.
두사람다 운동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게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건강관리를 열심히 한 덕이기도 하다.
몸이곧고, 특히 두 사람다 걸음이 아주빠르다.
그래서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모양이다.
아내는 아주 오래동안 매일 에어로빅을 하고있으며,
나는 반평생을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한다는게 우리의 지론이다.
조금만 게을러도 할수 없는게 운동이다.
특히 노년에서 지속적인 운동은 아주 중요하다.
오래사는게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부부가 결혼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만한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잘 생각해 보면 몇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둘은 처음부터 그 가치관에서 생각이 같았다.
‘보이는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두사람 다 사막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사막여행을 여러번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사막은 보이지않는 보물로 가득찬 곳이다.
삼대종교가 사막에서 시작된게 그런이유다.
가치관이 같으면 이상(理想)도 같아진다.
값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가 그렇다.
취향도 비슷한데가 많다.
책방, 빵집, 문방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것도 두사람 같다.
TV를 안 보는것도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할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 내용이 탁월한 다큐, 영화, 음악프로는 시간을 내서라도 시청한다.
이런 프로들은 언제나 내가 검색해서 찾아낸다.
지금은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이라 좋은프로도 많다.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우리부부는 같은 평안도사람들이다.
나의 본관은 평북강계이며 아내는 평남의 진남포다.
두집모두 월남한 가족들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도 같다.
또하나 중요한 것이 두사람 모두 모태신앙의 장로교인들이다.
지금도 주일이면 빠지지않고 교회에 나가며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육아에서 수고는 아내가 단연 많았지만 우리부부는 자녀들을 제대로 키웠다.
아들은 의대를 졸업, 심장내과-심혈관 전문의가 되어 대학병원에 봉직하고 있으며
딸은 미국의 명문사학, 페사디나 소재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두아이 모두 자기들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오늘은 외고에 다니는 손녀와 통화했다.
스페인어가 어렵다는 얘기를 했으며 공부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가슴아픈 얘기도 들었다.

우리부부는 도전정신과 호기심에서도 아주 비슷하다.
런던에서 2300cc의 웨곤을 빌려타고 2주간 영국을 일주한 것이 그런 예다.
지도한장 들고 낯선 외국에서 초행길에 나선다는 것은 도전정신과 호기심, 그리고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더구나 영국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는 좌측통행이다.
운전은 아내가 전담했고 나는 지도를 읽었다.
매일 낯선집에서 민박하는 재미도 아주컸다.
지금생각해도 정말 기억에 남는 여행이다.
프랑스 빠리에서는 중산층 프랑스인 가정에 한달을 민박했다.
프랑스와 프랑스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한지붕밑에서 먹과자면서 지낸 경험도 정말 특이한 것이었다.
우리부부는 지하철과 버스만 이용, 걸어서 빠리를 뒤지고 다녔다.
‘마르모땅미술관’ 은 지금도 다시 가 보고싶은 곳이다.
악의제국 쏘련이 붕괴되던 1991년 가을,
그곳을 여행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 큰 도시 모스크바에 문을 연 가게는 하나도없는 사회주의의 마지막을 봤다.
그건 그대로 유령의 도시였다.
굼백화점에선 포장지와 끈이없어 마분지같은 종이에 노끈으로 물건을 싸줬다.
호텔앞 쓰레기장에서 먹을 것을 뒤지던 그곳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볼세비키혁명이 용도폐기되는 현장이 그랬다.

우리부부와 다른부부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떤것일까.
그게 ‘창의적인 삶’ 이다.
아내는 현역 수채화화가이며 지금은 9월의 초대전을 위해 그림그리기에 전력투구
하고 있다.
아내는 이미 국전 구상부문에 입선한 화가이며 매일 매일 그림 그리는일에 충실한
현역이다.
그림은 고도의 창의적인 정신작업이다.
아내에게는 정말 엄청난 자료들이 있다.
화구도 다양하고 그 양도 많다.
붓만도 백개가 넘는다.
내가봐도 작년그림과 금년그림은 확연히 다르다.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차에 화구들을 싣고 섬진강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는 정도다.
나는 아내를 위해 화판에 종이를 붙이고 떼내는 작업을 하고있으며 지금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같은일을 되풀이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아내는 칠십중반의 나이지만 그림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현역이기도 하다.
사람이 나이들어서도 열중할수 있는 자기일이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도 아내만큼 바쁘다.
지금도 한달에 신간 다섯권정도를 읽고있으며
주 1회 블로그에 글을써서 올리고 있다.
글 한편을 쓰기위한 노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자료들을 찾아야 하고 plot를 세우고 거기에 살을 붙이는 일련의 정신작업은
늙을짬이 없을정도다.
컴퓨터에서 각종 자료들을 찾고, 홈쇼핑도 하고, 인터넷뱅킹까지 하고 있다.
여기에 매일 첼로도 빠지지 않고 있으며 목관 클라리넷도 가지고 있다.
워낙 음악과 악기를 좋아하고 잘하기 때문이다.
걷기운동도 빠지지않고 계속하고 있다.
내 건강의 바탕은 걷기운동이라는 신념이 있다.
다른하나는,
아내의 그림그리기가 연속성을 가지기 위해 내가 식사준비하는 일이 더 많다.
밥은 며느리가 부탁할정도로 잘짓고 있으며 이제는 나만의 반찬도 여러 가지다.
아내는 내가 손맛이 있다고 한다.
이게 칭찬인지 음모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가지 더 하고싶은 얘기는,
아내도 나도 ‘평생학문’ 이 있다는 점이다.
아내는 미술사와 영어에 열심이다.
지금도 매일 영문소설을 읽고 있다.
나는 평생 ‘문화사’를 공부하고 있다.
노인과 학문은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우리부부는 평생학문, 공부하는 부부다.
공부는 사람을 향상시키고 활력이 있게하며 삶에서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
깨달음의 기쁨은 학문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제일 많은게 우리 두 사람의 책이다.
서가가 다 차서 방 바닥에 쌓아두는 수준이다.
이제 우리 두사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하나 더 얘기하자.
우리부부는 외식을 아주 즐긴다.
비싼집도, 싼집도 맛있는집을 잘 찾아다닌다.
그중 한곳이 경찰서의 구내식당이다.
일식4000원인데 자유배식에 맛이 아주 좋다.
매주 한번씩은 가기 때문에 정, 사복경찰들과도 친숙한 사이가 됐다.
때때로 우체국 구내식당에도 간다.
우리부부에게 그런곳은 아주 즐겁고 신선한 장소다.
그런 일탈을 할수있는게 우리부부다.
50년해로의 비밀은 지금까지의 얘기들속에 감추어져 있다.

부부사이는 가는실이 변해서 굵은밧줄이 되는 것이다.- 임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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