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강산, 그 아래.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외국인 CE0가 있다.
그는 아마추어지만 전문가 수준의 산악인이다.
순환보직에 따라 세계 여러나라에 근무했으며 그때마다 그 지역의 산들을 등반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몇 년째 한국에 근무하고 있으며 주말마다 등산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이런말을 했다.
‘한국의 산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우리는 작은땅 이지만,
호남과 영남의 산세가 다를만큼 산들이 개성적으로 아름답다.
나는 유럽의 산악지대를 여러번 여행했으며 직접 렌트카로 다녀본 경험도있다.
얼마전,
신록이 짙어지기 시작했을 때 경춘고속도로로 강원도에 다녀왔다.
길 양옆으로 나타나는 산세의 아름다움은 유럽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빼어났다.
우리의 산천은 그렇게 아름답다.
우리들이 잘 모르고 있을뿐이다.

일찍이 우리조상들은 아름다운 이땅을 ‘금수강산’ 이라 불렀다.
금수(錦繡)는 수를 놓은비단, 또는 화려한 옷이나 천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산천이 비단에 수를 놓은것처럼 아름답다는 적극적 표현이다.
사실 하나도 틀린말이 아니다.
국토의 70%가 산 이지만 아름답기로는 세계최고수준인 것이다.
나와 가까이 지내던, 지금은 작고한 지인한분이 있다.
구세대지만 이미 그때 외국유학을 했을만큼 깨어난 분이었고 고위공직에 오래
있었다.
그가 늘 한탄하던 얘기가 있다.
‘산천은 금수강산인데,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이 문제야.‘
사람들이 빼어난 산천, 강산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선진국에서 생활해본 그의 눈엔 그점이 크게 두드러졌고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그분이 평소에 늘 강조한 것이 우리와 선진국의 ‘생각하는 수준의 차이’ 였다.
사람의 생각에도 서로다른 높이가 있다는게 그분의 지론이었다.

우리는 생각도 수입해서 살았다.
전 시대인 ‘조선’ 은 중국의 생각을 수입해서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게 성리학(性理學)이다.
내 생각이 없어 남의 생각으로 산 셈이다.
성리학은 중국의 송(宋), 명(明)대에 성했던 유학의 한 계통으로서,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논한 유교철학 이기도 하다.
남송의 주희가 이를 집대성해서 ‘주자학’ 이라고도 부른다.
성리학의 핵심부분은,
명분론과 예학이다.
명분(名分)은 신분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하는 도의상의 본분이며,
표면상의 이유나 구실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양반은 얼어죽어도 겻불은 안쬔다.’ 는게 대표적인 사례다.
겻불이라도 쬐고 살아남는게 실리(實利)라면 양반의 신분-체면을 지키기 위해
얼어죽는 길을 택하는게 명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얘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예학(禮學)은 예법에 관한 학문으로서 예의로 지켜야할 규범과 법칙에 대한 것이다.
깨어있는자들의 눈엔 일본의 조선침공이 눈앞에 왔는데,
어리석은 조정은 죽은황후의 장례절차와 며칠장으로 할것인가를 놓고 패를갈라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부국강병’의 대처를 못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성리학이 이땅에 남겨놓은게 지금까지도 우리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체면문화’ 다.
체면문화는 외화내빈을 낳았다.
같은 화려하나 그속은 텅빈게 그것이다.
체면은 남을 대하는 관계속에서 자기의 입장이나 지위로 보아 지켜야 한다고 생각
되는 위신이다.
양반이 이 위신 때문에 얼어죽은 것이다.
‘남의 눈이 있지않은가.’
‘남 부끄럽다.’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내가 나를위해 내 생각으로 사는게 아니라 남의눈, 남의 평가를 위해 내가 남처럼
사는게 체면문화다.
실속과 명분에서 실속을 버리는 가장 어리석은 삶의 방법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수많은 적령기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못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가 체면 때문이다.
평균 5천만원에서 2억원까지 소요되는 결혼자금을 마련할수 없기 때문이다.
이 큰돈이 왜 필요한가.
남에게 보이기위한, 예식장에서의 ‘화려한형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아까운 돈을 그렇게 체면치레에 써 버리고 실제의 신혼-생활은 셋집을
전전하며 고생한다.
신부, 목사, 스님앞에서 가족과 친구몇명을 초대, 조촐하지만 실속있는 결혼식은
왜 할수 없는가.
많은 젊은이들이 인습과 관행의 포로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걸깨는 용기가 없다.
신랑,신부 두사람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조촐한 결혼식에 작은거처를 임대
해서 시작하면된다.
그렇게 시작해서 살림을 키워나가면 될 것을 엄청난 돈을 무리하게 마련,
체면을 위한 형식에 써 버리고 속빈강정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다.

또하나의 극단적인 체면문화가 대학졸업-백수가되는 사회현상이다.
이미 중학교 졸업반쯤되면 공부쪽으로 가야할 애들과 그 반대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때, 대학가봐야 별볼일없는 애들까지 죽기아니면 살기로 학원을 전전하며 입시에
매달린다.
백수가 누군가, 경쟁에서 밀린 탈락자들이다.
처음부터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일을 택해 직업교육을 받았다면 잘 살수 있었던
사람들이 ‘대졸자’ 라는 간판, 체면을 위해 인생자체가 망가진 것이다.
백수의 앞날을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프다.
부모들의 어리석은생각과 판단, 그리고 잘못된 사회풍토가 멀쩡한 애들을 망친
것이다.
이미 시작된 4차산업시대는 ‘체면’ 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고도의 전문직이 아니면 선발자체가 어렵다.
분명, 이제는 시기적으로 체면문화를 버리고 실리를 택할때가 됐다.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이제 보통가정에 있는 일반적인 가전제픔을 열거해보자.
TV, 라디오, 오디오세트, CD플레이어, 유선전화,
에어컨, 선풍기, 전기난로,
세탁기, 건조기, 다리미,
냉장고, 김치냉장고, 냉동고,
가스와 전기오븐, 전자레인지,
컴퓨터, 테블릿피시, 스마트폰등
옛날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들로 지극히 편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많은 가전제품중 우리가 ‘발명’ 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남의것을 가져다 더 좋게만드는 재주는 있지만 발명자체가 전무한 것이다.
무슨이유일까.
대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어떻게’ 만 있지 ‘왜’ 가 없다.
이런 생각의차이는 근본적인 것이고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 조건이 된다.
‘왜’ 가 없으면 ‘발명’ 도 없다.
생각의 수준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체면 때문에 실리를 버렸고 실리를 버리니 생각의 내용이 없는 것이다.
겉은 있는데 속이 없는것과 같다.

체면문화는 교육도 다른게 되게했다.
‘질문이 없는교실’ 이 그것이다.
오직 입시를 위한 주입식, 암기교육만 있고 질문과 토론이 없다.
‘왜’ 가 ‘어떻게’ 에 밀려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흑백논리와 이분법에 갇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것도
토론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본적인 틀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한 우리는 선진국이 못된다.
밤낮 남이 만든것들을 개량하는 중진국 수준에 주저앉게된다.
망국적인 지금의 ‘체면문화’ 와 ‘외화내빈’을 걷어내는 길은 생각의 틀을 바꾸고
그 수준을 높이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잠자리채를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애들이 ‘호기심’을 가질수 있을 때 진짜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호기심이 바로 ‘왜’ 로 이어지기 때문이며 거기에서만 발명이 나올수 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내일인 애들을 학원과 입시에서 해방시켜야 된다.

얼마전 개봉했던,
다르덴 형제가 만든 프랑스영화 ‘언 노운 걸’ 이 있다.
아델 하이넬이 열연한 영화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음악’ 이 없는데도 그 내용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수작이다.
지극히 검박하고, 검소한, 과장이없는 일상의 디테일을 그린 영화지만,
‘인간정신의 지고함’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설득력이 아주컸다.
헐리웃의 블록버스터 10편이 당할수 없는 수준높은 작품성이 있는 영화다.
그건 ‘생각의 수준’ 이 만든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와 우리영화를 비교하면 무엇을 우,열 이라고 하는지를 알게된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미칠수 없는 생각과 수준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이제는 남의생각, 철학을 수입해서 사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고 ‘어떻게’에서 ‘왜’로 가야한다.
그래서 우리자녀들이 ‘왜’ 라는 질문을 할수있을 때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삼겹살에 소주마시고 노래방 가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거기서 끝나는게 문제인 것이다.
생각이 그 이상의 수준이 되어야 소프트웨어에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더이상 수입된 남의 생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내생각, 우리생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수준을 계속 높여나가야 한다.
하드웨어만 으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으며
기존의것들을 깨지않고는 생각의 수준을 높일수 없다.
잘못된 결혼문화와 입시교육이 그런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들도 하루빨리 ‘계몽주의’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달걀을 깨지않고는 오물렛을 만들 수 없다.-서양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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