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의 전쟁.

최근의 화두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이다.
8월위기설도 그 하나였으며,
나처럼 철이들어 6.25전쟁을 겪은 세대는 치가 떨리는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전쟁에 대한 공포는 격어보지 않으면 그 무서움을 결코
알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은 딱이 피란갈곳도 없다.
무기의 첨단화, 또는 핵무기 앞에서는 전,후방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일단 전쟁이 시작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전부 깨지고 파편화한다.
그 불편과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붉은완장을 찬 동네 빨갱이가 어제의 주인을 몽둥이로 내려치는 광경쯤은 다반사다.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에서 추위와 굶주림까지 겹치면 생을 포기할수 있는 지경까지
갈수있는게 전쟁이다.
그래서 아비규환(阿鼻叫喚-아비지옥과 규환지옥, 또는 여러사람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울부짖는 참상)이 바로 전쟁의 다른이름이다.

실상을 말한다면,
전쟁이 일어날지 말지는 아는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의 형편대로라면,
전쟁이 터지면 대한민국은 무참하게 깨진다는 사실이다.
첨단무기도 무기지만,
지금 우리는 국민도, 정치권도, 집권세력도 전혀 전쟁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전쟁을 직접 담당해야하는 ‘똥별들의 군대’ 가 깊이 썪어 그 기능을
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북의 핵무기와 우리의 재래식무기는 그 비대칭성 때문에 장난감수준이다.
전쟁발발을 전제할 때,
우리가 전쟁의 주체가 아니면서도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전쟁터’가 되는 비극이
있다.
동서 냉전시대 공산불럭과 자유진영의 대리전이 곧 6.25전쟁이었던 경우와 같은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는게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땅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이유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그 전쟁을 견디어내는 힘은 ‘싸울의지’ 다.
전쟁이 나면 총을 들것인가를 물었다.
장년들은 60% 이상이,
청년들은 40%정도가,
청소년들은 20%가 총을 들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중 30%이상이 회외로 도피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시작되면 외국에 있던 국민들이 총을 들기위해 조국으로 급히
돌아간다.
아랍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섬처럼 떠 있는 작은 이스라엘이 생존하는 이유다.
현대의 전쟁은 혼자서는 감당못한다.
유럽에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지금의 종북좌파세력과 정권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시비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떠나도 북의 핵을 견딜수 있을까.
‘우리의 동의없이 한국에서의 전쟁은 없다.’
문재인의 이 천진난만한 헛소리가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통할수 있을까.
문재인은 지금도 계속해서 ‘대화’를 외치고 있다.
함량미달이기 때문에 세상돌아가는 형편을 읽지못하기 때문이다.
이또한 우리의 비극이다.

북의 김정은은,
문재인의 ‘개성공단’ 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거듭 얘기하고 있을 때
이제 남한은 자기들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고 판단할수 있다.
근자 부쩍 주한미군철수가 주장되고 있는 것이 그 증좌다.
종북세력들이 미 대사관을 포위, 주한미군은 철수하라고 외치는 것은 노동당의
지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필사적으로 핵에 매 달리고 있으며 적어도 1단계는 성공적이다.
미국이 김정은을 ‘상대’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게 대화로 이어지고 ‘평화협정’ 으로 이어지면 주한미군은 철수할수 있다.
그다음,
남반부의 적화통일은 핵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계산이다.
우리가 결사적인 태도로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없는한 이 파도를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슨일이 있어도 통일전까지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있어야 하는 당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죽고사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은 취임과 동시에 청와대의 안보라인에서 군을 뺐고,
그 자리를 아마추어 외교팀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지금의 북핵위기상황 에서도 외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후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를 비육군으로 채우고 군을 안보의 보조기능으로
격하했다.
사드배치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대신 ‘대화’를 위한 외교에 치중하면서 북이 우리를 오판할수 있는 빌미를
줬으며 동맹인 미국의 조야가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힘-군사력의 뒷받침없는 외교와 평화는 세계역사에 존재해본 일이없다.
친북좌파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행보가 자칫 국가의 명운을 걸게하는 위험이
될 수 있는 소이가 그것이다.

이미 지적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리는 독자적인 행보가 제한적 이었고 반드시 누군가와 협력해야 생존할수 있는
운명이었다.
중국편에 섰던 수백년동안,
그리고 일본의강점으로 지낸 수십년동안 우리는 불행했고 가난했다.
1945년의 광복이후 70여년은 한민족으로서는 처음 맞이한 ‘특별한시기’ 였다.
정치적민주화와 산업화가 그것이다.
6.25전쟁 참화로 잿더미였던 나라가 불과 두세대사이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세계는 이를 ‘한강의 기적’ 이라고 부른다.
이 놀라운기적이 미국없이 가능했을까.
그들은 돈으로 정부예산을 지원했고,
민주주의를 세웠으며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열어 우리의 산업을 발전시켰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 이었다.
우리세대는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기적은,
반공포로석방 이라는 마지막 한수까지 던지며 한,미동맹을 맺기위해 미국과 싸운
이승만의 승리가 그 단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은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6자회담을 골백번해도 북한핵은 해결되지 않는다.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며 그들의 일관된 1단계 목표는 성공한
셈이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6차핵실험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리석은 햇볕정책은 그들의 핵 개발을 위해 막대한 돈은 대 줬을뿐이다.
북은 어떤경우에도 핵문제에 관한한 우리와 어떤 협상도 양보도 없다.
그게 그들의 생명줄이고 남반부의 적화통일을 위한 마지막 열쇠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대로 지금의 문재인정권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는 북과의 ‘공존’ 이다.
앞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개헌’ 이 진행될 때 그 내용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눈을 밝히고 잘 살펴여 한다.
문재인정권이 지향하는 목표가 ‘사회주의’ 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매일매일 그 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을 선택한 어리석은 인간들까지도 피나는 대가를 치를수 있음을 명심
해야한다.

이제 몇가지 시나리오를 도출해보자.
우선 북한핵과 균형을 가지기 위해 우리도 핵무장을 하거나 전술핵을 다시 들여
오는 일이다.
핵무장은 국제적인 제재가 따를것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전술핵재반입은 주한미군의 영역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정은이 6차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서는 충분한 명분도 있다.
한,미간에 조율을 거쳐 조속히 집행해야하는 위기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음이,
북한핵의 단계별 축소를 조건으로 미,북 관계의 정상화와 평화협정, 주한미군철수
및 한,미동맹의 파기를 내 주는 것이다.
악몽같은 얘기지만 이미 우리쪽에서 먼저 거론하고 있다.
그건 종북좌파들이 집요하게 주장해온 일 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어떤 형태의 무력, 전쟁으로든 북한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이지만 쉽지가 않다.
최악의 경우는,
북의 핵공갈, 위협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 다음사태는 굳이 여기서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중 우리와 무관한 것은 없다.
우리가 결연한 의지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문제는 종북좌파정권에 그럴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의 문재인정권은 완전한 ‘속수무책’ 이다.

우리들이 문재인정권에 나라의 정치를 위임한 기간은 5년이내다.
지금 그들은 이 짧은기간안에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려 이미 서두르고 있다.
우선은 내년6월의 지자체선거가 중간평가가 될 수 있다.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들, 유권자 국민이다.
우리가 냉정하고 지혜롭고 실리적 이라면 파국은 면할수 있다.
그러나 다시한번 촛불같은 광장민주주의에 의존한다면 파멸이다.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목욕물울 버리면서 애기까지 내 버린다.- 독일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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