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편해지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용서로편해지는사람은결국자기자신이다

은퇴를하고나니종종83년의인생을돌아보게된다.홀로코스트생존자로서아직도회상하기에너무나고통스러운일들이많다.나와내가족을비롯하여수백만명의인생을송두리째바꿔놓은비극은어쩌면한권의책에서비롯되었을지도모른다.아돌프히틀러(AdolfHitler)의‘나의투쟁’이다.나치즘의바이블로간주되는이책으로인해수많은인명이희생되었고세계사의흐름이바뀌었다.나는그효과를,그파괴적인부분과건설적인부분모두를65년이상느끼며살아왔다.


1930년대《나의투쟁》은유럽에서성경다음으로가장많이팔린책이었다.그책은내가자라난폴란드의작은마을에서도유명했다.특히반유대주의집단에서는대유행이었다.열여섯살의나도얄팍한호기심이발동하여그책을사서읽었다.히틀러가언급했던지정학적문제며세계경제,국제조약등에관한얘기는거의이해하지못했지만유대인에대한왜곡된묘사에서나는몸서리쳤다.

영악했던히틀러는많은사람들을자기쪽으로끌어들이려면한가지이슈만던져야한다는것을잘알고있었다.너무많은이슈는혼란만초래할것이었다.그래서자신이가장좋아하는이슈,반유대주의를선택했다.내주변의반유대주의자들이왜그렇게히틀러에열광했는지이해하긴어렵지않았다.폴란드에정착한우리가족의역사는몇백년을거슬러올라가지만유대인으로서우린아직도이방인이었고곧잘박해의대상이됐다.

히틀러가탱긴유대인에대한증오의불길이마구번져나가면서내고향마을에서도유대인을겨냥한물리적공격이눈에띄게잦아졌다.시간이흐를수록삶은견딜수없는것이되어갔다.그런데우리가족은왜떠나지않았느냐는질문을종종받는다.우리도떠나려했지만선택의여지가별로없었다.전세계민주국가들이유대인을받아들이기를거부했기때문이다.대안이라곤조상의땅인이스라엘로돌아기는것이었지만이마저도꿈같은희망사항일뿐이었다.수백만명의다른유대인들처럼2차세계대전이발발하자우리가족도포로가되고말았다.

열일곱살때부터스물두살때까지5년동안포로수용소에갇혀살았다.그기간의대부분을죽음의수용소인마이다네크의위성캠프인폴란드부친캠프에수감돼있었다.그러다전쟁이끝날무렵뒤른베르크에서남동쪽으로112킬로미터가량떨어져있는바바리아의플로센부르크로이송됐다.

나는살아남기위해선좋은컨디션을유지해야하며가능한한매일일하러나가야한다는것을재빨리알아차렸다.당시의상황에서이는무척까다로운주문이었다.많은사람들이알면서도지켜내기어려울정도로말이다.수백만명의사람들이희생되었지만나는그지옥에서살아남았다.하지만먼지한톨만한희망외에는의지할데도없이그

끝이어디인지도모르게절망의나락에하염없이빠졌던얼마나많았던가.

그러던194448일,나는두명의나치위병에게심하게두들겨맞아시력을잃고말았다.맹인이된뒤엔포로수용소에서살아남을기대를접었다.하지만운이좋았다.병영감독관인에릭은유대인이아니라독일인정치범이었다.그친구와,나와함께수감된동생지그문트가대부분의장애인수감지들이맞닥뜨리는’즉시처형’이라는운명에서나를보호해주었다.

그들의고귀한행동은’네형제의수호자가되어라"는성경말씀을완벽하게실천한것이었다.에릭이독일인이었기에캠프의장교나위병들은그를믿었다.그는그믿음을나를지키는데이용했다.거짓말을하고필요할땐날위해알리바이도만들어주고,내가그들의눈에띄지않도록해주었다.맹인유대인수감자를보호하다가들키는날엔어떤결과가빚어질지를뚜렷이알면서도말이다.그의친절과나를도외줬던캠프의다른유대인,비유대인들덕분에나는인류에대한믿음을버리지않을수있었다.

1945423일수백명의유대인들과함께5열종대로줄을지어플로센부르크에서알수없는목적지를향해독일땅을가로질러죽음의행진을하고있었다.며칠전플로센부르크를출발할때포로들의숫자는2.500여명이었지만3분의2가길에서죽었다.남은800여명도간신히목숨을부지하고있었다.나치간수가미군부대가다가오는소리에놀라도망쳤을때우리는길고길었던악몽이비로소끝났다는것을알았다.

자유의몸이된데대한감사도잠시,나는곧자기연민에빠지고말았다.’풀려났으니다행이야.그래좋아,하지만난장님이됐잖아.’내동생을빼곤우리기족도모두사망했다.나는혼자나마찬가지였다.너무두려웠다.포로수용소에서늘따라다녔던죽음의공포보다지금의삶이더무서웠다.

나는살아남은소수의행운아였지만히틀러의책을읽던그순간고삐풀린공포가평화시에도여전히나를파괴하려들었다.내인생을다시수습하기위한길고어려운과정에돌입했다.194512월지그문트는내가뭔헨대학의안과클리닉원장인한스베셀리박사의진료를받을수있도록예약을해주었다.

철저한검사끝에그는이미명의의사가내게했던선고,평생보지못하게것이며다른방법이전혀없다는사실을재확인해주었다.프리메이슨회원이자나치를싫어했던베셀리박시는기분을금세알아겠다.

젊은친구,비통과환멸에빠져있다고해서당신에게좋을게하나도없소.절망에빠져있는대신유대인이히틀러가왜곡한것처럼그런사악한존재가아니란것을전세계에알리시오.인권을존중하고관용을옹호하는햇불을드시오.그일이당신의유산이되도록,나치가파괴한사랑하는가족들에대한추모가되도록말이오"

이짧은격려가내겐아주심오하고긍정적인인상을주었다.그래,나는두틀겨맞아장님이되었지.하지만그렇다고내가완전히부서진것은아니야.다치지않은미음으로다친감각을극복해나갈수있고말고.히틀러가퍼뜨린거짓을진실로바꾸는데일생을바치겠어.나는속으로그렇게다짐했다.

베셀리박사의충고에따라바바리이에있는맹인들을위한재활학교에등록했다.유대인은내가유일했다.학생들은모두나치친위대장교나병사출신이었다.어느일요일점심을먹고나서우리는식당에앉아잡담을나누고있었다.갑자기한무리의학생들이나치노래를부르기시작했다.나는즉시일어나기숙사방으로와버렸다.2강사들가운데명이들어와좀전의사태에대해사과했다.

"괜찮습니다"나는차분히말했다.’저나치무리들은다행스럽게도히틀러가죽었고편협함과편견은앞으로더이상발붙일곳이없다는것을배워야합니다.히틀러가《나의투쟁》에서묘사한유대인의모습은완전히왜곡된것입니다.나는진실을세상에알리는것을사명으로삼았습니다.저런사태쯤은내가갈길에조금도방해가되지않습니다"


히틀러와그의증오에가득찬책에의해촉발된내사명은그후몇년간내가부딪혔던많은도전들을극복해나갈있는힘과집중력을가져다주었다.1948물리치료학위를따고졸업을했다.베셀리박사취직자리를알선해주며나를도와주었다.

내가족을살해하고내시력을앗아간독일인도있었지만나를도와준독일인도있다는사실을절대잊지못할것이다.한명은포로수용소에서지신의목숨을걸고내생명을지켜줬으며,또한명은나를삼켜버릴듯했던절망과비통과증오에서나를건져내새로운인생을설계하도록도와주었다.

가톨릭신자인한독일여성이눈먼유대인물리치료사에게인생을걸어볼결심을하고나와결혼했다.그녀의조국이얼마나사악한짓을저질렀는가를폭로하는데일생을바치기로결심한나와함께말이다.

유대교신앙에따라들을르고교육하며민족의지속성을이어가는우리의다했다.

헬렌켈러는이렇게썼다.교육의가장숭고한결과는관용이다.홍수와번개도,도시를파괴한자연의잔인함도,관용을잃어버린편협한한사람이자행하는파괴력에미치지못한다.그는너무나많은귀중한목숨과삶을인류에게서앗아간다"

홀로코스트가슬픈진실의완벽한사례다.때문에나는인간의엄성에대해관용을잃은편협함과인권에대한경시가가져올끔찍한결과에대해계속글을쓰고연설을수밖에없다.

얼마전에지방의한고등학교에초청을받아홀로코스트를증언할기회가있었다.연설이끝나자한여학생이내게로오더니"에델만씨,우리할아버지가나치였습니다.하면서울기시작했다.나는그꼬마숙녀에게할아버지가한일을가지고책임을느끼거나죄의식을가질필요는절대없다고거듭말해주었다.젊은세대는모든사람들을관용과존중으로대함으로써과거세대의실수를극복할것이라고믿어의심치않는다.


히틀러가쓴책의부정적인효과는너무나명백하다.그의증오에가득찬말들때문에우리가견뎌내야했던끔찍한일들을생각하면아직도감정이북받친다.하지만자유롭게나의미래를창조할수있게됐을때시련의상처를딛고어떻게살아갈지를선택해야했다.나는내가직접목격하고몸소겪었던사악함에치를떨며회한과자기증오에가득찬삶을살수도있었다.하지만나는그런길을택하지않았다.대신유대인들이스스로의삶에서얼마나많은것을성취할수있으며사회에공헌할수있는지를세상에보여줌으로써《나의투쟁》의저자에게복수을택했다.결코치유되지못할상처가내영혼에영원히꺼지지않을불을지핀것이다.


막스에델만(홀로코스트생존자)


막스에델만(MaxEdelman)은홀로코스트생존자로1944년나치포로수용소에서맹인이되었다시각장애들의대변인이며오하이오주최대신문인PlainDealer를포함하여여러매체에장애인인권에관한글을기고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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