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룩소(Luxor)공항에서 있던 일 (1)

태양이 이글거리는 이집트의 사막에서 거의 일주일 지내니 온 몸이 벌겋게 달궈졌습니다. 우리는 여름휴가를 다녀오면 까맣게 탔다고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벌겋게 익은 것이 맞습니다. 카이로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택시를 타고 서둘러 룩소공항에 도착하니 약 2시간 연착한다고 하여 맥빠지게 되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비행기 좌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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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iro – Luxor – Aswan – Abu Simbel – Abu Simbel – Luxor – Cairo를 왕복하는 이집트항공 B737기 >

 

원래 예정된 항공편은 전날 카이로로 나가기로 되었지만 워낙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궁금증이 많은 저로서는 예정한 날 떠날 수가 없어서 하루 연기한 것인데 비수기가 아니라 항공좌석이야 있겠지 하고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물론 하루 더 체류하면 되지만 카이로에서 시나이반도를 거쳐 이스라엘로 올라가는 버스여행을 취소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아쉽게 되었습니다.

예약단계에서야 waiting으로 한 다음 여행을 cancel 하는 승객을 기대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미 보딩패스발급이 끝난 터라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승객을 매수하여 보딩패스라도 빼앗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룩소공항의 ccheck-in 카운터에는 비행기를 타지 못한 일부 승객들이 저처럼 난감한 입장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다른 대책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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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룩소시내 – 가운데 연못주변이 카르나크신전이다. >

 

저는 항상 하던 습관대로 어떤 기적을 꿈꾸며 check-in 카운터에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이집트항공 check-in 카운터의 직원은 서류를 정리하더니 오늘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크게 한 숨을 쉬며 주머니를 뒤적거렸습니다. 아! 담배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얼른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그에게 권했습니다. 일주일 전 카이로에서 아부심벨로 갈때 카이로공항에서 써 먹었던 방법을 또 시도한 것입니다. 그땐 예약된 항공편이 공항에서 갑자기 출발전 cancel이 되는 바람에 후속편 예약이 힘들었는데 이집트출신의 세계적인 명배우인 오마샤리프의 이름을 딴 국산담배덕에 다음 항공편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인 제가 가지고 있는 국산담배는 그들한테는 양담배 꼴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담배를 피지 않지만 여행다닐 때는 접대용으로 담배를 가지고 다닙니다만 애연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담배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담배 맛이 어떠니 ?”

“어 … 좋은데, 이거 너의 나라 담배니 ?”

“맞아, 이거 오마샤리픈데 한국에서 제일 비싼담배야.”

“어! 너 일본사람이 아니었구나 ? 여기 한국사람은 혼자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던데 !”

“어 … 나는 혼자다니는게 좋아.”

“그런데 오마샤리프가 왜 한국에 있냐 ?”

“왜 …. 한국에서 오마샤리프가 얼마나 유명한데, 오죽하면 그의 담배까지 나오냐, 화장품도 있는걸 ?”

“그래 ? 오마샤리프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유명해 ? 거 담배갑좀 보자 ”

( *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Omar Shariff 는 이집트출신의 세계적인 배우입니다.)

저는 얼른 오마샤리프의 영문이름이 선명한 담배갑을 그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그의 친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가 외국인한테 그것도 이집트에서 많지 않은 동양인한테 담배를 넘겨받은 것을 보니 구미가 당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담배갑을 번갈아 뒤집어 보면서 구경하였습니다.

“어… 너네 들도 하나씩 맛 봐 …..”

“야 … 맛 좋은데 !”

“그런데 너 무지하게 탓구나. 화상입은것 같이 보이는데 …”

“그래… 내 얼굴이 많이 벌겋게 되었지. 내 요리사가 너무 익혔어!”

“네 요리사라니 … 누구 말이냐 ? ”

“아 ! … 아몬 라 Amon La (이집트태양신) ”

“깔깔깔 …”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대화의 물꼬가 튼 것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 카이로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기차나 택시를 타면 무척 늦을 텐데 …”

혼자 독백하듯 내 뱉었습니다.  참 … 혼잣말을 영어로 하자니 참 쑥스럽더군요.

“그래 ? 너 오늘 꼭 가야되니 ?”

“응 … 원래는 어제 가는건데 미처 예약을 바꾸지 못했어.”

“어… 원래는 자리가 어느 정도 비었는데 오늘은 단체승객이 일정을 바꾸어서 빈좌석이 없어.”

“아 …. 그랬구나.”

“시간도 아깝구 또 호텔로 들어가서 하루 밤을 자면 괜히 호텔비만 날리고 …”

또 혼자 지껄이는 독백이지만 주변의 항공사직원들이 알아 듣도록 영어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랬더니 항공사직원의 친구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저를 슬며시 화장실로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너 꼭 오늘 카이로에 가고 싶어 ?”

“응 …”

“방법이 있는데 …. 돈이 좀 필요해 !”

“얼마나 ?”

“너.. 어차피 하룻밤 자려면 호텔비 들어간다고 투덜댔잖아, 그 정도만”

“그래 ? 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기 때문에 $10 이면 되는데 ?”

“야, 너 돈 많은 나라에서 왔는데 Winter Palace정도에서는 자야지 무슨 소리야 …”

( * Winter Palace 호텔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카터경이 묵었던 호텔로 유명한 호텔입니다.)

“돈 많은거와 무슨 상관이냐 ? 난 게스트하우스가 좋아 !”

“그래 ? 그럼 $ 50만 줄래 ?”

“그건 너무 많다. 그래 $ 30 줄게 ……”

“좋아. 그럼 내 대신에 오늘 네가 가라 !”

“어 … 그래도 괜찮은겨 ?”

“사실, 나도 이집트항공사 직원인데 카이로에 놀러가는 거야, 하루 늦게 가지 뭐 …”

그 젊은이와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check-in 카운터의 직원을 찾아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젊은이와 직원이 귓속말로 얘기를 하더니 저의 룩소-카이로 비행기표를 받아서 보딩패스를 발급해 주었습니다.

이게 웬일 입니까 ? 이집트를 사랑하니 정말 태양신이 도우신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 아까 그 담배 참 맛 좋더라 …”

“어 ! 그래 ?” 저는 배낭에서 오마샤리프 새 담배 2갑을 꺼내어 하나씩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행기를 못탄 다른 승객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젊은 직원의 안내로 보안구역을 통과하였고

항공사 check-in 직원은 시간 차이를 두고 직접 제 배낭을 트랜짓 라운지로 가져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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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좌석은 항공사 직원이 맡아 놓았던 것을 대체한 거라 만석인 가운데 가장 좋은 앞 좌석 창가 좌석이었습니다.  약간의 부정(?)과 뇌물(?)을 바치고 보딩패스를 받은 덕분에 예정대로 카이로에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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