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or의 소년택시기사 알라 형제 이야기 (1)

룩소의 첫날 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카르나크신전에서 “Sound and Light Show” 공연이 있습니다. 마침 카이로의 피라미드에서 “Sound and Light Show”를 너무 피곤해서 구경하지 못하였기에 룩소에서는 꼭 보려고 카르나크신전으로 행했습니다. 호텔에서 카르나크신전까지는 4km 정도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태양신 아문의 나라의 태양이 나일강 건너 왕들의 계곡 뒤로 넘어간 뒤에도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저한테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침 호텔 앞에는 비록 콧수염은 났지만 운전면허나 있는지가 의심이들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택시기사가 애끓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기에 택시를 타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목에 주렁주렁 달린 카메라는 항상 예기치 못하는 불행한 사태를 유발할 수 있기에 낯선 곳의 어두운 밤거리를 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여 돌아올 때에는 택시를 타려고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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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Karnak Temple, Luxor 전면의 모습 >

 

예정된 시간보다 일찌기 카르나크시간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사려고 하니 창구직원이 3일 후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관람객들은 표를 사고 줄줄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왠 인종차별 ? 나는 오늘 밖에 시간에 없는데 왜 못 들어가냐고 항의를 하니, 그 직원의 대답이

“지금 공연은 아랍어공연인데, 너 아랍어 알아 ?”

“아랍어는 인샬라, 슈크란, 앗살람 알라이쿰 세 단어 밖에 모르는데…”

“거봐, 매일 두차례공연을 하는데 1부는 아랍어공연이고 2부에는 영어,프랑스,독일어공연이 매일 바뀌거든

영어공연은 3일에 하니 그때 오란말이야, 알간 ?”

“그렇구나, 그럼 오늘 2부 공연을 볼게….”

“오늘 2부는 독일어인데 너 독일어도 알아 ?”

“Ja, Ich spreche Deutsch” 고등학교때에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한 실력으로 한 마디 하였습니다.

“야~~~~~~~~~~~~~ 너 대단하다.”

“씨익 ….(표정관리차원)”

어차피 영어공연을 관람한들 얼마나 알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

오히려 영어공연을 보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비참하게 되겠지만 독일어 공연이라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말로 공연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이죠.

여행을 다녀와서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들 제가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들 계시지만 제가 연세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룰 때 첫 시간에 영어시험을 보면서 재수를 할까 아니면 후기입시를 치룰까 고민할 정도라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바닥에 가까운 영어점수를 만점에 가까운 수학점수로 뒤엎어 버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할 수는 있었지만 (남들도 다 합격만 하면 그럽디다.) 제 영어실력에 대한 고해성사를 한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유능한 통역은 사기꾼이었다.

아뭏든 “Sound and Light Show”는 책에 나와 있는 뻔한 내용을 웅장한 음악과 조명으로 포장하여 그럴듯한 분위기를 잡는 공연이니까요.

그래서 택시운전기사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게 하고 2부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아랍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관람하는 것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것 같아서 1부 공연을 보러 신전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역시 웅장한 음악과 함께 초저음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며 조명이 비추는데 신비스런감을 자아나는데 무슨말인지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멋있더군요. 그러나 이 멋지고 웅장한 쇼 외에 대부분 갤러비아(아랍남자들이 입는 긴 통치마)를 입은 이집트관광객들과 주변 아랍국가에서 온 관중들의 시선을 끈 것은 비록 조명까지는 받지 못했지만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던 유일한 외국인 저였습니다. 신전의 곳곳을 이동하며 쇼가 진행되는 동안 영어나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이집트인들은 제 옆에 앉아 말을 붙혀보려고 서로 밀치기도 하였습니다. 15년 전 그때만 해도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동양인은 모두 일본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좌우지간 그날 저는 카르나크신전 “Sound and Light Show”의 또 하나의 스타가 되었던 것입니다.

공연을 마치고 주차장에 나오는 택시기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한 기사가 제가 데리고 온 택시기사는 들어가고 자기가 나를 태우기로 되었다기에 기분은 나빴지만 그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그 택시는 먼저 이용한 차보다 비교적 깨끗했으며 기사는 자기 이름을 소개하며 아랍식으로 말하면 손님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니 부르기 쉽게 영어식으로 하워드 라고 불러 달라며 익살을 떨었습니다. “하워드”는 룩소의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하워드카터경의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영어를 잘하는 기사가 필요하여 내일부터 하루 $25을 주기로 하고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 사진 – Winter Palace 호텔에서 본 나일강, 바로 우측이 룩소신전이다. >

다음날 이른 아침 호텔앞의 나일강변을 산책하러 나오니 어제 밤 사라졌던 택시기사 알라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갤러비아를 입은 아랍사람들을 첫 눈에 누가 누군지 쉽게 알아 볼 수는 없었는네 앞 범퍼가 찌그러진 그 소년의 나이보다는 더 오래된 푸조택시를 보니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젯 밤의 일이 생각나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면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어제 공연이 끝날 때 나를 기다렸는데 만나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공연시간 중에 배가 고파 식사를 하러 집에 잠깐 다녀왔다고 실토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제 약속한 택시값의 반 만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때 어제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올 때에 이용한 택시기사가 저를 태우러 호텔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알라한테 오늘부터 이 택시를 이용하기로 하였다고 그들 돌려보내려 하는데 두 택시기사들이 말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영어에 능통한 하워드의 얘기로는 알라가 어제 택시값의 반만 받고 자기한테 저를 인계하였는데 오늘에는 택시비를 다 달란다며 억지를 부린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에 저는 알라한테 어제 공연 후에 네가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지도 않았는데 왜 택시비를 다 달라고 하냐면서 되물으니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듯 하면서 울먹거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침 출근하는 호텔직원이 우리 셋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랍어로 셋이서 서로 속사포 처럼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하워드가 슬그머니 꼬리를 치기 시작하고 뒷걸음치자 호텔직원이 하워드를 붙잡고 저한테 택시비를 선불하였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제 택시비만 10 EP.만 주었다고 하자 5 EP (이집트파운드)를 빼앗아 알라한테 넘겨 주었습니다.

내막을 알아보니 하워드가 영어에 서툰 알라를 이용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알라는 어제 밤 저를 다른 기사한테 넘기지도 않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공연이 끝날 무렵에 주차장으로 돌아와 제가 내린 장소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하워드가 유창한 영어를 미끼로 저를 가로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라는 자기가 식사하느라고 늦게 와서 나를 못 만난 것으로만 알고 사과를 할겸 편도택시비라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일찌기 호텔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록 영어는 잘 하지 못하여 언어소통에는 불편하지만 나름대로 매너있는 행동과 앳된 얼굴의 알라에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호텔직원은 자기가 영어를 잘하는 다른 택시기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제의를 하였지만 제가 알라의 택시를 이용하겠다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호텔직원은 그날 제가 원하는 일정을 묻고서 그대로 알라한테 전해 주어 부족한 의사소통의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마침 아침식사 전이라 저는 알라를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호텔벨보이로 부터 제지를 당했습니다. 호텔에는 갤러비아를 입은 사람은 출입이 금지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갤러비아가 문제가 아니라 일반인들은 특급호텔에는 출입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집트사람의 갤러비아도 새하얀 천으로 우아하게 귀티가 나는 복장도 있으니 말입니다. 아참, 저는 평소에는 현지인의 중산층이 많이 이용하는 중급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지만 룩소에서는 룩소유적발굴에 관여한 전설적인 인물인 하워드카터경이 묵었던 유서 깊은 호텔에서 묵고 싶었기에 룩소에서는 최고급인 Winter Palace호텔에 투숙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카터가 이용하였던 구관은 너무 비싸서 비교적 요금이 산 신관에 묵고서 구관의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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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룩소 소년택시기사 알라와 함께 >

 

알라는 신이났습니다. 어제 못 받을 뻔한 택시값도 받았고 그것 보다는 이틀 동안 내가 자기를 고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콧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얼굴은 동안이었으며 아주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나이는 20이라고 하며 학교를 다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쉬고 있으며 역시 형도 택시운전을 하고 있답니다.

오늘 이야기는 알라의 집안 이야기로 이어지기에 룩소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룩소의 태양은 정말 불같았습니다. 아스팔트 길은 녹아서 질퍽 거리는 곳도 있으며 마치 펼펼 끓는 솥처럼 지열이 길 위의 공기까지 덮히고 있으니 정말로 대단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수를 들이켜도 갈증은 수그러들지 않고, 워낙 땀을 많이 흘리니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갈 필요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룩소시내에서 나일강을 건너 사막지대인 서쪽으로 가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돌덩어리와 모래땅 사막이니 그 열기가 더욱 거셌습니다. 알라는 제가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 그 사이에 상점을 찾아 다니며 차가운 생수를 사와서 물에 적신 손수건과 함께 대령하며 “My Friend”를 연발하였습니다. 우리 큰 애 정도의 나이에 불과한 놈이 감히 저를 “친구”라고 부르니 참 영어표현이 좋긴 한것 같습니다. 하기야 하워드처럼 말끝마다 “Sir”를 붙혀가면서 사기를 치는 놈보다는 낫습니다.

한나절을 왕들의 계곡, 핫쳅수트여왕 장제전, 메디낫하부, 멤논 등의 유적들을 돌아다니니 거의 체력이 바닥이 날 정도라 그날의 일정을 마치고 일찌기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잠깐 초저녁 눈을 붙히고 어둠이 깔리자 산보 삼아 호텔문을 나서니 호텔주차장에는 알라가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의 형과 함께 있었습니다. 알라가 집에 돌아가 어제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얘기를 하였더니 마침 일을 마치고 퇴근한 그의 형이 저한테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며 저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형은 직장이 별도로 있으며 동생과 번갈아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영어도 곧잘 하였습니다. 저는 알라 형제를 데리고 저녁을 대접하러 함께 식당을 찾아 갔습니다. 제가 큰 맘먹고 그들한테 호텔에서 저녁을 제공해도 되지만 평복으로는 호텔출입을 할 수 없기에 알라 형한테 알아서 좋은 식당으로 안내하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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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알라와 그의 형, 저는 술에 취해 얼굴이 벌건 것이 아니라 햇볕에 익은 것입니다. >

 

이집트는 잘 알듯이 이슬람국가이고 이슬람사회에서는 술을 금하고 있지만,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종교도 마찬가지랍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슬람 사람들을 엉터리라고 하지만 불교신자라고 모두 육식을 피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 신자라고 모두 술 담배 안하는 것이 아닌것 처럼 그들도 마찬가지 일 뿐입니다.

그날 알라는 술을 못하는 듯, 조금만 마시고 운전을 하였고, 저와 알라의 형은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알라의 형은 고등학교를 나와 학교선생님을 좀 하였는데 동생들과 가족을 부양하는데 교사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다른 직장과 함께 택시일을 병행하고 있으며 상당한 경험이 있는 듯 영어도 곧잘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사출신이라 그런지 아는 것이 많았고 이집트사회의 문제와 그외 재미있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라의 형이 얘기한 것 중에는 하워드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하워드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플레이보이 라고 합니다. 그리고 버는 돈을 모두 노는 데 쏟아 부어 많은 나이에도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면서 흔히들 하는 말로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파트너는 남자고 여자고 가리지를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슬람사회에서는 일부다체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보통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부다처제는 지금 이슬람사회 밖에서는 이슬람을 비난하는 한 구실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는 우리가 생각하듯 축첩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의 원조인 유목생활을 하는 아랍사회에서 전쟁을 거치며 남자들이 많이 죽어 미망인과 고아들이 사회문제가 되자 능력있는 사람들은 불쌍한 그들을 돌보라는 의미에서 일부다처제가 생긴 것이라고 이슬람에서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물질적으로만 돌봐 줄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모두 돌봐 주라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구호방안을 내세운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것 입니다. 그러고 보면 뉴기니아섬의 다니족도 종교와 관계없이 일부다처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아마 자연사망율 외에 사고사망율이 높을 수 밖에 없는 남자들의 문제로 여다남소의 사회에서는 자연적인 풍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저의 집사람도 이 블로그를 들어와서 보고 있는 마당에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는 것일 뿐입니다. 반면 티벳트에서는 일처다부제도 있다는 것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얘기가 좀 빗나가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인만큼 한 마디 하고 넘어가렵니다. 티베트의 지방에서는 장남이 결혼하면 그 형제들은 모두 형수와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일부다체제에서는 부인이 많아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뚜렷이 나타나지만, 일처다부제에서는 어머니는 확실한테 아버지가 정확히 누군지 모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난김에 한 마디가 아니라 또 한 마디 더 하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결혼한 남자가 죽으면 미망인은 남편의 형제와 잠자리를 함께 해야만 한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특히 AIDS로 죽은 경우에 큰 사회문제를 일으키기에 신문에 자주 보도되기도 하여 기억에 납니다.

다시 이집트로 건너 갑니다.

전쟁이나 사고사가 많은 시절에는 남자들의 사망율이 여자보다 훨씬 높아서 女多男少를 이룰 때에는 이런 풍습이 그런대로 이해를 할 만 하지만, 요즘에는 일부다처제의 근본취지가 많이 퇴색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블 이웃이신 Garuda님이나 다사랑님께 확인요청도 해야 되겠지만 제가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의 들은 얘기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여전히 일부다처제는 받아들여지지만 공직에 진출하는 사람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지 않는 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요즘 외국에 계신 이웃블로거님들이 많이 계셔서 이런 글 쓰기가 무척 조심스러워 졌답니다. 반드시 빠져 나갈 구멍을 찾고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어쨋든 요즘도 이슬람사회에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은 법적으로 허용한도 내에서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이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미망인을 선호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강남사람들이 서울대 정원을 싹쓸이 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듯이 아랍부호들이 젊은 여자를 싹쓸이 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으며, 결국은 밑바닥 인생의 남자들은 결혼할 기회가 봉쇄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잘못된 통계를 가지고 오해를 하는데, 저라고 단기여행에서 귀동냥한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자신있게 떠벌릴 수만은 없지만, 중동지방을 여행하면서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 그래서 말입니다.

하워드같은 사람은 젊었을 때의 성적 욕구를 제때에 발산하지 못하면 비정상적인 방법을 찾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워드는 외국여행객 전문택시기사로 그것도 혼자 다니는 여행객을 주로 타킷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바로 아랍사회에서의 동성애는 서구사회의 동성애와는 달리 욕구해소의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가뜩이나 남녀의 신분 차별이 까다로운 마당에 여자들은 돈 있는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니 그들은,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 하기에 차선책으로 비정상적인 동성애를 즐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능글맞게 유창한 영어로 떠들어 대는 하워드가 갑자기 징그러운 모습으로 머릿 속에 떠 오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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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Cairo 시장의 수 백년 된 Hamam 공중목욕탕 >

이슬람 사회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공중목욕탕인 Hammam은 요즘은 결혼을 하지 못한 아랍남자들이 은밀히 만나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사석에서 친구들과 술한잔 나누면서 이런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 70-80년대 중동건설붐을 일으켰을 때에 중동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모두 제 얘기에 동의를 하며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보아 제 분석이 헛된 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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