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의 케이블카

내기억속케이블카는남산에서짧게탔던그것이전부였다.

어린시절에아버지와함께,그리곤샤모니에서20분이란긴시간을

케이블카를타고3842m를올랐던것이다.이케이블카가없었다면나에겐

평생에걸쳐3842m나되는산을오를일이없었을수도있다.마침정상에오르니

이케이블카를설치하기위해수고한사람들에대한전시회가열리고있었다.

그전시회의포스터를한컷했다.케이블카를설치하는작업.

상상만해도아찔한작업들이다.

바로위의사진은작은케이블카인데샤모니에있는눈으로쌓인계곡을한시간에걸쳐왕복하는케이블카이다.

이케이블카는기상상태에따라운행할때도있고운행하지못할때도있다.

내가오른날은바람이너무불어서불행하게도이케이블카를타고설원을바라보는행운을

누려볼수없었다.나의디카로정지되어있는케이블카를찍었다.

3842m의높이에설치되어있는다리위에서찍은사진.쇠로이루어진발판을밟으면서도

혹시나이발판이떨어져나가서밑으로떨어지면어쩌나두려움으로잠시도긴장을늦추지못했다.

오른쪽으로줄서서눈을타고있는사람들이있다.참으로용감한사람들이다.

나는추워서파래진손을호호불며사진을찍었는데..

추워서자꾸안으로들어가고싶었는데저렇게눈으로된산을타는사람들도있었다.

케이블카안.저카메라를들고있는분이자꾸나를찍는것같아서

나도저쪽을향해디카를들이댔다.ㅎㅎ

저렇게멋진풍경속에매달려있는케이블카속에서나도20분간머물렀던것이다.

처음엔두려움으로마치숨이멎을것같다는느낌이었다.

유태인 화가 할머니

샤모니에도착한날은일요일아침이었다.

침대차를타고아침열시에도착하니친구부부가

반가운표정으로나를기다리고있었다.

그리고그들은나를또다른친구들과의점심약속이

되어있는장소로데리고갔다.

역시알프스산자락에자리한예쁜레스토랑이었는데

초면에사진찍기가미안해서망설이다가사진은찍지

못했다.하지만그때만난노부부의집에초대를받아서그노부부가사는아파트입구를찍은것이왼쪽

사진이다.

오른쪽사진은노부부의베란다에서내려다보이는

풍경이다.특히할머니의직업이치과의사였다고하는데지금은그림을그리고계신다고…

첫날만난자리에서대뜸내게초상화를그려주셨다.

유태인으로모든가족들이죽임을당했음에도불구하고

살아나셔서아들둘에손자넷을거느리신분이었다.

첫날유태인들이당한수난에대하여이야기를나누었다.할아버지는한국정부에TGV기차를팔것을최초로

제의하신분이라고했다.

과자를구어서차와함께내온식탁,이런식탁은사보아식식탁이라고할머니께서

설명을주셨다.아니,샤모니의몽블랑을개척해낸사람들이영국사람이라는사실때문에

난,이상차림을영국식이아니냐고물어보았던것이다.별로영국사람들을탐탁하게생각지

않은것같은할머니의설명이셨다.현재샤모니의몽타나호텔을사들인사람들이영국사람들이라고했다.

샤를르트레네의샹송이당신의마약이라고틀어주시면서또당신이그린그림으로아파트벽면을장식하고

많은지난이야기들,그분의조상들에대한이야기들로꽃을피웠다.긴금발의머리를틀어올리고에너지가

많아서그림도빨리빨리그리신다는유태인할머니,나이들어도이렇게부지런하게사시니까건강한게아닐까

라는생각이스치고지나갔다.

패러글래이딩 하는 사람들

샤모니에서자주볼수있는것이패러글라이딩입니다.

아름다운알프스산등성이를기차를타고오르노라면여기저기서허공에둥실떠있는패러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을보게됩니다.

그들처럼허공에둥실떠보고싶은마음은간절하지만두려움으로망설였습니다.

모니터와함께타면위험하지는않겠지요.

시간당70유로라고하는군요.

전,다음번에심장을좀단단히무장한다음에패러글라이딩에도전해보고자합니다.

한 여름의 설산, 샤모니의 mont blanc

친구들의성화에Chamonix라는아주이쁜도시에다녀왔습니다.

산을넘으면스위스에이르고터널을지나치면이태리로통하는

푸른하늘과녹색의자연과그리고산봉우리를둘러싸고있는눈봉우리들이

보고또보고또보아도그아름다움에정신을잃게되는

정말아름다운마을을다녀왔습니다.

공중케이블카를타고내려다본샤모니

공중케이블카를타고3842m의산을향해가고있는중입니다.

저기보이는탑이종점입니다.

3842m의높이에서내려다본샤모니

한여름을구가하는7월이지만이곳은한창겨울을타고있나봅니다.

하늘과산봉우리,그리고눈이어우러진절경에정신을잃고있습니다.

하얀눈위로점점이있는것이바로사람들입니다.하나의줄을의지해서눈길을오르고있습니다.

아!아름다운자연!

보이시죠.눈위로발자국을만들며내려가는사람들이…

공중테이블카를타고20분이면3842m의봉우리에오르고,

한여름에눈을밟아보고입술과손이새파래지도록떨어도보고

워낙추위를잘타고무섬도잘타는제가그저신기해서어쩔줄모르고

허둥대고말았습니다.여기저기서독일어와일본어가들려왔습니다.

우연인지독일사람들과일본사람들이유난히많더군요.

아름다움이란이런것이구나!그아름다움이준감동이너무커서

피곤도모르고강행군을했던것같습니다.매일아침을먹고걷고,또걷고

하면서도너무나아름다운자연에넋을잃고지낸일주일이었던것같습니다.

사진도많이찍고사람들과대화도많이하고…

어떻게요약을해야제가느낀감동을제대로전할수가있을지…

아!여러분도꼭한번은가보시길진심으로기원합니다.

navette 타기

오늘은새로생긴navette를타고gared’austerlitz에가는날입니다.

기차표를사러가는것이죠.오랫만에결정했습니다.

Chamonix에갈것입니다.밤침대차로결정했습니다.

한일주일있을까생각하는데어쩌면못견디고빠리로돌아올지도모르겠습니다.

navette는세느강을왕복하는배입니다.

아주정갈하고산뜻합니다.

유니폼을입고있는남자분이승무원입니다.

표를계산하고있습니다.

뱃전에부서지는물결도잔잔합니다.

Chamonix에서만나게될일들에조금은마음이설레기도합니다.

좋은주말,좋은한주보내시기바랍니다.

조용한 아침

자연의평화가느껴지는고요한아침입니다.

연휴인탓일까요?

물속에사는내친구들을보러나섭니다.

빵냄새만맡고도곤히자던잠을후다닥팽개치고

휘청거리는오리들,오랫동안굶주렸던모양입니다.

아니,어제저녁을굶은모양입니다.ㅎㅎ

강한가운데서우아하게산책을즐기고있는

백조의몸짓마저도조용한아침입니다.

친구

오페라의카페에친구와자리를잡고앉았습니다.

오랫동안잊어버리고있었던관계였습니다.

그냥한번쯤정통프랑스식레스토랑으로초대하고말리라..그렇게마음먹었던것같은데

그한번의만남이폭풍처럼그리움을몰고왔나봅니다.

생각해보면즐거웠던기억이없었던것같은데말입니다.

늘보는사람들이코크고눈큰사람들이다보니

친구를보았을때턱없이초라해보이는느낌을지울수없었던것같습니다.

마레지구에있는이스라엘식당으로친구를안내했을때

생전처음먹어본다고좋아하는친구,그친구도사실파리에서8년이란세월을보낸친구입니다.

그리고돌아섰는데

자꾸맛잇는과일도사다맛보여주고싶고

또다른식당도데려가주고싶다는생각이새록새록생기는것입니다.

아마도내안에어떤그리움이있는데모르고살았던가봅니다.

알수없는감정의흔들림으로내안의그무엇인가를또확인하는시간도되었던것같습니다.

그런데역시한국친구는마크있는제품을좋아하는군요.

거금을주고마크있는옷을주저없이사고는좋아하는친구를보며

난,어느만큼다른문화에물들어버렸는지도가늠해보는시간이되었습니다.

자꾸거금을들여물건을사는그친구는어쩌면내앞에서커져보이고싶어서인지도모르겠습니다.

Ingrid Betancourt – 6년 만의 해후

2년전인가3년전인가빠리시청앞을지날때면늘마주치는사진이

있었다.이쁘장하게생긴얼굴의이여자가늘시청앞에걸려있었던것이다.IngridBetancourt(1961년생),그녀는콜롬비아사람이다.

그리고그녀가본격적으로내호기심을자극하기시작한것은텔레비젼을통해서였다.스무살정도된앳된그녀의딸,멜라니가어머니를구해달라고

호소하는장면을여러번마주쳤던것이다.

무표정한얼굴로앵무새처럼같은언어들을이곳저곳에서되풀이하고다니는멜라니를보며갑자기저렇게하고다니면서멜라니는그녀의생의가장중요한시기를망치고있는것은아닐까염려가되기시작했던것이다.

도대체일개콜롬비아여자를향해보이는프랑스인들의관심이어디에서

기인된것인지알고싶다는생각도있었던것이다.

더군다나잘알지못하는콜롬비아라는나라에서잉그리드베탄쿠르라는이름의이여자가대통령후보였었다는사실을알고부터나의호기심은박차를가하기시작했었다.

2002년2월23일,잉그리드는콜롬비아에서대통령후보로유세를다니던중,콜롬비아의farc라는테러단체로부터납치를당해지금은콜롬비아의정글속에갇혀있는신세였던것이다.

그리고지난12월에접한소식에서잉그리드의건강이악화되었다는소식,그리고딸에게보낸편지가유언장의의미를지니고있다는사실을알았다.그녀도나처럼어머니를구하기위해서뛰어다니는딸의소식을듣고딸의미래에대한염려를했던것이다.

이제그녀는영영구출될가능성이없는것은아닐까마음이안타까웠었다.

그런데며칠전,기적같은소식이들이닥친것이다.

그녀가석방된다는것이다.프랑스언론은이소식을낮과밤을가리지않고생방송으로중계해주었다.

콜롬비아의정글을빠져나온잉그리드를맞이하기위하여프랑스대통령,니꼴라사꼬지는자신의비행기를내주는성의를보였으며그비행기를타고엄마를만나러간딸과아들,프랑스방송은그들이만나는순간의감동을놓치지않으려고분주했던것같다.

그러니까그저께오후,나도텔레비젼앞에서가슴을두근거리며앉아있었던것이다.

비행기가Bogota에내려서서히움직임을멈추고있는순간을참지못한아이들이비행기창문을통해

손짓을하며엄마를보려고얼굴을보인다.아이들이너무보고싶었던엄마는비행기트랩이내려오자마자아이들이있는비행기를향해바삐올라가는것이었다.보고있는내마음이마구떨려오기시작했다.

그리고기자들의행렬…

잉그리드는아이들과만나는감격의순간을은밀히하고싶었던모양이다.기자들의양해를구해서비행기안으로들어가버린다.나도모르게내눈에서눈물이흘러내렸다.

오랜고통의순간이기쁨으로환원되는순간인것이다.

드디어찾은가족이다.사진은왼쪽이딸,멜라니오른쪽이아들로렌쪼그리고중간이엄마잉그리드이다.콜롬비아의정글속에서6년을버틴여자,그녀는대통령후보가될만한여자이다.

잉그리드는프랑스남자와결혼하여멜라니와로렌쪼를낳고프랑스국적을획득했었다.

프랑스남자와이혼후콜롬비아로돌아가국회의원이되고정치활동을했으며두번째남편인콜롬비아인과결혼했었다.그러니까오늘이극적인장면에는첫번째남편과두번째남편이모두모였다.

게다가작년12월죽음에이르고있을때숟갈로밥을떠먹여서그녀가살도록도와준farc의젊은군인이지금은그녀의동거인이되었다는것이다.그젊은군인의사랑이그녀를살게한것이다.

그녀가석방되게된사연을놓고미국과이스라엘,콜롬비아사이에서여러가지추측들이난무하고앞으로도논란이계속이어질것같기는하지만불가능할것같았던잉그리드의석방으로내불편했던마음한구석이안도의한숨을내쉬고있다.

그런데잉그리드를맞이하는니꼴라사꼬지대통령의눈이감동으로흥건히젖어오는것을보며난,또그에게반하고말았다.

오페라에서

더위가기승을부리는날입니다.

서울에서날라온친구와오페라에발레를보러갔죠.

30도를오르내리는더위에도불구하고오페라좌석은꽉꽉찼습니다.

7월내내좌석이꽉차서자리가없다고했습니다.

겨우,80유로짜리좌석하나와60유로짜리좌석이하나빈다나요?

할수없이표를샀더랬습니다.

결국따로따로앉아서발레를관람할수밖에없었죠.

LaDameauxcamélias,아마도우리말로는’춘희’라고번역되었던작품일것입니다.

은은하게쇼팡의피아노음악을배경으로아름다운발레가펼쳐졌습니다.

아름다운의상과아름다운발레리나들의몸매를과시하는축제가벌어지는데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안내방송이있었기에사진을찍지못했습니다.

근육으로다져진남자발레리나들의몸매가정말볼만하더군요.

인형처럼이쁜여자발레리나들도말이죠.

언어가없이몸짓으로만표현되는오페라입니다.

침묵의예술이라고할까요.

조용히몸짓으로만보이는주인공들의연기가감동적이었습니다.

애매하게공연장내부의사진만많이찍었었는데더위탓인지그나마잘나온사진이

드물었습니다.

‘춘희’는알레산더듀마의작품이죠.

19세기고급창녀와부르조아가정의순진한청년사이의사랑이야기입니다.

창녀였지만진짜사랑을하면순수해지는가봅니다.

폐병으로죽어가는고급창녀의사랑이야기가슬픕니다.

주인공창녀는동양적인외모를가졌었다고합니다.

까만머리에길고가느다란눈,마치일본여자의눈과같은…

아마도그래서프랑스인들에게더인기있는지도모르겠습니다.

발레리나들의모습을찍으면안되니까애매하게천장을찍었습니다.

막이내린무대도찍었습니다.

옆으로좌석들이있고장식이아름답습니다.

마지막에사람들이박수치는틈을타서한컷살짝했습니다.

출연했던모든사람들이나와서인사하는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