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블로그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프리카의폭염을연상시키는무더위를빠리는겪었다.

40도를오르내리는폭염속에서아프리카인들이왜머리가느리게돌아가야하는지를경험했다.

아스팔트길위로김이모락모락올라오는더위가빠리를한바탕휩쓸고지나갔고

언제더웠느냐는듯쌀쌀한기온이가을이멀지않았음을예고하는듯도싶다.

인간본성의움직임을정확하게묘사해냈다는마르셀푸르스트의문구들이라듸오에서흘러나오고

그의문학이왜영화화되기어려운지를심리적으로분석한이들의이야기들이흘러나온다.

조선일보의블로그공간,10여년전에친구가권해서우연히시작했고난,그공간을통해서

새삼사람들이어떻게살고있는지를발견하기시작했다.

재미있었다.너무나다른생각들을가진사람들을발견하는것이재미있었고

천성이순진한탓에사람들의말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는내자신을깨닫는것도재미있었고

한국인들사이엔끈끈한정이흐른다는것도발견하였다.

멀어져버린한국이조선블로그덕분에많이가까워졌었다.

멀리서안타깝게바라보기만했던조국의현실에쓴소리도할수있어서좋았다.

조선블로그에계시는글잘쓰시는분들의글을읽을수있어서행복했었고이블로그를통해서

한국의현실을놓치지않을수있어서행복했었다.

년말이면문을닫는다니그때까지난,열심히글잘쓰시는분들의글을탐독하련다.

LISIEUX의 성녀 테레사


1873-1897

성녀테레사

작년여름에테레사성녀의성지를방문했었습니다.
영리해보이는눈동자를지닌테레사는15살에까멜수도원에들어갔습니다.
당시미성년자에게허락되지않는까멜수도원에들어가기위해서그녀는교황LéonXIII를직접만나는용기를
부립니다.무엇이어린그녀를그렇게인도했을까생각해봅니다.

15살에까멜에들어간그녀는폐병으로24살이라는꽃다운나이에생을마감했습니다.

그녀는사망하고한참후에그녀가써놓았던책으로인해세상에알려지고1925년에성녀로인정되었습니다.

1997년에졍폴교황님은테레사를성당의의사로명명합니다.
그녀의삶을공부하고그녀의책을읽으면아마도마음을앓고있는많은사람들이쾌유할수있지않을까
저도그렇게생각합니다.

Lisieux역

사진을잘찍지못했지만웅장한성당입니다.

저유리문으로들어가면성녀테레사의일대기가펼쳐지는데인형으로그녀의가족들과이야기들이
연출되어있습니다.


그녀의책들이진열되어있습니다.


테레사성녀입니다.

성당박물관에서그녀의유품을보면서깜짝놀랐습니다.누더기같은옷들을그녀는걸치고살았던걸까요?
정신을중요시하는사람에게겉모습은그렇게중요하지않다는것을깨닫게해주는장면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그녀의생각들이많은지혜를담고있다고느꼈습니다.그녀의영리해보이는눈동자가많은것을
시사해주고있었습니다.그렇게어려서부터어리섞은탐욕에서벗어날수있었다는것만으로도그녀는
정말로지혜로운여자였다는것을생각할수있었습니다.

이자벨 유뻬의 책 낭독 이야기- 중국에 사는 유태인의 숙명

이자벨유뻬는한국영화에출연한인연으로제법많은한국인들이알고있는프랑스여배우입니다.

그녀에게는글쓰는오빠가있습니다.이번에그오빠인레미유뻬가’중국에사는유태인의숙명’이라는제목으로책을발표했는데요.그책을여동생인이자벨유뻬가낭독한다고해서

유태인들의모임에가보았습니다.제법비싼입장료를내고요.

이자벨유뻬가도착했을때뒷모습을찍을수있었습니다.

날씨는푹푹찌는데극장바깥에는에어콘시설이없어서땀을뻘뻘흘리고있었습니다.

표예약을전화로하는데알랭이라는유태인이한국인들은유태인들을좋아한다고들었는데사실이냐고

물었었습니다.그렇다고했더니참좋아하더군요.

유럽에서유태인은환영받지못하고있거든요.그이유를유태인들에게물어보면유태인들이

너무잘나서시기,질투때문이라고합니다.그럴지도모르죠.

어떤친구에게사진을찍어서보내주겠다고약속을했기때문에열심히사진을찍었는데

옆옆줄에앉아있던유태인아줌마가자꾸태클을걸었습니다.

사진찍지말라고요.책낭독과피아노연주가이어졌었는데디카찍히는소리가방해가되었던가봅니다.

나중에사과를하면서아마도저는미개인인것같다고했더니그유태인아줌마,자기가너무못되게

굴었다고오히려사과를하더라고요.조금만친절했으면사진을마음놓고잘찍었을텐데말이죠.ㅎㅎ

단상에서서책을낭독하고있는여자가바로이자벨유뻬입니다.

낭독이끝나고나서저자인이자벨유뻬의오빠와피아니스트그리고이자벨유뻬가나란히

인사를했습니다.피아니스트의베토벤연주가정말좋았었습니다.

이자벨유뻬의오빠이신레미유뻬는제가다니는문학카페에서도몇번책소개를하셨던분인데

이번발표회에서’다른나라를침략하고온갖잔인한만행을저지른일본인들은지구상에서

사라져야할인종이다’라고용감하게말했더군요.

깜짝놀랐습니다.중국사람들도일본을무척미워하고있다는사실을깨닫게해주는

낭독회였습니다.

그는진정한의미의작가라는생각을굳히며낭독회를나왔습니다.

그날이바로빠리의음악축제날이었기때문에온통빠리는모든종류의음악으로흔들거리고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