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사하라 사막 아래의 아프리카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의 만남

20170423_163059일요일 오후, 친구 이사벨이 아랍 문화원에서 하는 토론회에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 제목이 ‘ 프랑스에서 사하라 사막 아래의 아프리카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토론회였다.  며칠 전에 샹젤리제에서 경찰 한명과 민간인 두명이 살해되는 테러가 있었기때문에 사실 이런 자리는 매우 민감한 자리이다. 하지만 용감하게 이사벨을 따라 나섰다. 그녀는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인 아줌마이지만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좋은 아줌마이다. 토론에 초대된 사람들은 옆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이다. 주로 직업이 작가, 기자 그리고 교수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 위치한 나라들의 사람들과 아랍사람들의 만남이 주제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프랑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유창한 불어를 구사하는 그들은 말이 아프리카인일뿐이지 실상은 프랑스인들이다. 교육을 프랑스에서 받았고 프랑스어도 완벽하다.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종간의 갈등, 성차별등을 주로 다루었다. 늘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이들이 이 사회에서 이런 정도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많이 개방된 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유학을 왔을때 난, 프랑스인들이 외국인에 대하여 너무나 너그럽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살았던 한국은 아마도 굉장한 자본주의 이론에 물들은 사회였던가 보다.  내것은 나만이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내 믿음에 충격을 주는 사건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리고 내 이기적인 눈에도 나만이 잘사는 것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가 좋아보였던 것같다. 지금에 와서보면 오히려 한국인들이 타인을 많이 배려하는 것같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은데  어쩌면 그건 나와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어제의 그 토론에서는 너무나 자유롭게 자기 주장을 내놓는 아프리카  출신 프랑스인들을 보면서 만약에 저들이 자신들의 나라 아프리카에 머물어 살았더라도  지금의 자유와 지금의 직위를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었다. 아니,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이나 주장들이 얼마나 모순이 많은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기도 하다.

20170423_172843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식민의 역사, 포스트 식민지, 새로운 식민지, 힘의 관계, 인종의 문제와 정체성 등… 결국 그들은 인종의 갈등, 문화의 갈등과 같은 것들은 문학을 통해 타자의 현실에 나를 동일화 시킬 수 있는 문학의 힘을 통하는 것이 평화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프랑스의 전대통령 니꼴라 사꼬지가 아프리카에 와서 한 연설에서 세계 역사 속에 들어 온 흑인 너무 적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계의 역사 속에 들어간 동야인은 많았던가?  흑인보다도 더 적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저들은 동양인은 아예 제쳐 놓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었다면 저들처럼 앞뒤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었을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프랑스는 역시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토론회였다.

 

사크레 성당에서

IMG_0529방은 난방이 알맞게 되어 있었고  날씨는 맑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물질의 풍요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신은 먼나라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첫날, 바칼로레아 준비를 위해 공부하려고 왔다는 프랑스인 고등학교 남학생을 마주쳤다. 그에겐 아직 신은 모호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커다란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이였다.

모든것이 완벽했다. 하얀시트, 샤워장 그리고 화장실까지도 완벽한 백색의 세계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하얗게 세탁되는 느낌이 드는 수녀님들까지… 이곳은 아주 맑고 깨끗한 세계이다.

방창문 밖으로 맑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높게 솟은 성당의 탑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침 식사시간, 십자가가 걸려 있는 커다란 식당방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듯싶은 한 프랑스 남자가 아이들에게 기도문을 읊게 하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외우지 못하는지 중간에 허밍으로 이어간다. 어린애들에게는 에너지가 많은 탓일까? 늘 아이들이 있는 공간은 싫지 않은 시끌벅적함이 함께 한다.

말을 걸기전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던 할머니 한분이 느지막이 나와서 내 앞자리에 앉으면 ” 본 아뻬띠!” (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자녀들이 여기까지 데려다 주어서 왔지 혼자서는 절대 이곳에 오지 못한다는 푸른눈의 할머니가 이곳에 오니 근심, 걱정이 다 사라져서 좋다고 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어도 사람에겐 늘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 부족한 것이 죄라시던 수녀님의 말씀이 참 맘에 들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베풀것인가? 혹시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심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이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말했었다. 세기의 지성이라고 불리었던 그도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힘들어 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다.

조용한 아침, 타인을 향한 사랑을 부풀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