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

오후 4시, 집 주위 사방 1km 이내에서 이동 가능하다는 통제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곳이 있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조그맣고 까만 소녀가  긴머리를 하나로 묶고 앉아 있었다. 그 옆에 가만히 앉으니 눈 앞으로 태양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기후변화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다. 기후가 변하기 전, 빠리에서 11월은 회색빛 을씨년스러운 날씨만 볼 수 있는 달이었다. 문득 옆으로 시선을 옮기니 소녀의 갸냘픈 발목이 눈에 들어온다. 춥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녀를 유심히 관찰한다. 파키스탄이나 인도 출신의 소녀일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옆에 바랜빛깔의 커다란 분홍색 가방을 놓고 있었다. 아마도 학교에서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인듯 싶었다. 9살쯤 되었을까? 보통 어린아이들은 부모들이 동반하곤 하는데 무슨 사연이 있을 법도 하다.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또릿또릿하게 생겼다. 긴 속눈썹이 인상적이다.  바랜 분홍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다고 말을 해주려다가 갑자기 망설여졌다. 이 아이는 불어를 알아 들을 수 있는 아이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말없이 손가락으로 그 아이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는 부부을 가르켰다. 아이가 센스가 있는지 얼른 알아듣고 운동화 끈을 매기 시작한다. 까만 얼굴에 바싹 마른 체형이라 내가 혹시 나이를 너무 어리게 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형색은 몹시 가난해 보였다. 가난해 보여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애틋한 감정이 일어난다. 이런 아이라면 데려다가 기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난해 보이는 것이 이런 애틋함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구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일어난다.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먼저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아이는 내 자리를 지나쳐서 뒷쪽으로 가서 앉았다. 창밖으로 울긋불긋한 가로수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시 그 아이를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를 지나쳐서 앞자리로 가 앉는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 아이는 내가 느끼는 애틋함을 알아채린 것일까? 그래서 내 눈 사정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일까?

창밖 거리 풍경에 사로잡힌 사이 버스는 종점에 다다렀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어디에서 내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내리는지 보아둘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생전 처음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왜 이런 애틋한 감정이 드는 것일까? 어쩌면 그 아이도 내 이런 감정을 알아차렸기에 앞자리에 와서 앉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느끼는 동물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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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시장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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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해마다 9월이면 ‘유럽문화 유산의 날’이라는 이름 하에 평소에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공공기관들을 개방하여 일반인들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올해는 9월 19일과 20일인 주말이었다. 평소에 시청 앞을 지나며 그 외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해 왔었는데 내부로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9월 20일 일요일에 빠리 시청을 관람했다.

현대를 사로잡고 있는 물질주의 문명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성향의 나이지만 때때로 빠리에 있는 노트르 담 성당이나 그외에 잘지어진 건물들을 지나칠때면 그 물질이 가진 위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곤 하는데  빠리 시장의 집무실을 드려다 보면서 그 검소함에 깜짝 놀랐다. 코로나로 인해 방문하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속에서 줄을 서서  빠리 시청을 방문했는데 마지막 코스에 다다른 곳이 어떤 허름한 사무실이었다. 나는 이곳이 공사중인 휴계실인가 했다. 나오는데 어느 프랑스인 여자가 이곳이 빠리시장의 집무실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난,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서 이곳이 빠리시장의 집무실이냐고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시장의 사무실이 이렇게 검소할 수가 있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시장이  좌파이기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올해 있었던 시장 선거에 재선된 빠리시장은 스페인 출신의 ‘안 이달고’ 시장이다. 그녀는 1959년생인데 아주 여성스러움을 품은 아름다운 여자이다. 보통 프랑스 좌파 정치인 여성들은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데 보기 드물게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여성 시장이다.

그러고보니 빠리 시장은 참 오랫동안 프랑스 좌파가 차지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내부는 외부와 달리 몹시 검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진정한 사회주의 철학을 갖춘 좌파를 특징 짓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coronavirus 19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21세기 초반을 강타한 전염병, corona virus 19 !

며칠 전부터 빠리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전철 역에서 또는 슈퍼마켓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묘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빠리에도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 비루스로 병원에 입원을 했고 라디오에서는 쉬임없이 코로나 비루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무조건 외출을 삼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예방법이라고 한다. 학교도 문을 닫고 상점도 문을 닫고 그리고 100명 이상의 모임은 금지되었다. 성당에서는 사람들의 적정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한줄 건너 의자를 빨간줄로 묶어서 사람들이 앉지 못하게 해 놓았다.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는 오래 전에 파티마에 나타난 성모님이 예견한 일이라고도 한다.

과학이 찬란하게 발달한 21세기에도 비루스에 의한 전염병 하나를 막지 못해서 전세계가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비루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치지 않고 이 비루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얼마후면 그 백신이 발견될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지구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있다.

프랑스는 프랑스 전국에 걸쳐 3월 15일 시장을 뽑는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코로나 비루스때문에 저조한 시민 참여율때문에 2차 선거는 미루어져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몇천년을 걸쳐서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왔고 저마다 잘났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도 많지만 결국 우리는 거대한 자연의 재앙 앞에서 무력하고 왜소한 존재에 불과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성당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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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이지만  아직 여름의 열기가 다 가시지는 않았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성당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바스티유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버스 도착 시간이 명시되어 있곤 하는 기계가 먹통이다. 천천히 걸어서 가다가 만나는 버스를 타기로 마음 먹는다.  걷다보니 아침의 상쾌한 기운이 싱그럽고 텅빈 거리가 아름답다. 세느 강은 푸르른 빛을 강하게 발하고 있고 짙푸른 하늘색과  어우러져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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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느 대학의 교양 강좌를 들으러 갔다가 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성당이 있었다. 빠리에서 보기 드문 성당이었다. 신자들이 머리에 미사머플러를 쓰고 있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경건했다. 미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라틴어와 그레고리안 성가로 진행이 된다.  빠리의 한가운데  이렇게 중세의 느낌을 주는 성당이 있다는 것이 놀라왔다.  그리고 난. 이렇게 중세 느낌을 주는 장소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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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거장만 더 가서 버스를 타야지 하고 걷다가 보니 아랍문화 연구원까지 왔다. 이 건물에서는 여러가지 문화행사와 토론 행사들이 진행된다. 아랍문화 연구원 원장은 한때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내고  빠리의 음악축제를 만들어 낸

쟈크 랑이다. 여러무리의 아시아인 여행객들이 지나간다. 중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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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조깅하는 프랑스인들도 가끔 만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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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변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 선 부끼니스트들 중 몇몇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진열을 마쳤다.

그렇게 걷다보니 성당에 거의 다 왔는데  찍어 논 사진들을 더 올릴 수가 없다. 이 사이트에 허용된 용량이 한계에 왔다는 것이다. 조선 일보 블로그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 용량을 올려 달라고 해야 되는 걸까?

여러가지 형태로 조각된 성녀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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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전세계에서 최고의 미남 배우로 명성을 떨친 프랑스 남자배우, 알랑들롱의 인터뷰를 보고 약간의 황당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프랑스 텔레비젼 주말 프로중에 유명인사들을 초대하여 사생활 이야기를 듣는 프로가 있는데 알랑들롱이 초대되었었다. 사회자가 종교가 있느냐고 물으니까 알랭들롱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성모 마리아 상을 꺼내어 들고 입을 맞추면서 어떤 일이 있으면 성모 마리아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대부분 성모 마리아는 그의 부탁을 들어 준다고 했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부탁하는 행위는 미신인가? 종교 행위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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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는 거의 살인 적인 폭염이 여러차례에 걸쳐 있었고 이제 9월 초가 되니까 기온이  17도 밤에는 11도까지 내려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과일을 사러 까르프를 가는데 뻐스로 10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운동삼아 걸어서 갔다가 돌아올때 뻐스를 이용하곤 하는데 오늘은 걸어가는길에 있는 성당에 들렸다가  여러가지 형태의 성모 마리아상 사진 전시회를 둘러보게 되었다.  복도 벽면으로 즐비하게 걸려있는 사진을 보고 있는데  한쪽에서 사다리를 놓고 사진을 걸고 있던 한 프랑스 남자가  저쪽 벽면 밑에 나란히 놓아둔 성모 마리아님 사진을 가리키며 아직 걸지는 못했지만 저기도 사진이 있다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는 장황하게 어떤 마리아 조각상이 가장 오래된 상이며 또 어떤 마리아상은 발견 당시 하얀칠이 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그 하얀 색 아래 또 색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얀색을 벗겨내니 총천연색이 나타나더라는 이야기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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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바이지만 프랑스인들이 종교를 믿는 행위와 한국인들이 종교를 믿는 행위는 매우 다르다. 어떤 신비적인 의미나 복을 비는 형태가 없이 역사적인 사실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게다가 현대에 와서 많은 젊은이들은 성당에 가는 행위도 어리석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마도 물질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이 프랑스인도 성모 마리아상을 골동품적 가치로 이해하고 있는 듯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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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한국의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우연히 듣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던 터라 이 프랑스 남자에게 그 이야기를 대충 해주었다. 그는 프랑스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주로 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같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분석을 하고 있던 터라 더이상 길게 말을 하진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聖人, 聖女들이  태어 났었고 그들은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여러가지 형태의 협회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들만 보더라도 그녀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알랑 들롱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성모 마리아님께 부탁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2019년 까느 영화제의 명예 황금 종려상을 받았던 알랭 들롱은 얼마 전에 뇌졸증으로  스위스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프랑스에도 훌륭한 병원들이 많은데 왜 스위스 병원으로 갔느냐는 프랑스인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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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사진이 바닥에 놓여져 있던 사진 두점이다.

빠리의 뻐스 운전사

IMG_20190525_180529                                                                            뻐스 앞좌석에서 본 운전석

 

기온이   갑작스럽게 상승했다. 빠리는 기온 변화가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변화 무쌍하지만 늘 알면서도 늘 속는 기분이다. 가끔 나는 빠리의 뻐스 운전수들을 하릴없이 관찰하곤 하는데 오늘의 운전수는 밖의 누군가를 향해 아주 다정하고 여유 있는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동료운전수인 것같았다. 늘 같은 여정을 왕복해야 하는 뻐스 운전수들에게는 어쩌면 동료 운전수에게 보내는 손짓 하나가 의미를 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 보니  지난 번 바스티유에서 오페라까지 가는 뻐스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 올랐었다. 당시에  `길 잃은 뻐스 운전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해 놓곤 시간을 내지 못했었다.  그 뻐스 운전수는 그날 그 뻐스의 여정을 처음으로 운전하게끔 배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뻐스가 가는 여정에 공사 현장이 있어서 다른 길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는데 처음 길이다보니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빠리의 교통 공사의 열정은 길을 모르는 운전수들을 모르는 길에 배치하는 것이다`이었다.  그 뻐스에 타고 있던 빠리지엔들이 그에게 어디를 통해서 가야 하는지 훈수를 주고 있었다. 길을 헤매는 그 운전수 덕분에 나는 보즈 광장의 아름다운 정원이며 빅톨위고의 박물관 그리고 그 옆으로 옹기 종기 있는 갤러리들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길 잃은 운전수때문에 약속 장소에 늦어질 수도 있었겠건만 아주 친절하고 여유있게 운전수에게 길을 가르쳐  주어가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빠리지엔 승객들도 나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길을 잃고도 유머를 잃지 않고 빠리 교통공사의 열정 운운하는 운전수의 뱃짱이 나를 또 감동시켰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같으면 나에게 맡겨진 업무를 잘해내지 못했을때 심한 자괴감으로 절절 매곤하는데 이 사회에서는 자기 업무를 소홀히 해 놓고도 핑계를 여유있게 찾아내어 자신을 합리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능력을 솔직하게 말해서 관중에게 도움을 받거나 이해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여유가 많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게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선진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을 심하게 훈련시켜서까지 무엇인가 이루려는 노력들을 하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들을 하기때문인지 스트레스가 되는 일들은 권하지도 하지도 않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활절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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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아 몽마르트에 올랐다. 빠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 예수님의 심장을 의미하는 sacré coeur( 성스러운 마음: 가슴으로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성당에 온 것이다 .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의 가장 높은 계층을 돈의 많고 적음으로 분류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된 것같다. 아마도 미국의 영향일 것이다. 프랑스 학자들의 대담에서 한 학자가 자기는 사회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사람은’시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또 다른 학자는 ‘성인’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성인’은  어른이라는 뜻이 아니고 성스러울 ‘聖人’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聖人’ 이 우리나라 의 ‘양반’과 같은 계열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에 진정한 양반은 가톨릭에서의 ‘성인’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조선이 망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양반들이 사라졌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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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씨가 화창하니 몽마르트 언덕에 관광객이 넘쳐난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에도 불구하고 빠리는 질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야무진 빠리 시장들의 관리 능력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빠리를 넓히는 계획으로 빠리시가 분주하다. 높은 건물을 허가하지 않으면서도 세계 최다의 관광객을 수용하는 빠리시를 이렇게 유지하는 것은 빠리지엔들의 지혜덕분일것이다. 나도 여기에 와서 어느 정도 빠리지엔들의 지혜를 몸으로 경험 하고 익힐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들에게 감사한다.

밖은 관광지의 분위기를 버리지 못하지만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어느덧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바뀐다. 모두들 아름답게 모셔진 성체 앞에서 고요히 묵상하고 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깔멜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맑고 고운 음성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이 고운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너무나 아름답게 창조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는 것이다. 그 불평과 불만은 결국 그 사람의 아름답지 못한 내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부활을 맞이 하여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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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내가 자주 다니던 까페이다. 오래 전에 바로 몽마르트 언덕 밑에 살던때 점심 식사를 하기도 하고 신문을 읽으러 가기도 하고 사람구경하기 위해 앉아 있기도 했던 장소인데 외면을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옛날이 더 운치가 있었는데 아쉽다. 바로 몽마르트 언덕 아래 살면서도 가끔 기도라는 핑계로 성당에 올라가 밤을 새우고 오곤 했었다. 성당 안에는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숙소가 있는데 약간의 돈을 내면 하룻 밤을 묵고 아침 식사까지 제공되는 곳이 있다. 그 때   난, 몽마르트 언덕 바로 밑에 내 아파트가 있었는데 돈을 내고 성당에 올라 가 잠을 자고 오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난, 이 성당의 분위기를 무척 좋아한다. 멀리 이사와서 살고 있는 지금도 자꾸 찾아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 것같다.

어떤 父子

봄날씨가 화창하다. 바람이 부드럽게 볼을 스치고마음이 상쾌해지는  날이다. 뻐스에 오르는 발걸음도 가볍다.  프랑스의 버스는 구조가 좀 다르다.  두명씩 앉는 좌석이 두세트있고 그 다음에 뻐스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앉는 좌석이 두개 있고 그 옆으로는 옆으로 앉는 좌석이 3개 있다. 옆으로 앚는 좌석 맞은편으로는 또 4명이 서로 마주보며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고 그 다음으로 또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옆으로 앉는 좌석에 자리를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맞은편으로 명랑하게 떠드는 프랑스 여자와 프랑스 남자 그리고 키는 멀쩡하게 큰 아들같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먼저 수다스런 프랑스 여자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내렸다. 몇정거장 더 간다음에  아버지와 아들같은 두 프랑스 남자가 좌석에 일어나 내리려는 것같았는데 나도 내릴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커다란  아들같은 남자가 내리다 말고 내 좌석 밑으로 구부리고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찾는 것같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그가 무언가를 떨어뜨렸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같은 남자가 그 아들 같은 남자 등을 밀쳐 내리는 것이었다.   순간 그 아이가 일종의 tic 또는 toc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뻐스에서 내리니 저 앞으로  그두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나는 하릴 없이 그들을 관찰하며 문제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는 평생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만큼 가던 아들이 또 옆 풀밭으로 뛰어들어 무엇인가를 주우려고 하고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거칠게 잡아채어 밀어댄다. ` 아휴, 아버지 노릇하려면 힘도 세야하겠네` 혼잣말을 되뇌며 뒤를 따라가는데 갑자기 키큰 아들이 그 긴다리로 무릅을 꿇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아들을  둔 부모는 평생을 걱정으로 살아야 겠구나. 따라다니며 돌보자니 힘들고 안따라다니면 늘 마음이 불안할 것같다.  다행이 그들은 내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고 멀어져 간다.  아파트 단지 내 잔듸 밭 위로 봄을 반기는 새들의 합창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Clint Eastwood 와 영화 Mule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poses for Newsweek International on January 24, 2004, in Los Angeles, CA. (Photo by Neil Wilder/Corbis via Getty Images)
Actor, director Clint Eastwood

 

영화 배우이며 영화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 Mule`을 보았다. 아주 진부한 주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평생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집중해온 가난한 노인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주 사랑 받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듯싶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영화는 코메디 영화인데 어떤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해서 갔었다. 90에 가까운 노인, 평생 꽃가꾸는 일을 좋아해서 집안 일을 뒤로 했다가 가족에게까지 외면 당하는 외로운 삶이다. 그가 일부러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에 빠지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가족의 사랑도 Give and Take 가 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부 앤드 테이크의 기술에 무딘 사람들에게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90이 다 된 연세에 저정도로 영화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대단한 일이다. 백세 시대라서 그런지 요즘 활동하는 노인들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옛날에는 70 노인만 되어도 자다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편견에 우려했었는데 20세기 의학 발전이 거둔 커다란 성과일 수도 있다. 영화가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고 결론이 뻔해서 중간에 나오려고 우물쭈물하다 끝까지 보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마약 마피아들의 생활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즐긴다는 것만이 인생의 모두인 것같은 사람들…. 어쩌면 언젠가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 순간 동물적 직감으로 살아가는 것같은 사람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이라 할 수없이 적응하는 사람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인간의 존엄성이 그 무지한 세계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상황을 영화로 연출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영화지만 정말 너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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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지독한 폭력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1930년생인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나이 든 모습이 어떤 화려했던 사람도 결국은 늙고 힘 없이 되고 만다고 느끼면서도 난, 클린트 이스트의 지금 모습이 젊었을 때 모습보다도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람만이 아름답게 늙을 수 있는 동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clint-eastwood-a-fistful-of-dollars1964-directed-by-sergio-leone-F4PB9T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시절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