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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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일보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방문을 할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최근 며칠간 혹시라도 한국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들이 기억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북한의 김정은을 아주 몹쓸 사람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이유로 남한 사람인 나에게조차도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보면 한국민들은 전생에 죄가 많아서 한반도에 태어나서 몇천년동안 수난을 당하고도 부족해서 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아주 즉흥적이고 무식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했을 당시 부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뿌리쳤던 것까지 정신분석적으로 다루어 세세하게 분석하기까지 한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그동안의 엘리티시즘에 반대해서라고까지 분석을 한다.

그런데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켰던 북한과의 갈등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 그의 무식함, 즉흥적 성격 등으로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격이나 인격이 어떻든간에 그의 위치가 대통령인만큼 그주위에는 훌륭한 미국인 정치 고문들이 많이 있다고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속한 공화당 내에서조차도 많은 반발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유럽의 지식인들도 이제는 더이상 트럼프의 행보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일종의 견제 행위가 이루어질 거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유럽지식인들의 이런 추세를 감지한 트럼프가 한국을 방문해서 자신이 저지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A SERIOUS GAME (영화)

355915.jpg-r_1280_720-f_jpg-q_x-xxyxx사진 속의 여인의 모습이 아름답다. 영화의 국적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였다. 유럽에서도 복지가 가장 잘 되어있는 나라들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역시 사랑이 테마이다. 늘 문학과 영화에서 말해지는 주제이지만  싫증나지 않는 주제이다. 북유럽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빠리의 Les Halle 영화관에는 영화관이 30개가 넘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 영화는 아주 작은 방에 배치되어 있었고 관객수도 20명정도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01년이었다. 어차피 현대는 물질만능의 시대로 접어들어서 돈이 신이 된 것을 기정 사실화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1901년대부터 북구 유럽은 돈이 신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영화의 스토리가 증명해주는 것같았다. 북구 유럽 사람들은 솔직하고 신사적으로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도 사랑때문에 자살도 하고 인생을 망치기도 하는 것이다.

 

172639.jpg-r_1280_720-f_jpg-q_x-xxyxx1901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오페라 비평을 주로 쓰는 젊은 아르비드는 화가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그 화가의 딸, 리디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아르비드는 리디아를 만나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기는 돈이 없어서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한마디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리디아는 돈많고 나이 든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얻은 리디아는 다시 스톡홀름을 찾아서 아르비드를 유혹한다. 아르비드도 돈많은 집 딸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그도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446298.jpg-r_1280_720-f_jpg-q_x-xxyxx한번 아르비드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던 리디아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허락을 얻어내고 스톡홀름에서 혼자 생활하며 아르비드를 기다린다.

아르비드는 자신은 이미 결혼했다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리디아에게 밝히지만 본심은 리디아를 사랑하고 있다. 리디아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자살을 하고…

당신같이 부드럽고 교양있는 남편과 결코 이혼할 수 없다는 부인에게 아르비드는 결국 우리의 결혼은 거짓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서 가방을 꾸린다.

 

443017.jpg-r_1280_720-f_jpg-q_x-xxyxx기차역에서 가방을 싸서 부인곁은 떠나온 아르비드와 딸을 결코 너같이 방탕한 여자(리디아)에게 줄 수 없다는 전남편으로부터 간신히 허락을 얻어 데리고 나온 딸을 동반한 리디아가 마주치는데 리디아는 아르비드의 시선을 피하면서 딸을 데리고 발길을 재촉한다.

진부한 주제이지만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했어야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사랑이 행복일까? 행복이 사랑일까?

엇갈린 선택 속에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인 듯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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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식당을 찾았다. 작년 말,한국 친구들이 망년회를 한다고 예약했었고 노래방도 있었는데 맛이 괜찮았다는 느낌으로한국 식당을 찾았다. 사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한국인 예술인들에 대한 배려를 해주는 프랑스인 친구를 초대할 작정이었는데 11시쯤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를 않는다.아직도 꿈속에 있구나 생각하고 혼자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도착하니 12시 30분쯤 되었는데 다시 전화를 넣어보았다. 이제야 눈을 비비고일어난듯 전화를 받는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식사가 나오고 식사가 다 끝나도록 전화기를 붙잡고 수다를 떨었다. 옆자리에 젊은 프랑스 커플이  나와 같은 메뉴를 시켰었는데 내가 전화를 끊자  말을 걸어온다. 내 전화 내용을 들었다고 하면서…

물론 전화내용은 올5월에 이루어질 대선에 대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역시 젊은 사람들이 마음이 열려 있고 선의가 많다는 것을 확인한다. 욕심 많고 편견 많은 늙은이로 늙지 말아야 할텐데… 라는 우려가 인다.

메디아에서 극우파인 마린 르 뺀의 당선이 유럭하다고 한다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만큼 혹시나 하는 염려가 들어서 그들에게 물었다. 마린 르뺀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들은 절대로 그럴일이 없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나도 동조해주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프랑스 정치 분석가들이 이미 트럼프의 당선을 예고했었다. 미국에서는 지금 엘리트들에 대한 반발의 감정으로 트럼프를 택했었다고 하는 정치분석도 있었었다. 프랑스에서라고 엘리트들에 대한 반란이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식당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몇번 버스를 타느냐고 아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묻는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를 검색해 주었다. 아주 처음보는 학생인데 나에게 친근감이 드나보다. 그리고 그 학생이 기다리는 버스가 왔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2분 후에 올거라고 말해주면서 버스에 오른다. 그 학생이 버스에 오르고 나에게 눈으로 인사한다.  역시 젊은 사람들은 신선하다. 쓸데없는 편견으로 물들지 않은 얼굴 표정이 아름답고 미래가 열려 있으니 마음이 여유로워서 선량함이 느껴져서 편안하다.

사실 나이들어도 항상 젊은 시절의 순수함과 패기를 간직할 수 있으면 늘 상쾌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게 되기때문에 불쾌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전철안의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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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인데 봄햇살이 따뜻하다. 겨울은 벌써 어디만큼 달아나고 있는 것일까?

전철안에서 아주 이쁜 풍경을 발견했다. 한무리의 소녀들이 전철안으로 들어닥치니 그 해맑은 얼굴들로 인해 전철안이 화안하게 밝아진다. 몇명은 뒤쪽으로 그리고 옆쪽으로 자리들을 잡았는데 내 앞 창가에 앉은 소녀옆에 또 한 소녀가 갑자기 다가와서 귓속으로 소근댄다. 둘이서 소근대는 모습이 마치 봄볕을 맞기 위해 나선 노란 병아리들을 연상시킨다. 이뻐서 쳐다보다가 내 학생시절이 떠올랐다. 그랬다.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재잘되면 20대 또는 30대로 보이는 어른들이 괜히 싱글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곤했던 것같다. 우리는 쉴새없이 재잘대면서도 그들이 우리를 보고 짓는 표정의 의미를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젊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특권인 것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힘이 솟는 그래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다.  대수롭지도 않은 일상을 재잘되며 미래를 향해 가는 어린 소녀들이 어른들에게는 바라보는 자체로 희망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이제 깨다는 것이다. 고맙다! 애들아! 너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마음이 행복하구나! 거기 그렇게 존재해 줘서 너무 고맙다!

 

 

Il a déjà tes yeux. ( 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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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발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우연하게도 입양할 아이를 기다리던 흑인 부부에게 백인 아기가 오게되었다.

보통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백인 부부들이 가난해서 아기를 기를 능력이 없는 흑인 아이들을 입양하곤 했는데  어떤 경로를 통한 것인지 벤자민이라는 6개월된 백인 아이가 오게 된 것이다.

462644.jpg-r_1280_720-f_jpg-q_x-xxyxx오른쪽 사진은 백인 아이를 입양하게 된 딸이 부모님에게 아이를 선 보이기 위해서 부모님집에 왔는데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흑인 부모님이다. 딸이 아이를 입양했다고 하니 콩고사람들은 말썽이 많은 사람들이니 콩고 아이만 아니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엄마, 그녀는 자기 딸이 백인 아이를 입양했을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465300.jpg-r_1280_720-f_jpg-q_x-xxyxx프랑스에서는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적당한 부모에게 위탁한 다음에 일정기간 그 부모가 아이를 잘 기르는지 확인을 하는데 왼쪽 사진은 그 임무를 맡은 프랑스인이다. 흑인 부모에게 맡긴 백인 아이가 걱정되어서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여자다.

아프리카의 가봉지역에서는 백인 아이의 머리만 만져도 행운이 온다고 믿는 흑인들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고 백인 아이를 가운데 놓고 돌보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흑인 여인네들의 말씨와 행동이 코믹해서 영화 상영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465769.jpg-r_1280_720-f_jpg-q_x-xxyxx백인 아이를 입양해놓고 좋아하는 흑인 아빠, 이들의 이민사도 거론된다. 아이를 입양한 흑인여자의 엄마는 프랑스에 와서 가사 도우미로 평생을 일했고 아빠는 청소부로 평생을 살아서 아이를 입양한 부부는 꽃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467019.jpg-r_1280_720-f_jpg-q_x-xxyxx파란눈의 백인아이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는 흑인부부이다. 흑인 할머니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했더니 경찰에게 아이 납치범으로 몰려 아이를 반환해야 될 위기에 몰리게 된다.  아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576353.jpg-r_1280_720-f_jpg-q_x-xxyxx백인과 흑인의 상황을 역전시켜 아주 코믹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파란눈의 아기에게 어떻게 연기를 시켰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6개월된 아이라면 흑인부부를 보고 두려움을 표현했을 수도 있는데 … 어쨋든 파란눈 아기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문학 까페에서

Kenji_Mizoguchi_1오랫만에 문학까페에 갔다.  책제목이 ‘여자들의 사랑을 위하여’ 와 ‘야만적인 생각들’이었다. ‘야만적인 생각들’이라는 책은 온통 말장난이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은 하느님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나? 진실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난, 사랑의 진실이란 말이 더 좋다. 등등… 그런데 이날의 주인공은  ‘여자들의 사랑을  위하여’란 책을 쓴 영화 역사가였다. 그는 까페가 시작되고 30분이나 지나서 도착했고 사람들은 사실 그를 보기 위해서 기다렸던 거였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도착한 그 프랑스 남자는 영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었고 속눈썹이 유난히 길어서 마치 여자같은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친구들이 모여 하는 공연이 있었기때문에 늦었다고 변명을 하였다. 프랑스인들은 자기 아파트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피아노 콘서트를 연다든지 강의를 한다든지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도착해서 일본인 영화감독, Kenjimizoguchi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옆에 있는 사진이 바로 일본인 영화감독의 사진인데 그는 1898년에 도쿄에서 태어나서 1956년에 작고했다. 그의 대표 작품은 ‘ 47마리 여우들의 복수’라고 했다.  프랑스 영화 역사가는 일본인 영화감독에 빠져서 평생을 연구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kenjimizoguchi는 승화를 통해서 현실을 찾아가는 영화감독이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작품 ’47마리 여우들의 복수’는 유명한 영화감독 ,코닥의 엄청난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kenjjimizoguchi야 말로 진정한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속눈썹이 너무 길어서 여자같은 느낌을 주는 그 프랑스 영화역사가는 일본 영화감독의 이야기에  심취해서 때로는 울먹일때도 있었는데 Kenjimizoguchi 감독은 매번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영화에서는 사랑이 너무 강해서 죽었던 사람이 돌아와서 함께 사는 내용이 있었는데 죽어서 돌아온 사람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였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 프랑스인 영화 역사가는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속으로 저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척이나  사랑 예찬자이기도 하구나 생각하면서 그 일본인 영화감독의 영화를 한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한 일본인, 프랑스인을 저렇게 까지 몰두하게 만들다니…

사랑의 힘으로 죽은 사람도 돌아오게 했다는 말을 들으며 어쩌면 정말 부활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난 주일 성당에서 프랑스 신부님의 강론이 부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진정한 가톨릭 신자라는 거였다.

아무래도 난, 진정한 의미의 가톨릭 신자가 되고 만것같다.

 

동양의 페미니즘, 서양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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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빠리지엔’이라는 신문을 보았어. 튀니지의 여류작가가 ‘페미니즘’에 대하여 썼더군. 참 진부한 주제라는 생각을 했어. 벌써 1990년대 내가   빠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국인 친구들과 에꼴 노르말이라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계시던 유명한 철학자, 데리다의 강의를 들으러 다니곤 하던 시절에 벌써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고 부엌으로 귀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거든. 그 튀니지의 여류 작가는 ‘동양의 페미니즘’ ‘서양의 페미니즘’이라고 타이틀 써놓고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들에 반대하는 여성운동이라고 토를 달았더군.

튀니지는 아랍문화권이지. 최근에 프랑스 바닷가에서  아랍여성들이 옷을 입은채로 물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여 이곳 국무총리인 발스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마리안느의 노출한 젖가슴을 운운하며 아랍여성들의 행위를 비난해서 또 논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있지만 말이야.

페미니즘으로 돌아가서 요즘은 왠지 페미니즘이라 하면 마치 미개국가에서 벌어지는 여성 운동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원래 페미니즘의 원조는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푸리에라고 하는데 보편적인 조화를 주장하는 철학자였던 그는 남자와 여자의 카테고리를 810개로 분류했었다고 하는군.

핵심만 보자면 페미니즘이란 여자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권한을 달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녀들인 진심으로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갖기를 원하는지는 많이 의심스러워. 내 경험에 의한 것인데 사회나 가정에서 여자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것은 결국 여자들이더라고. 그러니까 그녀들의 운동에 순진하게 잘못 가담했다가는 순진한 사람만 멍이 든다는게 내 생각이야.

프랑스 사회도 마찬가지야. 대부분의 생각들이 남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생각을 지지해주는 것도 여자들이지. 다른 여자가 다른 주장을 하면 여자들이 나서서 그 다른 주장을 하는 여자를 박살내고 있거든.

 

난, 아람국가에도  여자들이 남자들을 위대하게 생각하고 있고 여자들이 여자들의 위치를 분명히 낮추고 있을거라는 짐작이야. 왜냐하면 내가 빠리에서 아랍권 여자들을 조금 만나 보았는데 정말 그녀들은 한국의 어머니들만큼이나 남자를 높이 생각하고 있었거든.

모르지, 요즘 한국 tv 드라마를 보면 여성의 지위가 꽤나 향상된 것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그 여성들의 내면이 향상된 지위에 맞게 성숙되어 있는지는 의심 스러워.

아랍에도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미래에 아랍권에 어떤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게 될지 흥미가 진진하기도 해.

19세기의 페미니스트 조르즈 상드( George Sand)

George_Sand_by_De_MussetGeorge Sand하면 우리는 쇼팽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르즈 상드와 먼저 사랑에 빠졌던 남자는 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뮤세였다. 왼쪽 그림은 뮤세가 그린 조르즈 상드의 초상화이다. 프랑스 여자들이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이 1955년도 였다. 그만큼  자유의 나라라고 하는 프랑스에서도 여자에겐 많은 것이 금지 되어 있었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이혼할 권리도 없었다. 그런데 조르즈 상드는 1804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다산 작가로 통한다. 70여개의 소설을 발표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는 휴머니스트적인 작가였다고 한다. 조르즈 상드는 1833년에 알프레드 뮤세를 만나서 애인이 되었다. 뮤세는 당시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었는데 지금의 의학이 말하는 스키죠프렌이라는 병이었다. 뮤세의 소개로 조르즈 상드는 피아니스트인 리스트를 알게 되었었고 그 다음에 쇼팽을 알게되었다.

조르즈 상드는 어렸을때 이름이 Amantine Aurore Lucile Dupin이었다. 자유롭게 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서 나중에 남자이름인 George Sand로 이름을 바꾸고 남자 옷을 입고 다니곤 했었다고 한다.

 

800px-Indiana,_George_Sand_(Calmann-Lévy)조르즈 상드의 첫번째 소설은 Indiana이다. 그녀는 문학 살롱을 통해 당시의 유명한 작가들과 교류를 했다. 발작, 플로베르. 빅톨 위고… 등 특이하게도 빅톨위고와는 오로지 편지로만 교류를 했고 한번도 직접 만난적은 없다고 한다. 나중에 유명한 프랑스 화가 유제니 들라크루와도 교류를 한다.  결혼을 하여 아이가 둘이나 있었음에도 아주 자유로운 여자였다. 역사가들은 조르주 상드가 이쁜 여자는 아니였다고 한다. 매력이 많았고 아주 여성적인 느낌을 많이 주는 여자였다고 한다. 조르즈 상드는 프랑스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여류작가로 역사가 인정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1876년 8월 6일  Château de Nohant-vic에서 눈을 감았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일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과 미용사

da87b5d6c52abfe48f915ee4a86e09f3370d9e22diaporama480x3197월 14일인 오늘은 프랑스의 국경일입니다.  해마다 이날은 개선문을 뒤로한 샹젤리제 거리에서 프랑스 각처에서 지역 또는 집단을 대표해서 온 사람들이 길게 행진을 합니다. 하늘에서는 최신 비행기들이 비행쇼를 보여주고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대통령을 위시한 고위 관리들 앞에서 멋진 행진이 이어지는 날입니다. 정말 볼만한 구경거리들입니다.  또 프랑스는 과연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행사이기도 하죠. 두시간 정도에 걸쳐서 샹젤리제 그리고 꽁꼬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행사가 끝나면 의례적으로 기자들이  엘리제 궁을 방문하여 대통령과 인터뷰를 하곤 합니다. 특해 내년 5월이면 대통령 선거가 있기때문에 현대통령, 프랑스와 올란드가 내년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것인지 아닌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또 며칠 전에  대통령의 미용사 월급이 9895유로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이 질문공세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 관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사람이고 또 대통령이 머리를 써서 국가의 질서를 신경쓰고 있으니까 어느정도의 혜택은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인색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려주는 분들이 있기때문에 국민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05182182d83dc678a97e269534daf103fc601434diaporama480x320보통 국민들은 자신이 먹고 살것만 걱정하고 살아도 되지만 나라 관리들은 모든 국민들의 문제를 신경 써야 하니까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대통령이 통치를 완벽하게 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민의 안위와 안녕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인색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스와 올란드의 미용사는 대통령의 미용사로 임명된 후에 자신의 미용실을 모두 문닫고 오로지 대통령만을 위해서 24시간 대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 미용사의 월급은 보통 장관들의 월급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따지고 하는 국민들을 위한 대통령 노릇, 그것도 참 힘들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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