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시인에게…

수줍음많던26세청년윤동주‘마지막아리랑’은수줍지않았다

43년귀국송별회서허스키한목소리로…
女동급생,그때사연‘현대문학’에기고

▲일본인급우들이연귀국송별회를끝내고찍은사진에담긴윤동주
(앞줄왼쪽에서두번째)의마지막모습.
/현대문학제공
시인윤동주(1917~1945)는생애마지막사진을찍은자리에서‘아리랑’을애처롭게불렀다.
1943년교토도우시샤(同志社)대학영문과유학도중징병을피하기위해귀국을결심한윤동주가일본인동급생들과갖은야외송별회에서‘아리랑’을불렀다는증언이처음으로나왔다.

당시교토우지(宇治)강변에서열린송별회에참석한동급생중생존해있는두명의여학생키타지마마리코(北島萬里子)와모리타하루(森田)에따르면“강변에서식사를한후바위에걸터앉아이야기를나누고있을때급우의부탁에윤동주는‘아리랑’을불렀다”는것.

“거절하지도,사양하지도않고곧바로앉은채로불렀다.조금은허스키한목소리로애수를띤조용한목소리가강물을따라흐르고,모두들조용히듣고있다가노래가끝나자모두박수를쳤다.”

일본인들이자발적으로만든‘윤동주의고향을찾는모임’회원으로활동중인야나기하라야스코(楊原泰子)씨는생존자증언을종합해‘현대문학’9월호에‘시인윤동주최후의사진’이란글을기고했다.“윤동주이외에다른사람이노래를불렀다는기억은없다.윤동주가주저하지도,사양하지도않고노래를불렀던것은급우전원이자신의송별회에참석해준것에대한감사의마음이었을것이다.”

‘윤동주평전’을냈던소설가송우혜씨도“윤동주가아리랑을불렀다는이야기는처음나왔다”며“한국인이확인하기어려웠던일화가일본인의노력에의해밝혀졌다”고평가했다.윤동주는송별회가끝난뒤동급생들과함께사진을찍었고,이사진은1995년KBS와NHK공동제작한다큐‘하늘과바람과별과시-윤동주·일본통치하의청춘과죽음’을통해공개된것으로현존하는최후의사진이다.

그러나윤동주가1943년7월14일치안유지법위반혐의로일본경찰에체포되기한달전쯤찍은이사진에얽힌뒷이야기가생존자들을통해생생하게알려진것은이번이처음이다.

야나기하라씨는“항상강의실뒷문쪽에앉아수업을듣던수줍음많은윤동주였지만,이사진이송별회기념사진이었으므로앞으로떠밀려앞줄중앙,그것도여학생옆에서사진찍은것을이해할수있다”고설명했다.

“이사진속의일본청년들도대부분학도병으로출전,적진으로내몰리고,그후의소식을알길이없다”고한그는“이한장의낡은사진을다시한번바라보기바란다.60년이넘은세월이지난지금도전쟁의비참함과평화의소중함을당신에게이야기한다”고밝혔다.

박해현기자hhpark@chosun.com
입력:2006.08.2900: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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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그렇치…

쉽게씌어진詩-윤동주

창밖에밤비가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남의나라,

시인이란슬픈천명(天命)인줄알면서도
한줄시를적어볼까.

땀내와사랑내포근히품긴
보내주신학비봉투를받아

대학노-트를끼고
늙은교수의강의들으러간다.

생각해보면어린때동무를
하나,둘,죄다잃어버리고

나는무얼바라
나는다만,홀로침전(沈澱)하는것일까?

인생은살기어렵다는데
시가이렇게쉽게씌어지는것은
부끄러운일이다.

육첩방은남의나라
창밖에밤비가속살거리는데,

등불을밝혀어둠을조곰내몰고,
시대처럼올아침을기다리는최후의나,

나는나에게작은손을내밀어
눈물과위안(慰安)으로잡는최초의악수(握手).


EvgenyKissin,Piano

피아노협주곡제1번2악장’로망스-라르게토’

PianoConcertoNo.1(EminorOp.11)’Romance-Larghetto’

P.S:

Chopin…………………..

피아노의시인쇼팡선생이그의첫사랑에게바친이협주곡을

…26세로생을마감한시인에게바친데요

…………..

오늘첫글이니…

잘못된거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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