芙 蓉 山

전략)

강의시간에소주생각이있는학생들은칠성식당으로오라고말해둔다.처음에는10여명도왔었으나워낙거리가멀어점차두셋정도로줄어들었다.같이상경하는장행훈(張幸勳)전동아일보편집국장이나이상선(李相鮮)장군이자주합석해학생들을격려했었다.

거기서소주와삼겹살을권하며학생들과온갖이야기를하지만역시<부용산>을불러야만주흥이돋아진다.

한번소개한바있지만다시소개하면………

“부용산오리길에
잔디만푸르러푸르러
솔밭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타고
간다는말한마디없이
너는가고말았구나
피어나지못한채
병든장미는시들어지고
부용산봉우리에
하늘만푸르러푸르러“

박기동이란벌교출신인목포의학교선생이아끼던여학생이폐병으로죽자(왜정때인그때는폐병이치료가어려웠다)부용산에묻고내려오며노래말을지었고거기에안성현이라는선생이곡을붙인것인데페이소스도듬뿍있어전라남도의남쪽해안지대에서크게유행했다한다.그후박기동선생은호주로이민가고안성현선생은북으로가니그곡은5.16후언젠가금지곡처럼된것같다.그러나노래는애조를띨때유행이잘되는법.2차대전때유럽서병사들사이에크게유행했다는<릴리말렌>도그렇단다.

이<부용산>도슬픈사연의것이여서계속유행이되었으며특히여순반란사건후지리산에들어가빨치산신세가된사람들이자신들의신세도이노래에실어서불러빨치산노래라는딱지가붙기도하였다.오랜후80년대학생운동이격앙되고투옥된학생들이많아졌을때학생들사이에서도이노래가애창되어반체제노래라는레텔이붙여졌다.김대중정부가들어서면서해금아닌해금이되어TV에서도자주들을수있게되었는데,잘모르는사람들가운데는아직도빨치산노래,반체제노래라고말하는사람이더러있다.안맞는이야기다.

전남출신가운데이노래를잘부르는사람이많은데조덕송(순천),이대순(고흥),박석무(무안)씨등은성악가같다.이노래의리바이벌에는이대순총장의공이크다.친구인김성우(金聖佑)한국일보논객에게자료를제공하여칼럼을몇번쓰도록유도한것이다.유명한연극인손숙씨의부군김성옥씨는같은연극인으로목포출신인데그김성옥씨가목포에서부용산음악제를주최하기도하였다.그음악제에앞서호주로이민간작사자에게몇십년만에제2절의작사를부탁하여왔는데내느낌에는아무래도당초의제1절만큼의감흥을주지않는다.

“그리움강이되어/내가슴맴돌아흐르고/재를넘는석양은/저만치홀로섰네/백합일시그향기롭던/너의꿈은간데없고/돌아서지못한채/나외로이예서있으니/부용산저멀리엔/하늘만푸르러푸르러”

벌교에부용산노래비가섰다는것을기사에서읽었다.또나의수강생가운데그곳출신지방의원이있었는데그가한번은부용산정자준공식의초청장을나에게건네주기도한다.지방자치제가확립된후서로관광자원만들기에열성이된때문도있을것이다.

학생들에게술자리종반에는이노래를가르치고합창을했다.오래계속되다보니주인마님도흥얼흥얼따라부른다.

어느날대학의교학처장을만나커피를마시게되었는데나보고학생들에게<부용산>을가르치고있느냐고묻는다.얼핏내강의를감독하고있지않느냐는생각이스쳤다.또일부에서는아직도그노래를불온시하기에그런시각에서묻는게아닌가하는생각도들었었다.

며칠후의혹이풀렸다.다른교수도그런말을하기에물어보았더니대학의신문에났다한다.내강의를듣는기자지망의한학생이<부용산>이야기를보충취재해서신문에장문의글을기고하면서나에게서그노래를배웠다고쓴것이다.여하간학생들이매우좋아한것같다.

(후략)

(남재희회고;文酒40년중에서)

노래-이동원

부용산오리길에잔디만푸르러푸르러

솔밭사이사이로회오리바람타고

간다는말한마디없이너는가고말았구나

피어나지못한채병든장미는시들어지고

부용산봉우리에하늘만푸르러푸르러


그리움강이되어내가슴맴돌아흐르고

재를넘는석양은저만치홀로섰네

백합일시그향기롭던너의꿈은간데없고

돌아오지못한채나외로이예서있으니

부용산저멀리엔하늘만푸르러푸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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