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릉(宣靖陵), now and then
점심을어쩌다그쪽에서먹게되는바람에

모처럼추억을떠올리게하는좋은구경을했다.

추어탕집이바로선정릉(宣靖陵)곁에있는데,자리한번잡기가힘들다.

어제,느즈막하게갔더니어쩌다자리가있어추어탕한그릇을먹었다.

선배님이선정릉에서차나한잔하자고한다.

선정릉은옛날과달리그냥무상으로들어가는곳이아니었다.

65세이하는천원을내고들어가야한다.

매표소에서표를사면서,

내가몇살쯤돼보이느냐고물었더니쌩뚱한표정으로글쎄요한다.

장난으로해본말인데,매표소아주머니는뭔말인가하는심각한표정이다.

(선정릉초입.왼쪽건물이제사를모시는’정자각(丁字閣)’이고그옆이’수복당’이다)

30년만이다.

지난80년신혼때,이쪽도곡동에서살았다.

아파트가도곡동사거리에있었는데,

지금은어디가어딘지도무지감을잡을수없을정도로변했다.

그야말로상전벽해다.

유일하게기억나는곳은도곡동사거리다.

두곳이있었는데,개나리아파트로가는사거리는알겠다.

사거리도나를알아본다.언덕길로가면개나리아파트가있었다.

선정릉을당시그쪽에서걸어가노라면참한적한길이었다.

기억으로는한15분정도의걸음길이었는데,

지금은자동차와사람들이넘쳐나는복잡한길이라,

걸어서가기는좀힘들게보인다.

-‘정자각’너머보이는무덤이성종과그의계비정현왕후를모신선릉(宣陵)-

그때선정릉을보면서느낀것은경주의왕릉이었다.

경주를가보면참신기한것은동산같은왕릉들이다.

시내한복판에웅장하게솟아있는그무덤들을보면서

王都로서의경주를실감하는것이다.

외국사람들에게물어봐도

한국에서제일신기하게보이는것중의하나가

경주의왕릉이라는자료를어디서본적이있다.

선정릉도그렇다.

30년전강남도곡동이지금보다는한적한곳이었지만,

시가지중심에옛임금의웅장하면서도봉긋한무덤이있다는게

경주같은느낌을안겼다.

30년전의선정릉은왕릉치고는참소박했다는느낌이다.

한가지기억나는것은능입구에있던작지만고풍이넘치던낡은기와집이다.

아마도능을지키는능지기가살던곳이아니었던가하는생각이다.

기와집뒤로논과밭이있어그곳에서대대로농사를지으면서

왕릉를지켜온가문의집이였을것이라는추측이었다.

그집은없었다.

내기억이잘못된것일까.

홍살문오른편에아주작고소박한,정자같은집이있다.

수복당(守僕堂)이라는안내표지가있는데,

말하자면왕릉을지키는종의집이라는뜻아닌가.

그러면이게옛날에보았던그기와집이란말인가.

이게내가그때봤던그집이라면,

내기억을탓하는수밖에달리도리가없다.


-수복당(守僕堂)-

그때나지금이나보이고느껴지는것은울창한나무들이다.

특히능의오른편언덕에자리한소나무들은적송들로서군락을이루고있다.

나무들은곧게뻗은것도더러있지만,대부분다소비틀려진모습들이다.

어찌보면벌거벗고괴로워하는사람들의모습을닮았다.

임금이승하해묻히자그를슬퍼하는백성들의모습인가.나의생각이다.

이어딘가에예전에약수터가있었다.그곳은없다.그러니있었던장소도모르겠다.

그무렵,집사람이큰애를임신중이었다.

동네사람들이하는말이있었다.선릉약수터물이복받은좋은물이라는것.

이른새벽이면집에서약수터까지물을길러다녔다.

새벽에담은맑고깨끗한물,마누라는그물을달게받아마셨다.

그덕이었을까,정말튼실한아이가태어났다.

이언덕아래에넑직한터가있었다.그곳은지금휴게소가들어서있다.

80년대초반,이곳에서야유회를가진적이있다.

지금은이세상에없는박진군이회장일때,

고등학교야유회를이곳에서했는데,많이들나왔다.

모두들고만고만한신혼무렵이라,마누라들을끼고나온게기억에새롭다.

야유회를역사가깃든사적지에서한다는게어디가당찮은일인가.

그러나그때는그게가능했다.

문화사적에대한인식이지금만큼못했던,

좀과정해서말하자면호랭이담배먹던시절의일이다.

-선릉(宣陵)-

선정릉엔주지하다시피두개의왕릉이있다.

정자각을기준으로서쪽에있는게조선조9대임금인성종과계비인정현왕후를모신선릉이고,

11대중종을모신릉이정릉(靖陵)으로,정자각의동쪽에있다.

원래이곳엔선릉만있었다.그러나1544년중종이승하한후경기도원당에모셨는데,

그터가좋지않다는얘기를들은문정왕후가1562년이곳으로이장해와

왕릉이두개인선정릉이된것이다.

무덤은변함이없다.망자가살아나오지않는한.

30년전에도능에올라석물들을살펴보면서

성종이라는임금보다는한인간으로서의인생무상을느껴본적이있다.

다시올라본선릉엔잔디깍기가한창진행중이었다.

무덤의잔디깍기는묘한느낌을준다.

망자의길게자란머리를깍아준다는의미를생각하니그렇다.

이장을한탓인가.

중종의무덤은성종의그것에비해규모가좀작다.

세워져있는문.무인상등석물도성종것에비해좀초라한느낌을준다.

정릉엔슬픈얘기가있다.

임진왜란때선정릉은왜군에의해파헤쳐졌다.

선릉의경우성종과정현왕후의遺軀도없어졌다.

왜군이파내어딘론가로보내훼손시킨것이다.

선릉이그러니정릉도그러려니했다.

그러나정릉에선시신이하나나왔다.그러나그게중종인지확인할길이없었다.

중중은더운여름날죽어묻혔다.

그렇기때문에시신이남아있을리없다.

그래서그시신이중종이아니라는판단아래시신을무덤에서파내다른곳에묻었다.

그후정릉에서밤마다비통한울음소리가그치지않았다는것이다.

지금생각해보면그시신이중종의것일수도있다.

땅의기운,즉지기가좋으면시신이썩지않을수도있지않은가.

-정릉(靖陵)-

그런생각으로정릉을보니마음이좀짠해진다.

더구나30년만에올라본정릉은한창개수작업중이다.

무슨갑바같은것으로무덤을휘둘러감아놓은게좀으시시하다.

죽어서이장에다시신까지버려진중종의얄궂은운명의영혼이어른거려서인가.

그래서일까.정릉앞의소나무들은더비틀려진모습들이다.

사람이죽어묻혀있는幽宅을대하면마음이숙연해진다.

그게왕릉이라고어디다를바있겠는가.

그건시공을초월한다.

30년만에둘러분선정릉의느낌도그것이다.

人生無常

諸行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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