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일보 어느 기자의 ‘특별한 生還’

그저께좀색다른기사가하나실렸다.

암을앓던어느기자가암의고통에서벗어나복직을하면서

그간의투병생활을담담히적은글이다.

암은이제특별한것이아니다.가까이에서접하고대하는일상적인것이다.

세명가운데한명이걸린다는암이다.

따라서암에서치유됐다는것도특별한얘기꺼리는아니다.

그러나조선일보洪기자의이글을보면서

그의’생환’이좀특별하게느껴지는그무엇이있었다.

기자의업무는고달프다.일로인한스트레스의강도는그어느직업보다세다.

그래서많이들아프고,많이들죽는다.평균수명도다른직업군들에비해짧다.

조선일보기자라고암을피해갈수는없다.

한때조선일보기자들중에암환자가여럿인적이있었다.

기억하기로편집국에서너명이동시에암에걸린것이다.

지금도그렇지만그무렵은조선일보를반대하는

이른바’안티조선’의기세가아주강할때다.

조선일보기자서너명이암을앓고있다는기사가어떤경로를통해알려졌다.

그것을’안티조선’세력이놓칠리가없다.

인간적으로도저히납득할수없는이른바’저주의굿판’을벌인것이다.

암에걸린조선일보기자들이빨리죽기를바라는글들이인터넷에올려진것이다.

차마입에담기조차도어려운해괴한글들이난무했다.

조선일보기자들의암발병,암투병은이러한악의적인

사회적광기와맥을같이하고있는것이어서소식을접한대다수독자들의

마음을어둡고게릅칙하게했던측면이있다.

"조선기자들의암발생기쁜소식.

하늘이그런놈들을그냥넘어갈리는없다.

말기를거쳐서신속하게사망에이르기를바란다."

이런글도있었다.

"암세포야힘내라.

앞으로너희(암세포)들에게온갖고통이따를지라도

흔들리지말고버티거라."

그때암을앓던조선일보기자들이그후어떻게됐는지는모른다.

그러나당시이런글들을본그기자들의마음이어땠을까.

암치료에도상당히안좋은영향을주었을것이틀림없다.

암보다더무서운것이이런狂氣가아닐까.

그래서일까,조선일보이기자가암을털고일어나

사회에다시복직하는게색다른의미로다가오는것이다.

洪기자와더불어한사람이더생각난다.만평을그리던申모화백이다.

그사람도고약한암에걸려고생타가근래회복해신문사로복귀했다.

이분은예전에같은신문사에있었기에소식을좀안다.

신문만평은기사와는달리각종사회현안을,

시니컬한그림한장에담아내야하는촌철살인의의미를지닌,

신문의한예민한소스이다.

신화백은조선만평을맡으면서스트레스가무척심했다.

민감한시국현안의소용돌이속에그와그의만평에대한각종형태의해꼬지가격렬했다.

휴대전화바꾸기를밥먹듯했다.술,담배에절수밖에없었다.

그러다덜컥암에걸렸다.

견강부회라도좋다.

이들이만난의신고끝에암을털고사회로복귀한것은

그런사회적광기를극복한측면도있다.

조선일보사람들의암으로부터의생환은그래서특별한것이다.
이들의생환을축하한다.

[홍헌표암환자로행복하게살기(1)]

2년4개월만에돌아온직장,늘웃고행복을말합니다

  • 홍헌표bowler1@chosun.com
  • 입력:2011.01.3123:09/수정:2011.02.0110:01

    홍헌표기자

    갑작스러운혈변(血便)대장암3기라했다
    죽음이란단어가내눈앞에다가왔다
    식이요법·명상투병이아니라’건강지키기’라생각했다
    많이웃고즐겁게산다

    제지갑안에는특별한’증’이하나있습니다.등록번호010812××××,유효기간2008년9월6일~2013년9월5일.암환자임을보여주는’중증환자등록증명’입니다.이증만있으면암관련진료비등을5%만내도됩니다.유효기간이딱5년인데,최초암진단후5년이내에재발·전이가없으면암이완치됐다고판정하기때문입니다.

    다행히지금제몸에서는암세포가보이지않습니다.2008년대장암수술을받은후부터줄곧그랬고,한달전검사때도확인했습니다.하지만저는앞으로2년7개월을더’암환자’로살아야합니다.2년4개월만에복귀한직장의동료와친구들이"다시는못볼줄알았다"며눈물을글썽거리며기뻐해주었습니다.친척들도혹시나잘못될까봐안부인사도제대로못했다고합니다.그들에게도저는여전히암환자입니다.

    오랜만에만나는사람들은많은질문을던집니다."다나은거야?""좋아졌지?""치료는어느병원에서받는데?"궁금해서,걱정스러워하는말들입니다.매번같은대답을하다보니저도지치지만,저를걱정해주는마음을생각하면그리짜증낼일은아닙니다.궁금증을풀어주기위해상세하게설명을해줍니다."대장,정확히는S결장에1.4×4.6㎝짜리암덩어리가있었다.폐와간에는전이되지않았지만림프절에조금번져있었다.15㎝를잘라내고항암치료를조금받았다.3기진단을받았지만,지금은멀쩡하다."대충이런내용입니다.다만"병원에서는의학적으로환자로보지만,나는그런생각안하고살고있다"는말은빠트리지않습니다.

    사실저스스로는암투병중이라는사실을잊고지냅니다.하루도거르지않으려고노력하는식이요법과명상,이것은’투병’이아니라’건강지키기’라고생각합니다.투병이란단어는왠지우울하고비관적인느낌으로다가오기때문입니다.

    그런데도죽음이란현실과맞닥뜨릴때튀어나오는본능은어쩔수없나봅니다.재작년에고(故)장영희교수가세상을떠났을때한동안편히잠들지못했습니다.고인과특별히인연은없었지만나를든든하게지켜주던’암투병동지’라여겼기에제게도똑같은일이어느날닥칠수있다는두려움때문이었습니다.제몸은자신감을가질만큼회복되지않은상태였고,삶보다는죽음이란단어를더자주떠올렸던때였습니다.1년전암으로선종하신고(故)이태석신부님이저와비슷한시기에저와똑같은대장암진단을받고투병했다는것을알았을때도제마음은무거웠습니다.

    이철원기자burbuck@chosun.com

    2008년9월8일병원에서암통보를받았던날,머릿속이텅빈듯멍해졌습니다.갑작스러운혈변으로병원에가서검사를받은지사흘만의일이었습니다."전이가없으니나을수있다"는의사의희망적인말은귀에들어오지도않았습니다.아무생각없이반나절이흘렀습니다.불과몇시간전만해도나와는전혀상관없을것같았던죽음이란단어가내눈앞에닥쳐왔음을실감했습니다.가족과의이별을떠올리게된것은하얗게밤을새우고난다음날아침이었습니다.

    암수술을받고난뒤명상과기도를통해간신히마음을추슬렀습니다.그러나몸한구석에서작은통증이느껴지고화장실에자주가는일이생기면불길한느낌에사로잡히곤했습니다.가족들에게,저자신에게짜증내는일도잦아졌습니다.

    그럴즈음내게힘이되어준것은암투병중인이해인수녀님의글이었습니다.2009년12월4일자조선일보에실린’12월의편지’였습니다."병이주는쓸쓸함에맛들이던어느날나는문득깨달았지요.오늘이시간은’내남은생애의첫날’이며’어제죽어간어떤사람이그토록살고싶어하던내일’임을새롭게기억하면서정신이번쩍들었습니다.지상의여정을다마치는그날까지이왕이면행복한순례자가되고싶다고작정하고나니아픈중에도금방삶의모습이달라지는것을발견했습니다.마음엔담백하고잔잔한기쁨과환희가물안개처럼피어올라전보다더웃고다니는내게동료들은무에그리좋으냐고되묻곤했습니다."

    수녀님의글은내게희망이었습니다.거짓말처럼그순간저의삶은달라졌습니다.저는낫게해달라는청원기도보다는오늘도저와제가족을편히잠들게해주셔서감사하다고기도합니다.많이웃습니다.밥안먹던둘째딸이맛있게밥한그릇을뚝딱먹어치우면환하게웃으며기뻐했고,집앞공원에벚꽃이흐드러지게피면손뼉을치며탄성을질렀습니다.마음이평화로워지니몸도살아났습니다.매일스스로를치유하는소리가들리는듯했습니다.암과맞설수있는힘을나타내는백혈구와림프구수치가안정권에들어가기시작한것도그무렵이었습니다.

    암투병하면고통,우울,죽음이란단어를떠올립니다.하지만암과싸워이긴사람들은희망과사랑,행복을더자주말합니다.삶의끈을꼭붙들기위한본능입니다.회사동료들은"스트레스받지말고일하라"고격려하곤합니다.그러나일을마치고집으로돌아갈때쯤이면눈도시리고몸은무겁습니다.그럴때면나는동료들에게"수고하셨습니다"하고큰소리로인사를합니다.그한마디에피로가절로풀립니다.새벽마다집앞성당에갑니다.미사시간중에"오늘도많이웃게해달라"고기도합니다.암과함께행복하게살아가기를다짐하는시간입니다.

    홍헌표기자가쓰는’암환자로행복하게살기’를월1회연재합니다.홍기자는올해46세로사회부,스포츠부에서일했습니다.스포츠부근무중2008년9월대장암3기진단을받았습니다.2년4개월간식이요법,명상등으로암을극복하고지난달기자로복귀했습니다.홍기자의암극복기가암환자와가족들에게용기와희망을주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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