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소막 성당’의 추억

아내친구내외가강원도주천에살고있다.

6월초,울적한마음을달랠겸그곳으로갔다.

주천이면영월땅이고해서낯선곳이려니했다.

그러나그렇지않았다.원주신림에서그닥멀지않은곳이었다.

신림이면예전의그신림,그러니까용소막성당이있는곳이아닌가.

1980년대초,여기를많이왔었다.

장모님의몸이안좋았다.장인어른이어디요양할데를구하다가찾은곳이신림이다.

신림의한농가를세로구입했다.윗채와아랫채가있는자그마한시골촌집이었다.

윗채를쓰고아랫채는집을관리할젊은부부가살았다.

처가에서신림을요양처로구한것은장모님의생각을반영한것이다.

그곳에있는’용소막성당’때문이었다.

그때’용소막성당’을처음봤다.명동성당의축소판같았는데,

이국적이면서도중세풍의다소곳한분위기가좋았다.

장모님은그성당에오르간을한대기증하셨다.그리고그곳에머무를때면오르간을연주했다.

미사시간에도연주했고,그냥한가한시간에도오르간과있는시간이많았다.

한갖진오후,어두컴컴한성당에서울려나오던청아한그레고리안찬트곡을잊을수가없다.

신림땅,그리고’용소막성당’으로인해나는치악산과인연을맺는다.

그곳을말하자면베이스캠프로해서종주등반을즐겼다.

큰아이가서너살쯤됐을까,그어린아이를데불고껌껌한밤,

제천역에내려밤길로신림을찾아가던기억이새롭다.그아이가벌써서른을넘겼다.

신림땅은예전과별차이가없었다.

기억을더듬어가니옛생각이새록새록들정도로낯익게다가왔다.

‘용소막성당’도예전그대로다.본당모습도,그앞의나무도옛그대로다.

성당안도그대로다.변한게별로없다.오르간이장모님이만지시던오르간인지확인하지는못했다.

못한게아니라하고싶지않았다.

장모님은암을극복하시고건강하게살고계신다.

장모님수발을하던장인어른이먼저세상을뜨셨다.20년전이다.

그간너무무심했던것같다.

다음에갈적에는장인어른을위한기도를바쳐야겠다는생각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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