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태주 시인 어머님의 편지

아래글은임태주시인의어머님이돌아가신후발견한편지입니다

♣임태주시인어머니의편지

아들아,보아라.

나는원체배우지못했다.호미잡는것보다글쓰는것이천만배고되다.
그리알고,서툴게썼더라도너는새겨서읽으면된다.
내유품을뒤적여네가이편지를수습할때면나는이미다른세상에가있을것이다.
서러워할일도가슴칠일도아니다.
가을이지나고겨울이왔을뿐이다.
살아도산것이아니고,죽어도죽은것이아닌것도있다.
살려서간직하는건산사람의몫이다.그러니무엇을슬퍼한단말이냐.

나는옛날사람이라서주어진대로살았다.
마음대로라는게애당초없는줄알고살았다.
너희를낳을때는힘들었지만,낳고보니정답고의지가돼서좋았고,
들에나가돌밭을고를때는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당근이며무며감자알이통통하게몰려나올때
내가조물주인것처럼좋았다.
깨꽃은얼마나예쁘더냐.양파꽃은얼마나환하더냐.
나는도라지씨를일부러넘치게뿌렸다.그자태고운도라지꽃들이무리지어넘실거릴때
내게는그곳이극락이었다.
나는뿌리고기르고거두었으니이것으로족하다.

나는뜻이없다.
그런걸내세울지혜가있을리없다.
나는밥지어먹이는것으로내소임을다했다.
봄이오면여린쑥을뜯어다된장국을끓였고,
여름에는강에나가재첩한소쿠리얻어다맑은국을끓였다.
가을에는미꾸라지를무쇠솥에삶아추어탕을끓였고,
겨울에는가을무를썰어칼칼한동태탕을끓여냈다.
이것이내삶의전부다.

너는책줄이라도읽었으니나를헤아릴것이다.
너어렸을적,네가나에게맺힌듯이물었었다.
이장집잔치마당에서일돕던다른여편네들은제새끼들불러
전나부랭이며유밀과부스러기를주섬주섬챙겨먹일때
엄마는왜못본척나를외면했느냐고내게따져물었다.
나는여태대답하지않았다.
높은사람들이만든세상의지엄한윤리와법도를나는모른다.
그저사람사는데는인정과도리가있어야한다는것만겨우알뿐이다.
남의예식이지만나는그에맞는예의를보이려고했다.
그것은가난과상관없는나의인정이었고도리였다.
그런데네가그일을서러워하며물을때마다나도가만히아팠다.
생각할수록두고두고잘못한일이되었다.
내도리의값어치보다네입에들어가는떡한점이더지엄하고존귀하다는걸
어미로서너무늦게알았다.
내가슴에박힌멍울이다.
이미용서했더라도애미를용서하거라.

부박하기그지없다.네가어미사는것을보았듯이
산다는것은종잡을수가없다.
요망하기가한여름날씨같아서비내리겠다싶은날은해가나고,
맑구나싶은날은느닷없이소낙비가들이닥친다.
나는새벽마다물한그릇올리고촛불한자루밝혀서천지신명께기댔다.
운수소관의변덕을어쩌진못해도아주못살게하지는않을거라고믿었다.
물살이센강을건널때는물살을따라같이흐르면서건너야한다.
너는네가세운뜻으로너를가두지말고,네가정한잣대로남을아프게하지도마라.
네가아프면남도아프고,남이힘들면너도힘들게된다.
해롭고이롭고는이것을기준으로삼으면아무탈이없을것이다.

세상사는거별거없다.속끓이지말고살아라.
너는이애미처럼애태우고참으며제속을파먹고살지마라.
힘든날이있을것이다.힘든날은참지말고울음을꺼내울어라.
더없이좋은날도있을것이다.그런날은참지말고기뻐하고자랑하고다녀라.
세상것은욕심을내면호락호락곁을내주지않지만,
욕심을덜면봄볕에담벼락허물어지듯이허술하고다정한구석을내보여줄것이다.
별것없다.체면차리지말고살아라.
왕후장상의씨가따로없고귀천이따로없는세상이니네가너의존엄을세우면그만일것이다.

아녀자들이알곡의티끌을고를때키를높이들고바람에까분다.
뉘를고를때는채를가까이끌어당겨흔든다.
티끌은가벼우니멀리날려보내려고그러는것이고,뉘는자세히보아야하니그러한것이다.
사는이치가이와다르지않더구나.
부질없고쓸모없는것들은담아두지말고바람부는언덕배기에올라날려보내라.
소중하게여기는것이라면지극히살피고몸을가까이기울이면된다.
어려울일이없다.
나는네가남보란듯이잘살기를바라지않는다.억척떨며살기를바라지않는다.
괴롭지않게,마음가는대로순순하고수월하게살기를바란다.

혼곤하고희미하구나.
자주눈비가다녀갔지만맑게갠날,사이사이살구꽃이피고
수수가여물고단풍물이들어서좋았다.그런대로괜찮았다.
그러니내삶을가여워하지도애달파하지도마라.

부질없이길게말했다.살아서한번도해본적없는말을여기에남긴다.
나는너를사랑으로낳아서사랑으로키웠다.
내자식으로와주어서고맙고염치없었다.
너는정성껏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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