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 어떤 후배
지난 연말에 일본 교토에 가자고들 의견이 모아졌다. 고향에서 지역사회 연구원을 하시는 선배의 제안에 따른 것인데, 그 일차적인 목적은 마산의 옛 일제 강점시기 일본 주신을 숭배하던 ‘송미신사’의 원조가 교토라는 점에서 탐방과 함께 그곳 사케 맛도 좀 보자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교토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있는 그 선배의 동생도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비행기 티켓까지 예매한 상태에서 가질 못했다. 선배 일행은 예정대로 갔다 왔고.
선배를 얼마 전 마산서 만났는데, 이런 저런 교토 얘기를 나누던 중에 교토대학의 동생 얘기를 꺼낸다. 아마도 총장이 될 것 같다는 얘기다. 교토대학이 아니라 부산에 몸 담고있던 대학인데, 여러 명의 응모자들 가운데 좀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의 얘기를 전하는 선배도 대학교수 출신이다. 하지만 중도에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하차했기에 교수로서의 동생의 행로에 심사가 남다를 것이다. 서로간에 동생이고 후배라 긴 이야기는 없었지만, 속으로 결국 정점을 향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나의 중학교 한 해 후배다. 후배지만 조심스런 후배다. 강단이 있고 문무를 겸비한 친구다. 문무를 겸비했다는 것은 그 후배의 독특한 캐릭터가 대변한다. 공부하는 머리도 그렇지만 그를 뒷받침하려면 체력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론을 평소에 갖고있지 않았나 싶다.
후배는 야구를 잘 하는 고등학교를 나와서인지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학교 다닐 적에 가회동에서 하숙을 같이했었는데, 후배 방에 있던 야구 방망이가 생각난다. 새벽녘이건 어둔 밤이건 하숙집 좁은 마당, 아니면 삼청공원에서 항상 야구 방망이를 갖고 배팅 연습을 하곤 했다. 야구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 당시 명 해설가인 이호언의 야구 해설을 익살을 더해 ‘해설’하곤 했다.
후배는 대학을 여러번 입학했었다. 정치과나 외교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그에 미달해 2지망으로 들어갔다 그만 두고 다시 공부해 의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또 미달해 치대를 들어갔다 또 그만 두고. 한참을 그러는 것을 지켜 보았는데, 어느 해인가 보니 국문학과엘 다니고 있었다. 물론 후배는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문재도 뛰어났다. 특히 영화도 좋아했는데, 그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로버트 드 니로의 ‘디어 헌터’를 품평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학교를 나와 후배는 기자가 된다. 그 때 마산서 시험치러 서울 올라와 부천 나의 신혼집에 한 며칠간 머물렀는데, 용케도 합격이 됐다. 그 때가 1980년이니 벌써 사십년이 다 돼 간다. 그 후 기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로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 후인가 후배가 미국 유학을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기자보다는 공부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후배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부산의 한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전공은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한 사회학이었다.
후배가 ‘사고’를 친 것은 그 대학에 있던 19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어느 신문에 ‘대학교수 복서’라는 기사가 났다. 바로 그 후배였다. 교수를 하면서 복싱클럽에서 복싱을 연마했던 것이다. 그래도 교수 아닌가. 취미로 했으면 취미로 끝낼만한 지위인데 후배는 그렇지 않았다. 복싱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그 당시 기사에는 링에서 시합을 벌이는 후배의 사진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전화를 했을 것이다.
니 뭐하고 있노? 공부 안 하고.
아, 형이요.
니, 깨짔제?
와요? 나는 승패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이 글을 쓰면서 기사를 검색해보니 좀 다르게 나와있다. 분명 그 당시 신문기사에는 시합에서 연전연패했다고 했는데, 검색기사에서는 무슨 준우승까지 했다고 쓰고 있다. 좀 과장된 기사가 아닌가 싶다.
그 후배가 그 대학의 총장이 됐다는 것을 어제 기사를 보고 알았다.
카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고맙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예전보다 훨씬 나긋해졌다. 암, 그래야지.
2012년 7월이던가 그 대학 부총장 시절 학교에서 한번 만났다. 바쁜 업무의 와중에 학교 아래 잘 간다는 식당에서 생선회를 사주었다. 후배는 술을 잘 못한다. 그래도 한 잔 술은 겻들였던 것 같다. 서울로 올라와 얼마 안 있는데, 당시 몸 담고있던 신문에 그 대학 광고가 게재됐다. 그 대학은 그 신문에 광고를 잘 안 준다고 했다. 광고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고맙다.
고맙기는 씰데 없이.
어쩌다 주고받는 후배와의 대화도 문자 메시지 같은 형태다. 씰데 없는 말은 잘 하질 않는다. 신념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총장 당선을 보도하는 신문의 기사가 다들 좋다. 잘 써준 것 같다. 아마 내가 후배의 프로필을 쓴다면 평소 체질상 맞지 않지만 그보다 더 잘 써줄 것 같다. 그만큼 훌륭하고 일 잘하는 후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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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한석정 교수(63·사진)가 동아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학교법인 동아학숙은 25일 이사회에서 한 교수를 제15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임기는 오는 8월부터 4년간이다.
한 교수는 “대학의 조타수 역할을 맡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동아대학교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1953년 경남 마산시에서 태어나 월포초등학교와 마산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 교수는 국내외에서 ‘만주국’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1999),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2008, 공저) 등을 썼고, 최근에는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해 ‘만주모던’을 펴냈다.
‘만주모던’에서는 1960년대 한국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국토개발, 반공대회 등의 정책이 만주국에서 기원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학문적 성과외에도 그는 ‘교수 복서’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6년 3월 아마추어 복싱 부산 신인대회 웰터급에 출전했고, 같은해 11월 아마추어 복싱 부산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웰트급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그의 연구실에는 항상 샌드백과 아령과 같은 운동기구가 있다. (출처: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news/458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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