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漢山 산행 – Sentimentalism

산에 가는 것도 이젠 예전과 다르다. 연부역강의 나이가 아니니 체력의 쇠퇴가 우선 그렇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마음가짐도 문제다. 많이 게을러졌다. 산에 가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챙길 것도 많고 코스도 숙지해야 한다. 속된 말로 걸거치고 귀찮은 게 한 두어가지가 아닌게 산행이다. 또 하나는 자꾸 감상적이고 회상적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센티멘털리즘에 젖는다는 것인데, 이게 게으름과 어우러져서 산행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간다. 이상한 방향이란 다른 게 아니다. 산행은 술이라는 등식을 성립케 한다는 얘기다.

오늘은 아예 배낭도 매지 않았다. 아내는 동네 삽작 산책가는 줄로 알았을 것이다. 구파발역에 내려 34번 버스. 산성입구에 내려 오른다. 코스가 두개 있는데, 편한 쪽, 그러니까 산길을 버리고 아스팔트 길로 오른다. 회상의 길이다. 옛날 생각에 젖으며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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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문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주막이 있었다. 하산길이면 곧잘 들려 막걸리를 마시던 집이다. 아내는 산에 안 다닌다. 10여년 전 소백산을 갔다가 119 헬기를 탈뻔한 사고 이후다. 예전에 나와 다닐 적에는 이 집에서 막걸리 한잔 씩 했다. 그 조금 위 오른편에 허름한 가게가 있었다. 여위고 얼굴이 까맨 아낙이 라면과 막걸리, 파전 등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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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들은 물론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그 인근에 남아있는 옛 흔적으로는 한채의 독립가옥이 있다. 북한산 정비 때도 살아남은 집이다. 삼십여년 전 그 집을 보고 언젠가 저 집을 반드시 사리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다. 실제로 어딘가에 문의하기까지 했다. 내 궁리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것이라 그 생각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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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사를 지나 중성문 쯤에 이르면 슬슬 게으름이 피어난다. 이 쯤에서 내려갈까.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고 오른 북한산이 아니었기에 어디서건 내려가면 된다. 모처럼 오르니 힘도 든다. 그 때 산영루(山映樓)가 생각났다. 산영루까지는 가자. 산영루, 이름이 좋지 않은가. 북한산의 모습을 담은 누각이란 뜻인데, 북한산의 몇 안되는 절경에 꼽히던 곳이라 정약용이 글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옛 산영루는 물론 지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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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영루는 터만 남아있던 것을 재작년에 복원을 해 다시 세워 놓았다. 산영루 터 인근에는 옛 비석들을 모아 놓은 곳도 있다. 조선시대 경기인근 관리들의 선정비 등을 모아놓았는데, 이 자리가 예전에는 정취가 있었다. 그 앞에 산영루 터가 있었고, 옛 산영루를 1900년대에 찍은 흑백사진으로 산영루를 설명하는 팻말이 꽂혀 있었다. 그 흑백사진이 좋았다. 구기동에서 대남문으로 올라 구파발 쪽으로 하산하는 석양길, 이곳에 앉아 옛 산영루를 생각하며 비석들의 글을 한자 한자 읽어보던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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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영루까지 왔으면 그 좀 위 샘터를 봐야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샘을 돌각을 세워 약수터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예전, 그러니까 한 삼십여년 전에는 물맛 좋기로 이름 난 약수터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즈음 그곳을 지날 때면 그 옆의 팻말을 봐야 한다. 마실 물로 적합, 부적합을 표지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 부적합이다. 물을 맛보지 못했다.

약수터 인근이 옛 중흥사 지다. 아주 큰 절터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절터였는데, 이즈음에 절을 다시 살렸다. 이 절터는 완전한 남향이라, 겨울 산행 하산길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서 쉬어가기 좋았다. 거기서 바라다보는 겨울 북한산이 참 고즈녁하고 영롱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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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흥사까지 왔다. 어쩔 것인가. 그러나 금방 판단이 선다.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기에는 30여년 산꾼으로서 나름 체면이 안 선다. 이곳에서 내려가면 정말 어중간해지는 산행 아닌가. 북한산에 대한 모독이다. 대남문까지 올라가자. 결국은 이런 저런 북한산에 대한 여러 회상이 나를 계속 이끌었다. 이럴 때도 있는 게 산행의 재미다. 이럴 때도 있어야 한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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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Lorrie

    2016년 7월 19일 at 11:45 오후

    I’d venrute that this article has saved me more time than any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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