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夫人

모임이 잦은 연말이다. 12월 달력의 여러 군데가 모임 약속으로 채워져 있다.
다 가다가는 이 해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골라서가자. 그러나 고르는 것,그 것도 문제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친소(親疎)관계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 말아닌가.
한 해 내 못 본 것을 송년의 시점에서 한번 보자는 것인데 냉정하게 그런 기준으로 들이댈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그 것부터 챙겨본다. 다음은?
중복되는 면면들이 참석하는 모임은 무조건 한 군데만 가기로 하자. 그런 모임이 몇 있다.
따로 열리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임이그렇다. 또 이런 저런 고향 사람들과의 몇몇 모임도
면면들이 겹치는 게 있다. 그렇게 ’정리’를 해 나가고 있다.
또 하나 부담스런 게 있다. 모임관련 메시지들을 열어본다. 눈에 띄는 게 있다.
’동부인요(同夫人要)’라는 문구. 말하자면 부인과 같이 오라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같이 오라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강제규정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퍼뜩 그 게 참석할 수 없는 핑계거리가 될 성 싶다. 동부인이 안 되면 참석 안 해도 되는 게 아닌가. 나는 가고프(팠)다. 그러나 마누라가 사정이 있는 바람에 운운으로.
이렇게 작심을 하면서도 가슴은 좀 쓰리다. 마누라하고 각종 모임 등에 참석해 본 게 언제였던가. 돌이켜보면 까마득하다.


언제부터인가 마누라는 나랑 가는 모임 등에 안 가겠다고 했다.
예전에 등산을 친구와 친구부인들이랑 같이 자주 다녔었다.
그러나 마누라는 소백산에서 사고를 당한 이후 발을 끊었다. 그 것은 확실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친구들과 등산이 아닌 각종 모임, 그 것도 언제부터인가이런 저런 핑계와 명분을 들이대면서 실실 피했다. 내심 가고 싶어하지 않은 이유를 나는 대충 안다. 마누라는 자격지심이 좀 강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모임에 정서적으로 맞지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마누라는 서울 사람이고, 나는 경상도 마산 사람이다. 생활적으로나 정서상에서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동부인만 해도 그렇다. 마누라 여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에 어쩌다 한번 씩 같이 간다.
그 모임에서는 부부가 함께 앉고 함께 논다. 그러나 우리 마산 사람들 모임은 그렇지 않다.
남편들 따로, 마누라들 따로다. 친구 부인들 중에도 물론 마산 사람 아닌 분이 많다.
그 분들 가운데 몇몇은 잘 참석한다. 따로 노는 모임에 어느 정도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누라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는 모임에 왜 가냐는 것이다.
나도 마누라 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세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다반사가 됐다. 동부인하는 모임이 있어도 아예 얘기부터 꺼내지 않는다.


며칠 전에 고등학교 동기 송년회가 있었다. 나는 물론 혼자 갔다. 그 모임도 그랬다.
남편들 따로, 마누라들 따로. 마누라들끼리 따로 앉는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항상 그래왔듯 그러나 누구하나 어색해 하지 않는 ‘우리들’만의 그런 송년회였다.
송년회 말미에 기념촬영이 있었다. 다들 우르르 단상으로 몰려갔는데, 아주머니들은 요지부동이다.
냥 바라만 보고 있다. 동기들 누구도 와서 같이 찍자는 분위기를 띄우지 않는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모임이 파장되고 있는데, 그제서야 아주머니들은 좀 섭섭했던지,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는데, 전 회장 부인인 임옥 씨가 사진을 찍는 모습이 동기회 회장 눈에 띄였던 모양이다. 회장 친구가 다가가 임옥 씨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인데도 누구 하나 어색해 하지 않는 게 우리 친구들의 동부인 모임 모습이다.
연말에 반드시 동부인해 나오라고 보채는 모임이 하나 있다. 꼭 참석해야할 자리다.
조건이 있다. 반드시 마누라와 같이 와야 한다는 것. 이런 저런 핑계를 댔지만 통하지 않는다.
선배들도 많은 모임이다. 마누라에게 얘기를 했더니 당연히 안 가겠다는 것이다.
몇 번을 사정하다시피 했더니, 어느 정도 좀 누그러졌다. 단 조건을 단다. 따로들 놀지 말라는 것. 선배에게 그런 당부를 했더니, 일부러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공허한 답변이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 뻔하다.
마누라는 똑 속을 것이다. 알고도 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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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12월 8일 at 10:53 오후

    우리는 동창회에서도 남자 따로, 여자 따로
    놉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모여서
    같은 밥을 먹고는 따로 따로 놀거든요.
    그래도 서로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이걸 경상도 아닌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지요.

    • koyang4283

      2016년 12월 9일 at 7:12 오전

      경상도 사람들에겐 굳어진 하나의 문화 같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고칠 것은 고쳐야지요. 타지 사람들이 제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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