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일’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은 집 떠나 어디를 다녀보면 안다. 마산 2박 3일에 폭삭 가라 앉았다. 하루를 더 버텨 지리산 산청을 다녀올 엄두를 아예 접고 토요일 올라왔다. 버스 4시간 여도 지겹다. 마산 터미널에서 뜻밖에 친구를 만났다. 얘기를 나누며 가노라면 지겹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폭삭한 표정이다. 서로 편한 게 좋겠다는 동병상련이 동해 따로 앉아 왔다. 서울 터미널에서 이렇게 헤어질 수 없다며 순대국밥 한 그릇씩 놓고 소주 한병을 갈라 마셨다.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는데, 몸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몸이 피곤하니 잠도 깊이 들지를 않는다. 뒤척대다 든 선잠이 깨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는데, 비몽사몽 간이다. 여섯 시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동넷길을 한 바퀴 돌고 인근의 공원까지를 걸었다. 목도 삐걱거리고 허리도 시큰거린다. 날은 상쾌한 봄날 아침인데, 머리는 천근만근이다. 걷기도 힘이 든다. 그래도 누워있는 것 보다 걷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왔는데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역사물 팟캐스트가 그나마 생각을 좀 집중케 했다. 결국은 2시간 여짜리 그 팟캐스트 방송에 의지해 걸은 것 같다. 집에 와서 보니 그래도 한 10여 킬로는 걸었다.

아침 걷기는 하루의 시동을 어떻게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한 요소가 된다. 걷고나서 몸 컨디션이 좀 괜찮다 싶으면 하루도 그렇게 따라간다.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다리도 아프고 목과 허리도 그렇다. 쉬자. 쉬는 게 좋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지만 쉬는 것도 만만하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게 쉬는 건지를 모르겠다. 누워있을 수도 없고, 앉아있을 수도 없다. 텔리비전을 켜놓고 있지만, 무엇을 보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찌할 줄 모른 채 멍청히 있을 뿐이지, 쉬어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편으로는, 참 웃기게도 이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자책감 같은 게 든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결국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일요일이라는 게 묘하게도 안도감을 준다. 남들이 놀고 쉴 때 나는 일을 하러간다. 그래서 드는 안도감? 국회도서관에 앉았다. 참 편한 세상이다. 국회도서관에 앉아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를 본다. 국회도서관에는 그 자료가 없다. 옛 책자의 그 자료를 모아 놓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을 엊저녁 비몽사몽 간에 해 놓은 것이다. 자료 원문보기로 들어가 프린팅을 한다. 그 양이 장난이 아니다. 프린팅을 위한 카드 충전을 1만 5천원 씩이나 했다. 옛날 책자니 활자가 깨알처럼 작다. 그 걸 일일이 들여다보며 선별적으로 하는 프린팅이라 쉽지가 않다. 겨우 한 300 여 페이지 분량의 책자 프린팅을 마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책자 페이지들이 전부 사진화면으로 된 것이라, 프린팅이 안 되는 페이지들이 수두록 한 것이다. 결국 그 걸 일일이 또 찾아내 복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해서 보낸 시간이 세 시간이다. 딴에는 간단한 일이라 여겼는데,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 일을 끝내놓고는 지난 번에 읽다 만 책을 보려했는데, 복사하는 일에 녹초가 돼 엄두가 안 났다. 짐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전철을 두어 번 갈아타고 DMC 역에서 경의선을 타야 집으로 간다. DMC 역은 이미 노을 무렵이다. 뻐근한 다리에 몸은 무겁다. 그래도 머리에 말끔한 한 구석이 느껴진다. 단지 자료 하나를 챙겼다는 게 이토록 듬직한 것인가. 몸과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도 어떻게든 용케 한 구석에서 살아가게 지탱시켜주는 그 무엇이 있다. 그 때 그 때마다 좀 다르지만, 오늘은 이런 생각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할 수가 있다는 것. 오늘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나마 챙긴 자료 때문에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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