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경호江 마을의 ‘할머니 어탕국수’

좀 이른 아침에 원지에 다 달았다. 전날 운리-덕산 둘레길을 걸은 후 마신 술 때문에 우리들은 속이 더부룩했고, 어디 해장국 파는 식당이 없는가고 주변을 돌다가 원지에서 내린 것이다. 그간 많이 온 원지지만, 이렇게 어떤 목적을 갖고 내린 것은 처음이다. 지리산 마을인 원지는 중산리 코스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대부분 지리산 때문에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에겐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른 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쯤으로 아는 곳이 바로 원지다.

마침 차를 댄 곳 앞에 허름한 식당이 있었다. 간판은 ‘어탕국수’를 파는 집이다. 바닷가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은 민물고기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니 민물고기를 고아 국수를 말은 어탕국수가 눈에 찰 리가 없다. 그런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변을 둘러봐도 문을 연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그곳 어탕국수가 유일하게 속을 풀 수 있는 먹거리였던 것이다.

가게 간판도 그렇고 메뉴판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도 어탕국수라,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어탕국수다. 주인 할머니는 좀 무뚝뚝하다. 말을 걸어도 별 대꾸가 없다. 그저 어탕국수 몇 개라는 주문 숫자만 듣고는 그냥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열무김치와 깍두기를 상에 내 놓는다. 해장이나 하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이다. 할아버지가 약주로 속을 썩인 모양인가, 할머니 인상이 별로 안 좋아진다. 냉장고를 열더니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주는데, 먹다가 만 것이다. 이거라도 마시려면 마시라는 식이다.

술은 모자라면 입에 착착 감기기 마련인가. 한잔 씩 따라 열무김치를 안주로 마시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술병은 이내 비었다. 그 식당 곁이 원지 마트다. 재빠르게 가 막걸리 두병을 샀다. 병당 1,300원, 합이 2,600원이다. 한 병은 할머니로부터 얻어 마신 막걸리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한 병을 드렸더니, 아침부터 별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하는 표정인데,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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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탕국수가 나왔다. 그쯤에서 할머니 표정은 많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당신 혼자 4인분 것을 들고 나오시는 게 힘이 들 것 같아 우리들이 주방에서 직접 들고 나와 차린 게 고마웠던 것 같다. 채워 넣어 준 막걸리도 그렇고 “재피가루, 넣었는데 벨도로 주까? 무슨 말인가 하면 어탕국수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종기에 담아 별도로 줄까고 묻는 것이다. 할머니 말문이 드디어 트인 것이다. 우리 식탁 맞은편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으신다. 막걸리 얘기도 계속 덧붙이는 게, 우리들이 마시는 모습에서 아무래도 할아버지 약주가 떠올려지는 모양이다.

어탕국수 맛은 부드러웠다. 국수 만 것 말고 예전에 먹은 것으로는 ‘어죽’이 있다. 충청도 어디서 먹은 그 맛은 얼큰했다. 어탕은 주 양념이 두 가지인데, 고추장과 된장이다. 고추장으로 하면 얼큰한 맛이 나고 된장으로 하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다. 원지 경호강변의 할머니가 하는 이 집 어탕국수는 된장으로 한 것이다. 원래 어탕에는 각종 다양한 채소가 들어간다. 호박과 부추, 풋고추, 마늘, 대파는 기본이다. 미나리를 넣기도 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이 집 어탕국수에 들어가는 채소는 단순해 보인다. 대충 보기에 호박과 부추, 그리고 청양고추만 넣은 것 같다. 물론 다진 마늘과 파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에 갖고 있던 어탕 맛보다는 그 국물이 담백하고 부드럽다. 얼큰함도 없는 게 아니다. 청양고추와 재피가루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얼큰한 맛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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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 집의 어탕국수에 들어가는 민물고기는 경호강에서 잡히는 것들이다. 쏘가리, 메기, 붕어, 피라미, 모래무지 등인데, 특히 많이 들어가는 것은 참피라미라고 한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경호강은 급하게 돌며 흐르는 깊은 여울이 많아, 여기서 잡히는 민물고기는 특히 육질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가 보다. “맛 있제?” 슬쩍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그리고는 혼자 답한다. “하모. 맛 있을끼다. 내가 올매나 단디 꼼꼼하게 손질을 하는데…” 어탕에서 중요한 것은 민물고기 손질이다. 고기 손질을 잘 하지 않으면, 그 맛을 망치기 일쑤다. 잡내와 비린내 등 역겨운 맛이 난다. 그러니까, 어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싱싱한 민물고기를 쓰는 것이고 그 다음이 고기 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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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출신인 할머니는 경호강변 이 집에서 30여 년 간 어탕을 끓여 팔았다고 한다. 그 꼼꼼한 손질과 정성스런 손맛 때문에 원지에서는 알아주는 어탕 집으로 손꼽힌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인근의 지리산을 오가는 산꾼들이 원지 터미널에 내리면 가장 많이 찾는 집도 바로 이 집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입소문을 탄 유명 맛 집임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전혀 그런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허름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식당이다. 진주사람 특유의, 할머니의 손님 대하시는 독특한 언행도, 맛과 더불어 이 집의 소박한 정을 느끼게 또 다른 맛이 아닌가 싶다.

막걸리가 또 떨어졌다. 할머니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넌지시 일어나 냉장고로 간다. 그리고는 좀 전에 채워다 준 그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온다.

“마시소. 그랄라고 채워둔 것 아이가. 내사 다 알고 있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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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5월 12일 at 3:56 오후

    내사 다 알고 있었제 에서 소박한 정이
    느껴 집니다.
    저는 어죽은 먹어 봤는데 국수는 못 먹어
    봤어요. 행여라도 그 부근 지나칠 있으면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 koyang4283

      2017년 5월 13일 at 5:27 오후

      같은 경상도라도 진주와 마산 사투리 억양이 다릅니다. 진주가 좀 세지요. 특히 ‘지조’ 높기로 유명한 진주 여자 분들의 억양은 끊고 맺음이 명료하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 할머니도 진주 분이라, 구수하면서도 끊고 맺음이 분명한 진주 분의 말이라 정감이 갔습니다

  2. journeyman

    2017년 5월 12일 at 5:55 오후

    먹어보지 못한 메뉴입니다만 보기만해도 군침이 넘어가네요.

    • koyang4283

      2017년 5월 13일 at 5:28 오후

      어죽을 아직 못 드셔 보셨다니, 가히 ‘문화재’ 감입니다. 별식이고 별미입니다. 서울에도 은평구 쪽에 어죽을 파는 데가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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