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의 김영철이 끼어 든 내 이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이름 석자로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굳이 있다면, 좀 흔한 이름이기에 어릴 적에 놀림감이 된 기억은 있다. 그 때 국민학교 교과서에 영희니 철수니 하는 이름에 내 이름도 자주 나오면서, 주변 아이들이 공부시간에 그 이름으로 나를 지목하며 키득거리는 부담을 안아 본 정도다. 그래도 그나마 내 이름이 이름 값을 못하는 정도의 것이 아닌 것에 나름 어느 정도의 자부심은 있었다. 말하자면,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들 중에 그래도 고약하거나 나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 갖는 자위감은 어느 정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즈음 내 이름으로 좀 혼란스런 일을 겪고 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어서 아직까지는 좀 지켜보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그래서 그럴 것이라는 진단을 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내 이름과 관계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답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살이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한가하게 맞이 할 일은 아니니, 나름 대처는 하고 있다. 일은 은행의 국제 거래와 관계된 것이다. 이름이 ‘김영철’인데, 그 이름으로 송금 등 거래에 애로를 겪으며, 은행 간에도 적잖은 마찰이 야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네덜란드의 온라인 경매회사와 거래를 하고 있다. 물건을 올려 경매를 통해 팔고 있는데, 이를 통해 얻어지는 돈의 송금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회사는 전신송금(wire transfer)로 돈을 보내준다. 그런데, 몇 차례 돈을 보냈는데도, 국내 내 은행계좌로 입금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 이유를 몇 차례 물었다. 네덜란드의 그 회사는 네덜란드의 최대 금융그룹이 ‘라보뱅크(RABOBANK)’를 통해 보내주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내 신상문제로 돈 송금이 홀딩(parking)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얼마 네덜란드 그 회사에서 내 신상정보를 문의해 왔다. 라보뱅크에서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게 분명치 않았다. 요구하는 곳이 라보뱅크인지가 분명치 않았다. 네덜란드 그 회사에서는 국내의 내 은행에서 요구해 왔다고 했다. 국내 내 은행에서는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은 내 신상을 요구하는 라보뱅크의 메시지 사본까지 파일로 받아봤다. 네덜란드와 독일어로 된 그 메시지를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읽어 보았으나, 글 내용도 그렇고 번역도 혼란스러워 요구처가 누구인지에 대한 것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첫 송금이 내 계좌로 들어왔길래 더 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 그 후도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있다. 내 놓은 물건들이 계속 팔리면서, 네덜란드의 그 회사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송금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10여 일이 지났는데도 돈은 입금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그저께, 네덜란드의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은행계좌 번호의 하이픈(-)을 지워서 다시 등록해달라고 했다. 하이픈 때문에 자신들의 송금 시스템에 인식이 되질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요구대로 해 줬다.

그런데, 어제 국내 내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로바뱅크에서 내 신상에 관한 정보를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신상을 ‘EU 리스트’에 리스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동의를 원한다고 했다. 내 신상에 관한 정보는 그 전에 이미 파악돼 라보뱅크에 전달된 것이기에, 은행에 좀 따졌다. 이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좀 복잡하다. 은행에서는 자기들과는 상관없다면서, 라보뱅크로 그 책임을 돌린다. 그러면서 ‘블랙리스트’ 운운하는 말이 들렸다. 블랙리스트라면 내가 기피인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좀 더 따져 물었더니, 또 ‘EU 리스트’ 운운한다. 내 신상정보를 다시 라보뱅크에 보내는데 동의를 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더 이상 언쟁은 하질 않았다. 국내 내 은행은 계속 내 송금 지연에 관한 문제는 라보뱅크에 있다면서, 그 은행에게 따지든가, 아니면 네덜란드의 그 회사에 따지라는 입장이다.

어제 저녁, 친구 및 후배와 만나 저녁을 먹다가 그 얘기를 꺼냈다. 한참을 듣고있던 후배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형, 아마도 김영철이라는 이름 때문일 겁니다.” 어라 싶었다. 그제서야 송금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가 언뜻 떠 올랐다. 김영철은 나 말고도 북한에도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장본인인 김영철이다. 인민군 정찰총국장인 김영철은, 국제사회의 대북한 제재로 인해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이다. EU연합이 대북한제재에 엄격한 것은 알고있다. ‘EU 리스트’에 김영철은 김정은과 함께 등재돼 있다. 네덜란드의 로바뱅크에서는 영문으로 된, 나 김영철을 북한의 그 김영철로 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상정보를 계속 요구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은행계좌의 영문이름으로 처음에는 ‘youngcholkim’으로 적어 네덜란드 그 회사의 내 어카운트에 올렸다. 그랬더니 이 영문이름에 대한 풀 네임을 처음에 요구하면서 국적, 생년월일, 출생지, 여권번호도 요구했다. 그 후 이 영문이름이 잘못됐는가 싶어 국내은행에 등재된 영문이름 ‘Kim Young Chul’로 수정했다. 그랬더니 내 영문이름이 어쨌든 ‘김영철’로 읽혀지면서도 왔다갔다 하니까 다시 내 신상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네덜란드 사람들 쪽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논쟁적으로 대했던 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이해를 했다면, 그냥 시키는대로 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더구나 그리 큰 돈도 아닌데, 날짜를 따지는 호들갑으로 그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던 것 같다. 그 큰 회사 사람들이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도 내가 너무 민감했다. 더구나 내 이름 석자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니 더 미안스럽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내 이름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평생을 달고 온, 얼골같은 이름이다. 그 이름이 나이들어 이름 값을 하고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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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데레사

    2017년 6월 10일 at 3:05 오후

    언제나 배우 최민수가 그러더군요. 같은
    이름의 수배자 때문에 처가인 카나다에
    갈때 마다 입국심사가 오래걸린다고요.
    같은 이름으로 나쁜 사람이 있는건 좀
    골치가 아프겠어요.
    이제 이유를 아셨으니 잘 대처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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