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향의 ‘선창가 생선아지매’
고향의 옛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도 어렵고 느껴보기도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만사 모든 게 변한 탓이기도 하지만, 고향을 떠난지 오래이면서도 고향은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란, 안이하고 소홀한 생각이 고향에 대한 기억을 무디고 흐리게한 데 기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 수구초심이랄까, 고향을 다시 그리게 되지만 막상 옛 고향의 모습과 기억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옛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 어떤 조그만 대상이라도 접하게 되면 반갑다. 그 대상은 물성의 것이든, 인성의 것이든 어떤 주저감도 없이 반갑고 추억에 잠기게 한다.
며칠 전 인터넷 SNS 상에 어떤 사진 몇 장이 올랐다. 선창가 저자거리에서 생선을 팔고있는 아낙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그 사진들은 바로  나의 옛 고향이었다. 지금은 흔적이 묘연한 고향의 옛 선창가 길가에, 한 두어 평 좌판을 펴 놓고 생선을 팔던 그 아낙들의 모습이다. 그 사진은 나를 어릴 적 고향의 그 바닷가 선창가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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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풍성한 고향의 바다였다. 바다에 연한 선창가는 활기가 흘러 넘쳤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미더덕이 거짓말 좀 보태 산더미처럼 선창바닥에 쌓여 있어도 먹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 싱싱하고 씨알이 굵은 미더덕은 우리들이 편 갈라 노는 물총싸움의 물총 대용이었다. 고향의 아구찜이 지금은 명물처럼 식도락가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 때는 어쩌다 어선의 그물에 걸린 못 생긴 그것들을 선창가 한편에 모다 놓아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예 생선 취급도 해 주지 않았다.
고향 바다와 선창가의 풍성함을 더해주는 한 풍경은 따로 또 있었다. 좌판을 벌여놓고 생선을 파는 아줌마들이다. 길 양편에 다라이에 담긴 제 철 생선과 도마를 놓고 장사를 하는 선창가 아줌마들이다. 우리들은 이 아줌마들을 ‘생선 아지매’라고 불렀다. 이른 새벽, 어판장에서 때 온 생선과 해물이 그 아지매들의 밑천이었다. 그것들을 팔아야 쌀도 팔고 아이들 공책도 사줘야하는 생활의 절박함이 있었다. 그러나 기색이 궁색하지는 않았다. 
아지매들이 주저앉아 있는 선창가 양편 길엔 이른 아침부터 활기, 아니 열기가 넘쳤다. “오이소 오이소, 보고 가이소 보고 가이소.” 손님을 불러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저마다 내지르는 큰 목소리의 부르짖음이었지만, 그것은 잘 꾸려진 합창처럼 들렸다. 표정들도 각양각색이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삶의 양태는 저마다 비슷한 것들이었기에, 그것은 말하자면 공통의 심경으로 저며진 표정이었고 부르짖음이었다. 선창가 생선 아지매들은 바지런하고 씩씩하고 용감했다. 아지매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힘에 부치는 큰 생선을 다룰 때 뱉어내는 거친 호흡이 그 때의 어린 나에게는 신기했다. 그 호흡에는 무슨 주절거림도 있었고 리듬도 있었다.
지금에사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할 때 부르는 일종의 노동요가 아니었나 싶다. 남정네들도 하기 쉽지 않은 힘들고 거친 일이다. 그 일을 생선 아지매들은 거친 호흡일지언정 그것을 리듬으로 승화시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가가고 싶게하는 지혜로 감당하고 있었다. 생선 아지매들이 이렇듯 활기로 판을 잡아가는 선창가 시장바닥에 남정네들이 낄 틈이 없었다. 남정네들은 대부분 그저 폼이나 으슥거리며 조용히 점방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이게 나의 어릴 적, 집에서 지척간의 거리에 있던 옛 고향 선창가 시장의 풍경이다.
이런 선창가 생선 아지매를 어머니로 둔 고향 친구들이 몇 있다. 더러는 돌아가신 어머니도 있고, 아직 살아계신 분들도 있지만, 그 어머니들의 바지런함 때문에 그 친구들은 대부분 잘들 살고있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 그 어머니들을 뵈올 때 옛 고향 얘기를 하면서 어릴 적 그 선창가 얘기를 꺼내면 표정이 왔다갔다 한다. 그 어머니들, 아니 그 때 생선 아지매들의 기억 속에 그 때 그 시절은 추억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려웠던 시절의 아리함도 함께 교차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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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생선 아지매도 분명 고향의 선창가 아지매일 것이다. 사진을 게재한 장본인이 고향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생선 아지매들의 활기스런 모습만 잔뜩 얘기한 것에 비해 표정들이 모두 어둡다. 일부러 그런 사진만 골라 올린 것 같다. 저 어둔 표정 속에 그 시절이 읽혀진다. 생선 몇 모타리 팔아봐야 그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돈으로 쌀도 팔아야 한다. 아이들 공책도 사야하고, 밀린 월세도 내야한다. 그 시름의 표정들이 아닐까 싶다. 다들 어려웠던 그 시절, 옛 고향의 아리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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