良心者人生之基礎也

사람의 기억이 또렷하고 말고의 문제는 생리학적인 차원에서 논할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기억에 그려질 만큼의 강렬한 인상이나 메시지는 그것을 초월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예컨대 어릴 때 배운 한 구절의 문장이 평생을 간다든가, 아니면 사랑과 정을 담뿍 준 사람이나, 그 반대적인 인상의 사람은 나이를 떠나 일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배운 한 구절의 문장이 있다. 한문 선생님에게서 처음 배운 구절인데, ‘良心者人生之基礎也(양심자인생지기초야)‘라는 문장이다. 인생에 있어 양심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문을 가르친 분은 이 병혁 선생님이다. 함안의 유학자 집에서 갈고 닦은 한문이 그 선생님으로서는 일생의 업이 됐고 그 게 인연이 되어 우리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이 청량한 목 소리로 “양심자 인생지기초야라”고 하면 우리들은 따라 읊었다. 그 끝자가 ‘잇기 也’인데, 선생님은 그 글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말 하자면, 인생의 기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 선생님 별명이 ‘잇기 야’였다.

이 문장을 배운 게 반세기 전이지만, 나로서는 아직도 또렷이 그 때 배우던 그 시절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다고 내가 배운 그 말대로 양심껏 살아왔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 반대로 뭔가 마음에 꺼림칙한 그림자가 드리울 경우 그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나 부끄러워 질 때가 많으니결코 양심껏 살아와서 선생님에게 배운 그 말씀이 나의 좌우명이 됐다는 게 아니다는 말이다.

어제 그 말을 떠올리게 될 일이 하나 생겼다. 유럽 쪽의 한 경매회사와 거래를 하는데, 지불 수단(payment method) 문제로 속을 좀 썪어왔다. 은행 송금(bank wire-transfer)이 그 회사의 판매자에 대한 지불 수단인데, EU의 북한에 대한 제재로 그 영향이 나에게까지 미치게 되면서 계산이 좀 엉망으로 꼬였다. 예컨대 그 쪽에서 돈을 네덜란드 은행을 통해서 보냈다는 통보는 받았지만, 나에게는 입금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내 이름 ‘김영철’이 EU의 제재대상인 북한의 김영철 때문이라는 추측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어 차례 나의 페이먼트가 묶여있는 처지에 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도 내가 내 놓은 물건은 몇 차례 더 팔려 나갔다. 나로서는 피해를 예상하면서도 구매자에게 물건을 )부쳐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나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 그 회사의 방침은 이렇다. 낙찰이 되면 구매자가 그 회사로 입금을 하고 나더러 구매자에게 물건을 부쳐줄 것을 통보한다. 내가 물건을 부치고 구매자가 그것을 받아보고 별 이의가 없으면 나에게 돈을 입금(transfer)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물건을 부쳐줄 수 없었다. 그래서 부쳤다는 통보만 하고는 부치지 않았다. 나로서는 미입금액이 들어올 때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구매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도 손해는 없다. 물건을 안 받았으면, 디스푸트(dispute)를 제기해 돈을 돌려받으면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발송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돈이 어제 들어온 것이다. 그 전에 내 입금구좌의 이름을 ‘김영철(Kim Young-chul)’에서 ‘youngcholkim’으로 바꿔 놓았더니 그 구좌로 돈이 들어온 것이다. 한 300 유로 쯤 된다. 미입금액보다는 적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서 발송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돈이 들어왔을까. 뭔가 무슨 착오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작은 회사도 아니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있는 회사인데, 그런 착오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든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오늘 나의 국내계좌로 입금이 된 상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놓고 고민 중이다. 회사에 문의를 해야하는 게 먼저 취해야 할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과정도 복잡하다. 생각이 갈팡질팡이다. 한편으로는 구매자가 손해 볼 일도 없고, 또 나의 미입금에 대한 돈으로 치부하면 될 것이라는 얄팍한 마음이 든다. 그냥 둬 버릴까하는 그런 얄팍함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갈팡질팡함 속에 자꾸 머리를 파고드는 한 구절의 말씀이 떠 오르는 것이다. 바로 ‘양심자 인생지기초야’라는 말이다. 나의 이런 사안이 양심과 관계되는 일은 맞다. 이해 관계를 따지자면 변명의 여지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내가 받지 않아야 할 돈이 들어온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을 뿐더러 내가 그것을 챙긴다면 나의 양심을 거역하는 일이다. 갈팡질팔할 이유도 없다. 바르게 대처하고 바르게 처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명료해졌다. 양심껏 바르게 살아가라는 게 옛날 은사님이 가르친 그 구절에 담겨있는 뼈대다.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 ‘良心者人生之基礎也’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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