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 50년

중학교를 졸업한지 반세기가 됐다. 50년이 흘렀다는 얘기다. 올망쫄망 까까머리 소년으로 중학문을 들어섰던 우리들은 이제 ‘망(望)70’의 영감들로 만났다. 유성 라온 호텔에서다. 11월 4일 마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마산중학교 제 16회 동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모이기는 모였는데,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480명이 졸업했는데, 막상 참석한 친구들은 100명이 채 안 된다. 많은 동문들이 세상을 뜬 탓이기도 하겠고, 또 더러는 몸이 불편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기념식에 먼저 간 동문들을 위한 묵념 순서도 있었다. 짧은 순간이나마 그 친우들을 떠 올리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십시일반에다 여러 여유있는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행사 준비위원장을 맡은 고 호곤 회장의 물심양면에 걸친 노고가 특히 컸다. 고 회장의 인삿말이 겸손하고 좋았다. 서두에 어떤 옛글을 인용하고 있었는데, 오랜 친구들의 연연세세에 걸친 우정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그 글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아 고 회장에게 물었더니, 허 균의 홍 길동전 말미에 나오는 대목이라고 했다. 그런 글이 홍 길동전에 나오는 것을 몰랐다. 과문한 탓이다. 여러 곳에서 검색을 해보아도 그 부분이 나오질 않는다. 천상 도서관에 가서 원전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다.
졸업 당시의 각 반 별 급우들로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7반이었는데, 우리 테이블엔 8-9명이 왔다갔다 했다. 한 친구는 오기로 했다가 무슨 사정이 생겨 불참했는데, 그 자리에 놓여진 명찰이 쓸쓸해 보였다. 우리 반의 담임은 지리를 가르치는 이 무상 선생님이셨는데, 참 까탈스런 분으로 기억된다. 매월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우리 반엔 긴장감이 감돈다. 성적이 한 자리 내려갔으면 속칭 ‘빳다’로 한 대, 열 자리 내려갔으면 열대를 맞아야 한다. 다른 반 아이들이 교실 창문에 살짝 기대 우리 교실을 들여다 본다.
우리들 ‘빳다’ 맞는 모습이 그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시간이다. ‘빳다’ 맞는 것이 폭력이긴 하나 그것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일종의 가르침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 반에서 경기고등학교 수석을 따 냈다. 지방 중학교에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경기고에서도 수석을 지방 중학에서 차지한 게 창피해서였던지 경기중 출신 한 명을 끼어넣어 공동 수석으로 발표했다는 후문이 있기도 했다. 그 공부 잘 한 친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하필 그 날 모친이 별세했기 때문이다.
모임은 기념식이 끝나자 마자 술판으로 변했다. 술잔들이 오가면서 옛 얘기들이 술술 나온다. 기억이 가물해질 나이들 아닌가. 니가 맞니, 내가 맞니로 옛 일들을 다툰다. 심판자는 역시 술이다. 한 잔의 술로 모든 것을 푼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다시 호텔방들에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더러는 술에 취해 일찍 잠 자리에 든 친구들도 있는데, 나 역시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다.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곁에 무슨 곰 같은 작자가 하나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만규라는 친구로 몸 무게가 0.1톤 이상 나간다. 깨어나서 나에게 시비아닌 시비(?)를 건다. 왜 너 혼자 먼저 취해갖고 내 뺐냐는 것이다. 나의 의지로 잠자리를 찾아든 게 아니다. 취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방으로 먼저 온 것인데, 말하자면 살기위한 일종의 자구책 같은 것이다. 그 친구 하는 말이, 다른 친구들이 많이 찾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전화를 보니 문자가 거짓말 좀 보태 빽빽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는 인근의 동학사를 함께 걸었다. 깊어가는 가을 날,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낙엽길을 걸으니 간밤의 술로 인한 끄트머리 취기가 슬슬 벗겨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동학사 입구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겸한 술자리가 다시 나를 취하게 했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의 작별시간이기도 하다. 음식 맛도 좋았고 술 맛도 좋았다. 동학사 공용주차장에서 아쉬운 이별을 했다. 우리들도 거기서 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차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 끝에 한 친구가 마무리임즉한 말을 한다. “우리 60주년에도 다시 서로들 볼 수 있을까. 그 때 보려면 그 때까지 살아있어야 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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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김동일

    2018년 1월 28일 at 2:50 오전

    선배님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특별히 시험 마지막 세대라서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6년 후에과연 내가 살아있을지……

    흘러가는 세월 속에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 koyang4283

      2018년 1월 31일 at 10:11 오후

      마산중 동문을 여기에서 뵙게되니 반갑습니다. 22회이신 모양이죠. 물론 6년 후에도 건강하게 살아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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