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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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미투 운동이 연일 기사에 오르내리고 이에 관련된 예술계의 유명 인사들, 그들에게 자신들이 당했던 수면으로 드러내 놓고 숨조차 쉴 수없었던 피해자들의 관련 내용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치부를 소설처럼 그려낸 내용을 읽는 동안 참으로 답답한 심정, 그러면서 소녀의 감성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를 생각하니 저자의 용기가 새삼스럽게 존경스럽다.

프랑스 문단의 유명 인사인 G의 나이 50대의 유명 작가와 14세의 성에 대한 상상과 한창 발랄할 시기인 소녀의 만남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란 것도 모른 채 만남이 이루어진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잦은 불화는 이혼으로 이어지고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엄마와 살게 된 V는 편집자로 일하던 엄마와 함께 모임에서 그를 만난다.

엄마와는 다른 아빠란 존재의 부재는 어린 그녀에게 곧 G로 대체가 되고 그가 소녀에게 건넨 눈빛, 제스처, 그 이상의 모든 것들을 흡수할 수 있는 노련함이 결국 소녀로 하여금 그를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한다.

 내 삶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를 남겨놓고 자리를 뜬 아버지. 독서 탐닉. 일종의 성적 조숙. 그리고 특히, 주목을 받고 싶은 거대한 욕구. 이제 모든 조건이 모였다. -P. 38

아직 성인으로서의 사회적인 기준이 충족지 못한 연령대의 소녀가 겪은 이런 관계, 그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육체적, 정신적인 모든 것을 빨아들인 그의 논리가 참으로 민망스럽다 못해 분노를 자아낸다.

그의 소아성애자, 청소년 성애자 취향의 논리는 예술이란 이름으로 허울 좋게 가려지고 유명 문화인이란 명예는 소녀의 주장을, 오히려 G와 공모한 사람으로까지 오르내리는 그 과정들이 한 인간의 생을 이렇게도 무너뜨릴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특히 당시 프랑스 문단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금지를 금지한다’라는 68 혁명의 기치에 동승해  모든 것을 용인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들이 충격을 준다.

엄마라는 존재도 나이가 어린 딸이 그와 헤어질 것을 말했을 때 그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아느냐 식의 대화는 동. 서양의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왜 가해자는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오히려 당한 피해자만 음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갉아먹어 더 이상의 소모조차도 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저자가 고백한 부분에서 더욱 드러난다.

공황발작,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엄마의 집으로, 자신의 직장으로 편지를 보내오던 그에 대한 그녀가 느낀 불안감과 같은 문화계에서 일하며 승승장구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지,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인 상대를 만나기까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G는 알기나 할까?

청소년들의 자기 해방을 위한다는 언변 좋은 주장에 모든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분위기, 30년이 지나서야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한 인간을 파괴한 것에 지나지 않은 ‘폭력’이었음을 말한 저자의 글에서 책 제목인 ‘동의’가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 부모 노릇이 힘에 부치거나 부모 노릇을 포기한 부모를 가진 외롭고 위태로운 여자아이들에게 눈독을 들일 때 G는 이미 그 여자아이들이 결코 자신의 명성을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는 자는 동의한 것이다.- P 242

저자가 말한 ‘동의’에 대한 위험한 경고는 비단 저자가 겪은 실제 일과 함께 프랑스 문단의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비단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이 사회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살아가는 속에서 사회 전체가 묵인하고 방관할 때 한 인간의 삶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공감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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