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유영(游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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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이라 생각된다.
우리 집에서는 닭과 오리를 몇 마리 길렀다 (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몇 마리씩 길러 귀한 손님이 오시면 그것으로 요리하여 대접하는 것이 큰 대접이었다 )
오리는 알을 부화시키지 못하니까 닭이 알을 품을 때 달걀과 함께 오리알을 넣으면 닭이 잘 품어서 병아리와 오리 새끼를 부화 시킨다.
어미닭은 오리 새끼도 제 새끼인 줄 알고 병아리와 함께 정성껏 돌봤다.
오리가 어느 정도 크니까 마을의 연못으로 뛰어들어 헤엄치며 노는데,
어미 닭은 연못에는 못 들어가고 연못 둑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안절부절 한다.
혹시라도 오리가 물에 빠져 죽지나 않나 노파심으로 꼬꼬댁거리며, 불안해하는 그 옛날  암탉의 모성애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노을 속으로 날아간 가창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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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가창오리 군무를 담아왔는데,
5% 아쉬워 노을 속 가창오리를 담으려고 1월 12일에 다시 찾았지만,
노을도 잠시 가창오리는 제 마음대로 날아갔다. 이 한 장으로 마음을 달랬다.
애고 ~~~ 왕복 400여 Km 달렸는데 ……
( 1월 10일에 찍은 사진은 위블 1월 17일에 ‘환상적인 가창오리의 군무’로 게재했음. )

家族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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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섬에서의 네 식구의 만남 – 그 모습들이 행복 !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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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해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과 넓디 넒은 꿈이 펼쳐지는 바다를 보며 어린이는 부모의 사랑에 행복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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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끼리의 어울림!
보기만 해도 참 좋다.
그러나 ……
간간이 보도되는 아동 학대, 부모 학대 뉴스가 안타깝기만 하다.

여기가 38도 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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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안 여행 중 38선이라는 조형물을 보고 마음이 찐하여 멈추었다.
이곳이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잔교리에 위치한 양양 38선 휴게소이다.
탁 트인 동해의 넓은 바다와 해수욕장이 착잡한 내 마음과는 달리 반갑게 맞아준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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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이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이 일제의 굴레에서 해방된 직후부터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으로 인한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남한과 북한과의 정치적 경계선이 되었다. 이 경계선은 순전히 타의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책정된 것이며, 한국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민족적 비극과 고통을 안겨 준 한 많은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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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순히 군사작전상의 업무 분담을 위해 일시적으로 분계선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세계 적화(赤化)를 노리는 소련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남북 분단의 정치적 경계선으로 바뀜으로써, 우리 민족에게는 더없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수천 년 간 단일 생활권을 형성하였던 우리 민족은 일시에 두 개의 이질적인 생활영역으로 분할되어, 부모 형제 간의 생이별은 물론 그 밖에도 수많은 고통을 강요당하였다. 특히 우리 남한 측은 그때까지 북한의 공업기반에 의존하였던 전력(電力)·비료·석탄·관개수리(灌漑水利) 등의 공급 단절로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남·북한이 각기 민주와 공산이라는 대립적 이데올로기와 체제로 맞서게 됨에 따라, 한반도는 격화되는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이 유발되었다. 또 휴전선이 현재와 같은 위치에 책정된 것은 군사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그보다도 38선을 의식한 국제정치적 고려가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조형물에 새겨진 가슴 뭉클한 글을 읽으며, 6.25전쟁 중에 태어난 無頂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왔다.
( 설명은 조형물에 적힌 글과 두산백과를 참조 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