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쏠한 재미

아내는 내일 1박2일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교회 모임에서 마련한 여행이다.

며칠 전부터 여행 준비로 바쁘더니 대충 끝난 것 같다.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은근히 해방감을 누릴 생각에 속으로 미소를 짓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반찬이며 이런 것 저런 것 준비한다고 여념이 없다.

가만히 두면 몇 끼 정도는 혼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데 말이다. 국수를 삶아 먹어도 되고, 아니면 우리 동네 맛집으로 소문난 중국요릿집에 가서 짬뽕이나 짜장면을 사먹어도 된다. 연희동은 화상華商들이 하는 유명한 집들이 많으니까.

오늘 저녁, 케이블로 보는 중국 사극 ‘옹정황제’에 빠져 있는 내게 아내가 선심을 베풀었다. 동네 정육점에 ‘오늘 소 잡았다’는 방이 붙었는데 사주겠단다. 지난 주 갑자기 고향으로 갔던 날, 내가 사왔던 육사시미 맛을 보고싶은 모양이다. 그날 그걸 사와서 내가 맛소금을 소스로 한 잔하고 남은 걸 아내가 맛있게 구워먹었던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렇찮아도 한 잔 생각이 있었는데 ‘불감청고소원’이었다.  젊은 친구들 셋이 몇 달 전 개업한 정육점은 나름 인기가 좋았다. 가격도 싼 데다가 육질이 좋았다. 육사시미 한 근(600g)에 1만5천 원 안팎이다.

아내는 구워먹어라고 했지만 석류주와 육사시미 몇 점, 맛소금을 챙겨 내가 쓰는 방으로 왔다. 미셸 맥로린의 피아노연주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맛깔스런 시간을 가졌다. 일주일 만에 한 잔했다. 육질도 부드럽고, 날것을 즐기는 내 취향에도 제격이었다. 산낙지를 먹는 것과 달리 육사시미는 소금에 참기름을 붓지 않고 그냥 먹는 게 훨씬 낫다.

육사시미를 보니 옛 생각이 났다.

지난 80년대, 직장 생활할 때 전북 익산(당시는 ‘이리’)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조합 사람들이 ‘사시미’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좋아하는 생선회를 먹나보다 기대했는데 정육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상해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아니, 사시미 먹는다면서 웬 정육점? 그 양반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네는 쇠고기를 육사시미로 먹는다요.

그날 처음으로 육사시미를 먹었다.

요즘 즐겨먹는 연어회에 비해 가격도 싸고 양量도 실하다. 아마도 육사시미에 빠질 것만 같다.

이것 또한 쏠쏠한 재미일 터이니까.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4월 14일 at 11:26 오후

    저는 육사시미를 못 먹겠드라구요.
    그래서 구워 먹습니다.
    한근에 15,000원이면 가격이 아주 쌉니다.

    사모님 제주도로 떠나시고 나면 혼자서 음악 틀어놓고
    한잔 즐기실테죠? 그게 쏠쏠한 재미지 싶은데요. ㅎ

    • paul6886

      2016년 4월 15일 at 3:07 오후

      데레사님, 그렇찮아도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집밥 먹었습니다.
      아내가 몇 가지 반찬 만들어놓아서 잘 먹었지요.
      육사시미는 구워먹어도 맛있지만 생것도 괜찮습니다.
      점심 먹으면서 한 잔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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