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벌목 수송’, 이 내막 아시는 분 있나요?

4월은 식목의 달이고 산림의 달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대표적인 조림 성공국가로 꼽힌다.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잇달아 한국을 방문할 정도가 됐다. 한국의조림에 적극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임종국씨,천리포 수목원의 민병갈씨, 김이만 할아버지, 성장이 빠른 리기다소나무를 육종 개발한현신규 박사 등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분들을 한 명씩 조명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 나무 수탈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한반도 산하는완전히 황폐화, 초토화 됐었다. 그 일제시대 나무 수탈의 현장을 고발한다.일부에서는 이 사진이 일제시대 사진이 아니고 해방 직후 마구 벌목하던 장면이라는 주장도 있다. 독자가 직접 보고 판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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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 현황을 파악하는 장면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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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에서 잘려진 나무는 철 레일을 통해 동해바다까지 운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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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운반하기 위한 철 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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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이나 의견을 나누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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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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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 후 나무 수송하기 위해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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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수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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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온 수송도구를 소가 다시 산으로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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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온 나무는 트럭으로 바다까지 운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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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수송을 위한 철 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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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들이 나무 수송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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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나무수송 도구를 다시 산 정상으로 끌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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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온 나무를 트럭으로 수송하여 동해에 온 나무는 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수탈됐다고 한다.

사진제공=응봉산 덕풍계곡 주민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6 Comments

  1. 안영일

    04.01,2009 at 9:15 오후

    일제시대가 아니군요, 군용추럭 GMC 10발 바퀴의 추럭 ,그 윗사진은 해방후에 유행하던 신사바복 료마이 (양복 카라가 넓은것) 저희가 자라면서 (해방둥이 입니다) 일제시대의 이땅의 사는주민들 특히 농촌 산간의 사람들 피복상태는 더 비참했던것으로 생각하며 맨아래의 사진은 화물서 ?한 100톤 )으로 70년대까지 해안에 뭄직이는 중요 화물선이지요 일제시대가 아닌 해방이후 전국의 통신망이 지금과다른 아주 6.25후의 군인들의 *후생사업*이라하면서 이하면서 군 민합작의 부정의 강산을 좀먹던 사진이군요,   

  2. 김명근

    04.02,2009 at 2:17 오후

    규ㅔ도차량은 모르겠으나 GMC는 미군이들여와서 한국도 사용한차량으로 그것도 6.25이후의 얘기며정확한 사진 판별이요망됨   

  3. 이성규

    04.02,2009 at 5:03 오후

    댓글 다신 분들의 안목에 다시금 조선일보 독자님들의 수준이 바로 이런 쓰레기 블로그의 오류를 정확히 찾아 낸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트럭은 미군이 2차 대전당시 사용한 것 이고 이는 해방 후 한국에도 다수 불하되어 분뇨 수거 및 쓰레기 수거차로 사용되었습니다. 일본이 쓰던 트럭은 1939년식 미제 GMC 트럭의 copy로 이는 도요다와 니산에서 라이센스 및 개조 한 것입니다. 사진은 해방 후 or 6.25 전쟁 후의 모습입니다.   

  4. 사공곤

    04.03,2009 at 10:48 오후

    조림사업은 독재자 이 승만 시대에도, 박 정권이 계승했고 연료 혁명이 조림성공을 앞 당긴 것. 50년대에 학생들 강제동원, 보리 밭에 가서 깜부기 뽑아 식령증산에, 산에 가서 징그러운 송충이 잡아가며 조림사업에 나섰느니라.    

  5. 巨岩

    04.04,2009 at 4:30 오전

    현재의 산림은 모두 박정희의 공이다 급격한 공업화로 시골 나뭇군들이 도시의 공장으로 나가버리고 30년 지나니 모든산에 숲이 형성되었다 이승만 시대 산에 식목 아주 많이 했으나 뿌리 내리자 베어다 때는 악순환이었다 식목보다 나무꾼을 없애야 산림이 형성된다 숯 굽는 업자 요즈음 눈에 뛰는대 산림 망치는 요인들이다   

  6. 강성규

    06.26,2015 at 8:09 오후

    우연히 사이트에 들러 보니 분이 삮이질 않네요.
    제가 보니 울진이나 죽변항 근처로 수송되는 나무로서 응봉산이나 불영계곡 또는 봉화 가기전의 완만한 산악에서 자생하던 금강송을 벌목해서 항구로 옮기는 것 같습니다. 해방이후에 동해에서 항구를 통해 벌목한 나무를 수송하는 것 같은데 그당시 울진은 교통이 불편해서 아마 해상으로 옮기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울진 출생 1927년도) 에 따르면 울진항은 왜정 때도 굉장히 일본본토와 활발히 교역이 많이 되었는데 나무를 많이 반출했다면 본인도 잘 알텐데 일본인은 공출 수탈은 했어도 산은 그대로 였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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