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셰르파, 벌써 에베레스트 5번 등정… 히말라야 10번 이상 올라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가장 많이 오른 사람은 누구일까? 39세인 네팔 셰르파가 올해까지 14번으로 가장 많이 올랐다.

니마 겔젠 셰르파(Ngima Geljen Sherpa), 아마 앞으로 히말라야로 등반하거나 트레킹 떠나는 사람들은 이 이름을 기억해야 될지 모르겠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히말라야 거봉을 10번 이상 오르내린 가장 촉망받는 셰르파이고, 수년 내 세계의 등반역사에 그의 이름을 올리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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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 니마가 그가 5번이나 오른 ‘에베레스트’를 보며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그가 지난 7월말 한국에 왔다. 8월 10일 네팔로 돌아가기 전 지난 8월 7일 그를 잠시 만나 ‘히말라야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앳된 표정과 모습이 여실했고 눈빛도 초롱초롱 살아있었다. 살아 꿈틀거리는 듯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그렇고 그런 셰르파려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몇 마디 나누고, 그가 가지고 온 등반확인자료를 보는 순간 ‘야, 이 젊은 친구가 굉장하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네팔에 트레킹하거나 원정 왔던 한국인들과 잘 아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불과 5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10번 이상 히말라야 거봉을 오르내리면서 사귄 수십 명의 한국인들과 회포를 풀기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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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마(가운데)가 2009년 미국의 전설적 산악인인 루 휘테커의 아들 피터 휘테커(오른쪽)과 미국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에드 비에스터(왼쪽)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트레킹이건 원정대건 네팔엔 한국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주로 봄과 10월, 겨울시즌에 외국인들이 네팔에 옵니다. 제가 셰르파로 지원하는 외국 원정대나 트레커의 80%이상이 한국인입니다.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특히 친절합니다. 박영석 대장과 고미영 대장과는 등반을 같이 했고, 엄홍길 대장은 같이 해본 적은 없지만 셰르파 사이에선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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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의 실버원정대 김성봉씨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찍은 사진과 네팔 정부가 공인한 등반인증서.

네팔 고산에 거주하는 종족인 셰르파, 등반가이드 90%이상이 셰르파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등반가이드의 대명사가 됐다. 셰르파 니마도 예외가 아니다. 셰르파족의 재미있는 관습중의 하나가 바로 이름 짓는 방법이다. 이들은 태어난 요일을 꼭 이름에 붙이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요일 태생은 니마(Ngima), 월요일은 다와(Dawa), 화요일은 밍마(Mingmar), 수요일은 락파(Lakpa), 목요일은 푸라(Fura), 금요일은 파상(Pasang), 토요일은 펨바(Pemba)란 이름을 붙인다. 그의 이름이 니마가 된 것도 그가 일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네팔에서 이름이 7개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네팔엔 같은 이름이 굉장히 많다. 겔젠(Geljen)은 그의 가족성이다. 가족성에 태어난 요일을 붙이면 자동적으로 풀네임이 되는 것이다.


그가 히말라야에 오르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된 18세부터다. 네팔에서 미성년자에겐 히말라야 등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거봉을 보며 ‘나도 크면 꼭 저곳에 올라가리라’는 꿈을 키워오다 18세 되던 2004년부터 기다렸다는 덧 올랐다.


그해 11월 한국 봉화에 있는 농부등반가(그의 표현이다)인 유근세씨의 셰르파로 푸모리에 오르면서 거봉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2005년엔 푸모리와 아마다블람,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차례로 셰르파를 했다. 양정고 100주년 기념으로 OB산악부가 에베레스트 도전에 나섰을 때 동료 2명과 함께 등반지원에 나섰다. 8000m에서 베테랑인 동료 셰르파에게 정상 등반의 기회를 양보했지만 처음으로 고봉에 오른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을 했다. 정상 등반기회는 그리 멀리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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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에서 첫 에베레스트에 오른 여성 등정자(가운데)와 함께. 오른쪽이 세르파 니마.

바로 이듬해 중동고 개교 100주념 기념행사로 나선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번에 신장섭씨와 함께 정상에 등극했다. 2007년 봄엔 한국의 실버원정대 김성봉씨와 같이 올랐다. 김성봉씨와 니마, 두 사람이 정상에서 포즈를 잡은 사진을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같은 해엔 또 태국 등반대 두 사람과 함께 올랐고, 2008년엔 캐나다 퀘벡에서 첫 여성 에베레스트 등정자의 셰르파를 했다. 신문 1면에 정말 대문짝만하게 나온 사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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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에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여성에 대한 기사로 1면 전면을 장식한 신문과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오른쪽 상단).

올해 2009년엔 미국의 전설적 산악인인 루 휘테커의 아들 피터 휘테커(Peter Whittaker)와 미국에서 처음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에드 비에스터(Ed Viesturs)와 셋이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피터의 큰아버지인 짐 휘태커는 1963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인물이고, 수의사인 에드 비에스터는 에베레스트 7번 등정 중에 5번을 무산소로 오르는 쾌거를 이룬 산악인이기도 하다.


니마는 올해까지 불과 5년 만에 에베레스트에만 5번이나 오르는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이 외에도 프랑스 원정대와 푸모리, 아마다블람 등을 다녀왔고, 메라피크, 로부체, 임자체, 안나푸르나 등 트레킹 코스가이드 역할도 했다.

오는 9월엔 미국원정대와 마나슬루, 10월엔 프랑스 단독 원정대와 아마다블람 등반이 예정돼 있다.


“지금은 프리시즌이라 많은 등반대가 몰립니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 봉우리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합니다. 여태 3번이나 올랐습니다.”

그가 외국원정대와 원활한 대화를 위해 독학으로 영어를 익혔다. 인터뷰 내내 능숙한 영어를 구사했다. 한국어는 그에 비해 더듬거리는 수준이었다. 먼저 영어를 익혔으나 많이 찾아오는 한국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어까지 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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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 니마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네팔 기념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한국 원정대와 트레커들과의 재회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전국방방곡곡을 누볐다. 중동고 OB들을 만나 백담사를 다녀왔고, 우이령보존회 조상희 회장과는 굴업도에, 실버원정대와 대구에, 유근세씨 만나러 봉화에 갔다왔다. 그 외에도 인수봉과 취나드B코스 등반도 했고, 외설악 청화대도 올랐다. 고 고미영 대장 추모식장에도 참석, 인사를 올렸다. 뇌성마비 장애인들과 박영석 대장이 칼라파타르까지 함께 했던 당시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한국의 산하를 마음껏 즐겼다. 한국과 네팔의 차이를 말해보라고 했다.


“한국 등반은 쉽고, 걷기 좋고, 즐겁고, 시원한 반면 히말라야는 높고, 어렵고, 힘들고, 춥고, 피곤하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셰르파를 그만하라고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셰르파 생활은 너무 위험하며 아들과 계속 같이 생활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가 어릴 때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가 셰르파 생활을 그만두라는 이유다. 그는 그의 어머니와 형, 세 식구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셰르파 생활을 3~4년 더 할 것이라고 했다. 국제 등반가이드 자격을 획득하는 게 앞으로 1차 목표라고 밝혔다. 프랑스 국립등산학교에서 인정하는 등반가이드가 네팔에서 2명뿐이라고 한다. 조만간 그가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각오를 다짐했다.


“앞으로 3~4년 후에까지는 꾸준히 정상에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동경했던 그 산에 많이 올랐고, 계속 오르면서 산이 주는 강인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생활하더라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가는 그의 걸음에서 씩씩함이 묻어나왔다. 산이 주는 강인함을 배운 그가 3~4년 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심히 잘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8월 29일 네팔에서 만날 외국 원정대와의 히말라야등반이 벌써 기다려진다며 설레 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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