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과 정맥 종주가 등산인들에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 산을 좋아하고 산을 좀 다닌다는 사람은 누구나 종주를 선망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도서출판 보성각 염일순(65) 대표도 그 중의 한명이다. 그러나 그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 교과서에 실린 산맥을 하루빨리 산줄기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3년 6월 추령으로 넘어가면서.
출판업을 하는 관계로 지리학자들을 만나면 일본 학자에 의해 형성된 산맥 개념을 우리 전통의 산줄기 개념으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설득한다. 아직 그 벽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백두대간과 정맥 종주도 우리 산줄기 개념을 몸소 체험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시작했다. 종주를 하면서 산줄기 전도사를 자처했고, 덤으로 우리 국토를 더욱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됐다.
한남금북정맥을 혼자 완주한 그는 언제나 고독한 단독종주를 했다.
염 대표는 9년여에 걸쳐 단독종주를 완성했다. 동기가 분명했으니 중간에서 중단할 수도 없었다. 97년 4월12일 백두대간 마루금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리산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2년6개월 동안 한 달도 빠지지 않고 99년 10월16일까지 26차 52일간에 걸쳐 실측 거리 666.6㎞를 주파했다. 15~20㎏되는 배낭을 메고 하루 15㎞정도 되는 거리를 10~12시간씩 꾸준히 걸었다.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1시간 30분 걸으면 5분을 쉰다고.
겨울에도 혼자 다니면 외롭기도 하고 더 추운 것 같다고 했다.
사연도 많았다. 응복산~약수산 구간을 지날 때 본 수십 마리 떼의 멧돼지는 한편으로는 두려웠고, 한편으로 장관으로 보였다. 소백산 국망봉 능선상에서 야영할 땐 강풍으로 텐트 한 곳이 날아가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조침령에서는 중추절 보름달이 대낮같이 밝아 텐트에서 새벽 2시쯤 눈을 떴을 때 늦잠 잔 줄 알고 부랴부랴 일어나기도 했다.
지칠 때면 바위에 걸터 앉아 쉬는 게 전부였다.
대간 종주 후 정맥 종주하기로 작정했던 건 아니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니 내친 김에 정맥 종주까지 나섰다. 2001년 10월14일 금남호남정맥부터 시작했다. 70.7㎞를 두 달 만인 11월25일 끝냈다.
이어 419㎞의 낙동정맥을 2002년 6월8일부터 2003년 11월16일까지, 131㎞의 금남정맥을 2002 년 11월18일부터 2004년 4월10일, 454㎞의 호남정맥을 2004년 4월17일부터 2006년 6월17일까지 종주를 끝냈다.
낙동정맥 단독종주기념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했다.
두 코스를 동시에 종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간이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232㎞의 낙남정맥은 2006년 5월13일부터 2006년 12월2일까지, 158㎞의 한남금북정맥은 2007년 4월1일부터 2007년 6월10일까지, 282㎞의 금북정맥은 2007년 9월8일부터 2008년 1월13일까지, 178㎞의 한남정맥은 2008년 2월3일부터 그해 4월27일까지 종주했다. 마지막으로 165㎞의 한북정맥을2008년 5월5일부터 10월18일까지 끝냈다. 염 대표는 산행 때 식수 및 기본 간식은 물론 나침반, 고도계, 지도, 위성 GPS 등을 꼭 가지고 다녔다. 거리도 그가 실측한 결과다.
국내 산뿐만 아니라 시간적 여유만 되면 해외도 나갔다. 킬리만자로 최고봉 우후루 피크에서.
그의 등산경력은 7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부터 산에 다니기 시작한 그는 모 대기업 운영본부에 입사하자마자 산악회를 조직해 6년 동안 회장을 맡았다. 등산을 다니니 체력이 좋아져, 그가 좋아하는 술을 더 잘 마실 수 있었다.그렇게 시작한 등산이 40년 가까이 흘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북정맥 종주하면서.
그는 9년간의 백두대간과 9정맥 종주를 끝내고 지난 2008년 10월18일 그가 소속한 히말라안 클럽과 백산회 회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봉산 기슭 회룡골에서 고유제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인생이 그러하 듯 그는 언제나 혼자 산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