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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퇴계 오솔길’…퇴계의 등산예찬 - 마운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퇴계 오솔길’…퇴계의 등산예찬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가 길에서 다시 태어났다. 퇴계가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말한 낙동강 상류 강길 따라 청량산 가던 길을 안동시에서 ‘퇴계 오솔길’로 단장해서 새 코스로 내놓았다.

퇴계(1501~1570년)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한국 성리학의 대표적인 학자다. 그의 학문적 영향은 현재까지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더더욱 그의 인품은 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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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오솔길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오솔길과 배경으로 보이는 청량산. 한 편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의 인자한 성품을 대변하는 어릴 적 일화 한 토막. 퇴계가 8살 때 바로 위의 형 해가 손을 다쳐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얼른 달려와 상처 난 형의 손을 붙잡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 어머니 박씨가 어여삐 여겨 “정작 손을 다친 형은 울지 않는데, 네가 왜 우느냐?”고 물었다. 퇴계는 여전히 울먹이며 “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울지 아니하나,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 어찌 아프지 아니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성품이 남달랐다고 전한다.

그런 퇴계는 청량산을 유독 사랑했다. 과거에 합격하고 관직에 진출했어도 청량산이 있는 고향 안동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에 있었다. 단양과 풍기군수도 그가 고향 근처로 가기 원해서 온 관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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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안내판과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

관직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 이후엔 명종이 65세인 퇴계를 직접 찾았다.

명종이 보낸 ‘왕의 전교’의 전문이다. ‘내가 총명하지 못하고 어진 이를 좋아하는 정성이 모자라 전부터 여러 번 불렀으나 매양 늙고 병들었다 하여 사양하므로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노라. 경은 나의 지극한 심회를 알고 빨리 올라오라.’

퇴계가 거절하자 명종은 다시 ‘왕의 유지’를 보내 불렀다.

‘경의 사직하고자 하는 글을 보니 짐의 마음이 쪼개지는 듯하다. 사퇴하려고만 말라. 여러 번 부르는 정성을 저버리지 말고 잘 조리해서 올라오라.’

퇴계는 유지를 받고도 나갈 몸이 못됨을 알리고 부디 병든 몸을 놓아달라고 장계를 올렸다. 그래도 명종은 윤허를 내리지 않고 공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으로 승진시켜 소명을 내렸다. 그게 퇴계가 세상을 떠나기 4~5년 전인 1565년과 1566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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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에 대한 안내판.

훗날 기대승(奇大升)은 이런 퇴계를 두고 “중년 이후로는 바깥으로 달리려는 뜻을 끊었다”고 말했으나 제자 조목(趙穆)은 “온당치 못한 표현”이라며 “선생은 애당초 권세나 이익 따위의 분잡하고 화려한 것에 대하여 담박했다”고 반박했다.

퇴계는 기본적으로 구도자였고, 그런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도 한때 중앙정치에 몸을 담았으나 45세 때 발생한 을사사화에서 죽임을 당한 둘째 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귀거래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관직생활 중 공문서 속에서 ‘몸을 빼어 한때 산어귀를 거니는 무리’일뿐이라고 자조하기까지 한 부분은 그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진정한 은자이어야만 산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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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얘기한 대로 정말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너무 아름다운 길이다.

혼란한 정치현실에서 벗어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 나선 구도자의 심정으로 관직을 사직했다. 47세에 홍문관으로 조정에 들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관뒀고, 48세 되던 해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부임했으며, 그 해 10월엔 풍기군수로 옮겼다. 이듬해 4월 소백산을 다녀온 뒤 <소백산유람록>을 쓰고 이름을 ‘서간병수(栖澗病叟)’라고 적었다. 즉 시냇가에 깃들여 사는 병든 늙은이라는 뜻이다. 그해 12월에는 경상감사에게 세 번이나 사직서를 올려 회보를 기다리지 않은 채 귀향했다.

퇴계는 산수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산야기(山野氣)의 소유자였다. 또한 산을 정신적 가치의 상징물로 여겼고, 우러러보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에게 산놀이는 인간 욕망을 억제하고 본성의 깊이를 구명하는 공부로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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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바로 옆에는 낙동강이 유려히 흐르고 있다.

퇴계는 ‘유산(遊山)은 독서와 같다’고 했다. 산에 가는 것 자체가 마음 수행, 지식 수행으로 받아들였다. 청량산에 오르면서 그 마음을 잘 표현한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다.

‘글 읽기와 산놀이가 비슷하다 하지마는(讀書人說遊山似 독서인설유산사) / 이제 보니 산놀이가 글 읽기와 같으도다(今見遊山似讀書 금현유산사독서) / 공력이 다할 때는 으레히 내려오고(工力盡時元自下 공력진시원자하) / 얕고 깊음 아는 것도 모두 이에 있더구나(淺深得處摠由渠 천심득처총유거) / 열 구름 앉아 보아 기묘함을 알았었고(坐看雲起因知妙 좌간운기인지묘) / 근원지에 이르러선 비롯됨을 깨달았네(行到源頭始覺初 행도원두시각초) / 마루턱 찾을 것을 그대들에 기대하니(絶頂高尋勉公等 절정고심면공등) / 늙어서 전진 못하는 이 몸, 내 깊이 부끄러워라(老衰中輟愧深余 노쇠중철괴심여).’

사실 산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힘이었다. 루소는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기며,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도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산책을 예찬했다. 니체는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고 했다. 칸트도 매일 새벽 그의 산책을 보고 주민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는 헤겔과 야스퍼스, 막스 베버, 괴테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소크라테스와 당대의 철학자들도 산책을 하면서 의견을 펼쳤기에 ‘소요학파’란 이름까지 얻었다. 이와 같이 걷기는 단순한 다리운동이 아닌 머리와 마음을 일깨워주는 사색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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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우거진 숲 사이로 아득한 길이 나 있다.

생후 일곱 달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퇴계는 13세 때 숙부인 송재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집에서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50리 강변길을 만난다. 그 후 수차례 이 길을 다니면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지겹지 않고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1548년 퇴계는 청량산을 유람하면서 당나라 한유(韓愈)가 형악(오악 중의 형산)의 신에게 묵도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형산이 홀연 눈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산이 신령한 기운과 교감하는 경험을 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조화와 자취를 진정으로 즐겼던 듯하고 청량산을 이상향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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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쉬어가는 정자도 마련돼 있다.

그런 심정을 적절히 읊은 그의 시 ‘등산(登山)’이다.

‘그윽한 곳 찾느라고 깊은 골을 넘어가고(尋幽越濬壑 심유월준학) / 멧 숲을 거듭 뚫어 험한 데를 지났노라(歷險穿重嶺 역험천중령) / 다리 힘이 피로함은 논할 것이 없거니와(無論足力煩 무론족역경) / 마음 기약 이룩됨을 기뻐하곤 하였노라(且喜心期永 차희심기영) / 이 메의 솟은 양이 높은 사람 흡사하여(此山余高人 차산여고인) / 한 곳에 홀로서서 그 생각 간절코녀.(獨立懷介耿 독립회개경).

걷기는 시각으로 시작해서 청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으로 이어진다. 즉 명상과 달리 걸으면서 몰입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퇴계의 시 ‘등산’에서도 감각이 점점 고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퇴계 오솔길’은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의 시각을 충분히 휘어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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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흐르는 낙동강변의 주장절리도 볼거리이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1 Comment

  1. 김영혁

    06.12,2010 at 4:29 오후

    링크스크랲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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