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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모습의 산’ 관악산(冠岳山), 경기오악 중 한곳․소금강 등 절경만큼 이름 많아


한남정맥의 중추를 이루는 경기도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서 수원의 달기봉·광교산 등을 거쳐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서울 한강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다해 불꽃처럼 솟구친 산이 관악산이다. 관악산은 동봉(연주봉)의 관악, 서봉의 삼성산, 북봉의 장군봉과 호암산을 아우르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에 속해 있는 산으로 표고 629m이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으로 많이 나온다. 악(岳) 자체가 산(山)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운악·북악·치악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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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마치 갓 모양 같다고 해서 관악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였다. 빼어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 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울려서 철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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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관악산 정상 연주대이고, 오른쪽은 삼성산에서 올라가는 정상 봉우리이다.

일찍이 고려 숙종 원년(1069) 김위제가 지리도참설에 의해 남경 천도를 건의할 때 삼각산 남쪽을 오덕구(五德丘)라 말하며, 그 남쪽의 관악은 모양이 날카로워 화덕(火德)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朝山)으로 일찍이 역사무대에 등장했으며, 남쪽 봉우리 삼성산 중턱에 있는 삼막사에는 몽고항쟁 때 적장 살리탑을 살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관악산은 그 이전 한강을 중심으로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이 쟁탈전을 펼치고 당군(唐軍)을 축출할 때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서쪽 끝 봉우리에 해당하는 호암산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석축 산성이 있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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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장군봉. 관악산에는 태극기가 꽂힌 봉우리만 12개나 된다. 등산꾼들은 관악산 태극종주라고 해서 태극기가 꽂힌 12 봉우리를 종주하는 것을 말한다.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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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하게 늘어져 있는 관악산 능선.

북한산이 서울의 진산(鎭山)인 데 반해 관악산은 서울 경복궁의 조산(朝山) 또는 외안산(外案山)이 되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 된다. 따라서 이 산이 바라보는 서울에 화재가 잘 난다고 믿어 그 불을 누른다는 상징적 의미로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옆 양쪽에 불을 막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태조는 화환(火患)을 막기 위해 무학의 말에 따라 이 산에 연주(戀主)·원각(圓覺) 두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의 숭례문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관악산을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하게 해서 관악산이 덜 보이게 한 것 등은 불기운을 막기 위한 풍수적 의미라고도 한다. 관악산의 한 봉우리인 호암산 능선에는 통일신라 때 판 것으로 추측되는 산상 우물(한우물)도 있는데, 이것도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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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의 모습을 반대 각도에서 살펴봤다.

관악산은 풍수로 보아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王都南方之火山)’이다. 조선이 개국되자 왕궁터를 정하는데 관악산을 정면으로 하면 궁성을 위압하여 국가가 평안치 못하다는 무학과, 남쪽에 한강이 있어 무방하다는 정도전의 주장이 양립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불산’이라는 데는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불의 산인 관악산의 불기운을 끊는다는 풍수설에 따라 숭례문(崇禮門) 바로 앞(남대문로 5가 1번지로 추정됨)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팠다. 연못뿐만 아니라 서울의 모든 성문의 현판이 가로인데 반하여 숭례문은 세로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이 불의 산에서 옮겨 붙을 서울의 화재를 막기 위함이었다. ‘예(禮)’는 오행의 ‘화(火)’가 되고, 또 오방(五方)으로 보면 ‘남(南)’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崇’은 불꽃이 타오를 상형문자이기에 ‘崇禮’는 세로로 세워야 불이 타오를 수 있고, 또 타오르는 불을 막아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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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연주암.

관악산을 찾은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태종의 큰 아들 양녕대군과 둘째아들 효령대군이다. 1418년 왕세자의 자리를 동생 충녕(忠寧 : 세종)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양녕대군은 효령대군과 함께 궁궐을 나가 사흘만에 돌아왔으며, 이해 6월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 때 두 왕자가 관악산을 찾았다. 효령대군이 관악산에 오른 것은 그가 33세 때인 세종 10년(1428)으로, 관악산에 올라 시를 짓고 궁궐에 있을 세종을 그리워하며 관악산 제일 높은 봉우리 바위에 ‘戀主臺’라 친히 새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효령대군은 1429년에 관악사를 중수함과 동시에 약사여래상과 미륵존상·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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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암 위쪽 조금 옆으로 관악산 케이블이 지나고 있다.

험준한 산세에 깊은 골짜기들을 간직한 관악산은 기암괴석이 갖가지 모습으로 곳곳에 박혀 있어 찾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골짜기와 등성이에 15개가 넘는 절·암자가 있음은 이 산이 잘 알려진 명산이었음을 말해 준다. 한강유역 낮은 평지 위에 얹혀 있고, 또 주위에 큰 산들이 많지 않아 유달리 큰 산으로 보인다. 관악산은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준령·고봉으로서 장엄함과 험악함을 갖추었고, 비록 깊은 산은 아니면서도 골짜기마다 풍광이 신비경을 이루고 있다. 또 계곡 깊이 서폭포의 물소리 또한 장엄하고, 낮게 깔린 녹음 속에 맑은 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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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주봉 연주대 직전에 있는 관악산기상관측소. 누구나 무료로 입장해서 구경할 수 있다.

정상의 연주대는 관악산의 최고봉으로 신림9동과 과천시와의 경계에 우뚝 솟은 자연 바위벽으로 절 암자바위이다. 이렇게 관악산 정상에서 남남동으로 약 40m 되는 곳에 있는 이 암자바위는 10여개의 창(槍)을 모아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며 50m 이상의 절벽으로 3면이 둘러싸여 있다. 모여 있는 창 끝에는 아슬아슬하게 암자가 놓여 있다. 관악산의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되는 능선에는 관악산의 명물인 칼바위가 있다. 칼바위는 높이 약 10m, 지름 약 3m인 돌기둥이다. 이 돌기둥은 동쪽으로 약 60도 기울어져 있어서 지금이라도 쓰러질 듯이 보인다. 관악산의 명물바위들은 모두 50여 개에 이르는데,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한 것도 3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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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연주대와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있는 연주암.

관악산은 마주 보고 있는 청계산에 비해 골이 얕고 바위가 많다 하여 ‘남성산’으로 불리우며 ‘백호산(白虎山)’에 해당된다고 한다. 청계산은 관악산 보다 비록 11m 낮지만 골이 깊다 하여 ‘여성산’으로 상징하고 풍수로는 ‘청룡산(靑龍山)’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악산에는 여느 산과 달리 유난히 바위가 많다. 그런데 이 바위들은 그 하나하나마다 이름과 그에 따른 전설이 있다고 전해지나, 오랜 세월을 겪는 동안 많은 이름들을 잃어버렸으며, 현재는 몇몇 바위에 대해서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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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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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에서 사당으로 내려가는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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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에 볼 수 있는 한반도 바위. 한반도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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