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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조용헌이 말하는 ‘한국의 靈地’… 한국의 3대 관음성지인 ‘남해 금산 보리암’ - 마운틴
조용헌이 말하는 ‘한국의 靈地’… 한국의 3대 관음성지인 ‘남해 금산 보리암’


우리나라에서는 3개의 섬을 중시하였다. 강화도, 남해(島), 그리고 제주도이다. 제주도에는 삼신산 가운데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이 있었다. 바로 한라산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너무 멀었다. 배를 타고 접근하기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위험부담이 적었던 섬이 바로 강화도와 남해(도)였다. 이 두 섬은 육지와 아주 가깝다. 더군다나 고려시대에는 이 두 섬에서 팔만대장경을 찍어 냈다. 남해에는 ‘남해분사도감’(南海分司都監)이라는 팔만경 제조 분점이 있었던 것이다. 강화도가 팔만대장경 제조 본점이라면 남해는 분점이었던 셈이다. 팔만대장경은 시간이 많고 심심해서 만들었던 게 아니다. 세계 최강국인 몽고가 쳐들어왔으니 어떻게 이 고비를 넘는단 말인가. 고려가 살아남기 위한 절체절명의 몸부림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구원의 신물(神物)이 바로 팔만대장경이었던 것이다. 이 대장경을 만든 장소가 ‘강화도’와 ‘남해’라는 2개의 섬이었으니, 그 의미가 심장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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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 위에 보리암이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남해는 섬진강의 강물이 남해를 거치게 되어 있다. 섬진강이 어떤 강인가. 바로 지리산을 아래쪽에서 감아 돌아 나가는 강이 아니던가. 지리산의 기운이 남해에 모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섬진강에 뗏목을 띄우면 광양을 거쳐 결국 남해에 도착한다. 그러면서도 육지와 가깝다. 지금은 남해대교가 있어서 육지가 되었지만, 다리가 없던 시절에도 남해는 하동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면 곧바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남해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과, 물을 건너야 도달하는 종교적 이점, 그리고 금산(錦山)이라고 하는 영발이 강한 산이 있는 영지였다. 강화도에 마니산이 있다면 남해에는 금산이 있다. 마니산에는 단군이 제사를 올리던 참성단이 있다면, 금산에는 보리암이 있다.


금산 보리암은 불교의 관음 성지이기도 하다. 동해안에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에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남해에는 금산 보리암이다. 그만큼 영험한 도량이다. 왜 영험이냐? 바위에서 온다. 바위에는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이 광물질은 지자기(地磁氣)를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사람이 이러한 바위에 앉아 있거나 잠을 자면 지자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기(地氣)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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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관음봉 정상에서 보리암과 남해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기를 많이 받으면 일단 몸이 건강해지고, 그 다음에는 영성(靈性)이 개발된다. 지기가 뇌세포를 통해 뇌신경의 어느 부분을 건들면 종교체험이 온다.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거나, 산신이 나타나거나 하느님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세계 어디를 가거나 바위산에는 수도원이나 종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1천년 넘는 영험한 수도원들은 하나같이 바위산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커다란 바위산이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영험한 기도처가 있다. 더군다나 커다란 바위산이 주변에 호수나 바다가 있으면 더욱 영험해 진다. 바위에서 분출되는 화기와 물에서 나오는 수기가 서로 어우러져 영기(靈氣)를 조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이기도 하다. 남해 금산은 이러한 수화기제의 전형적인 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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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리암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스님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고, 바로 그 옆에 삼층석탑이 있다.

이 남해에는 금산(錦山)이라는 명산이 우뚝 솟아 있는 점이 아주 이채롭다. 산의 높이가 701m이다. 강원도와 같이 산간 지역에서 701m라면 높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바다 해수면의 높이에서 701m는 아주 높은 산이다. 그런데다가 온통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바위의 크기도 큼직큼직 하다.

보리암이 자리 잡고 있는 뒤편을 보면 엄청난 크기의 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 바닥도 암반이고, 뒤편도 암반이고,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가 보인다. 영지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터인 것이다.


고려가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이 남해에서 만들어 낸 이유도 좁혀 들어가면 이 금산의 영험함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성계도 조선조 개국을 위해 이 금산에서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이성계가 기도할 때는 고려 말 이다. 고려 말에 이미 기도객들 사이에서는 남해섬과 금산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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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해골처럼 보이는 기이한 동굴이 보리암 올라가는 자락에 있다. 이 쌍홍문이 있음으로 보리암터는 동천의 자격을 갖추었다.

보리암 종각(鐘閣) 옆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던 자리가 있다. 전쟁터에서 생과 사를 눈앞에 두고 살았던 무장 이성계는 종교적 영험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죽음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해야만 신비를 인정하는 법이다. 부도가 나서 길바닥에 나 앉느냐 아니냐를 수시로 겪어본 사업가야만이 기도발을 받아들인다.


보리암은 ‘독만권서’(讀萬卷書)를 하고 나서 ‘행만리로’(行萬里路)를 나섰을 때 우선순위로 가 볼 만한 영지이다. 금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해바다의 푸르름, 그리고 상주해수욕장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왜 해상사호가 이 산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한국의 4대 관음성지가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 그리고 남해의 보리암이다. 불교도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기도터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도가적인 취향이 물씬 배어 있는 곳이다.


영발이 있는 기도객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현재 보리암의 석조 관음보살상이 서 있는 지점이 가장 기가 강한 곳이라고 한다. 금산에서 내려오는 바위기운이 뭉쳐 있는 지점이다. 1년이면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소문난 기도터이면서도, 기운이 크게 오염되지 않는 이유는 해풍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그 해풍에서 오는 수기와 금산의 화기가 뭉쳐 있는 지점이 바로 이 관음상 앞이라고 하니까,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위 내용은 월간<산>에 연재하고 있는 ‘동양학 박사 조용헌의 영지 기행’을 발췌한 것임.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2 Comments

  1. 지해범

    05.24,2012 at 2:16 오후

    남해 금산 한번 갑시다…   

  2. 호르라기

    05.30,2012 at 7:20 오후

    항상 좋은 그림 !
    그리고 좋은 글…
    많이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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