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경지와 생사 초월한 극한 등반상태의 차이는?

성형을 권하지 않은 성형외과 진세훈 의사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몸을 낮춰 동분서주하는 산악인 엄홍길, 두 사람이 청계산 등산을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뭔가 반짝 떠오른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자연 그대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성향을 지닌 듯하다.

1.jpg

진세훈 성형외과 원장과 엄홍길 대장이 청계산을 오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지막 극한 상황에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야만 정상에 올라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 극한 상황은 생사를 넘어서는,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단계가 아닌지요?”

“맞습니다. 그 상태가 돼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저도 정상에서 죽을 고비를 한두 번 넘긴 게 아닙니다. 정상에서 저가 한 행위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때는 시간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하루가 흘러간 그런 순간입니다. 아마 그런 상태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초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으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2.jpg

진세훈 원장이 엄홍길 대장을 즐겁게 맞으며 활짝 웃고 있다.

“저가 볼 때는 그 단계가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를 넘나드는, 깨달음의 경지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종교인들도 그런 경험을 엄 대장보다 많이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엄 대장한테 큰 소리 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의학적으로는 그 상태는 해마가 뇌 저장기능을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실행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다운로드가 되지 않은 것과 같은 거지요.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 죽음으로부터 의연한 환자는 여태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이나 목사분들과 엄 대장이 그런 정신세계나 상태에 대해 대담을 한 번 나누면 의미심장한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대담주제는 영혼의 가치수준으로 정하고 말입니다.”

3.jpg

진세훈 원장이 엄홍길 모형물 뒤에서 얼굴만 내밀고 사진을 찍고 있다.

엄 대장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마 정말 자신이 성직자와 대담을 나눌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내가 그런 사람과 비교해도 되는가를 되짚어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그렇게 겸손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다. 다시 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정말 극한 상황에서의 도전은 인간이 겸손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엄 대장보다 힘 세고 기술 좋은 산악인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이 모두 히말라야 정상을 밟았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순수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만이 올라갑니다. 농담 같지만 장수의 요인 중에 가장 큰 변수가 뭔 줄 압니까? 병에 안 걸려야 하고, 소식해야 하고, 술․담배를 하지 않아야 하고 등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운입니다. 그리고 운은 순수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한테만 다가갑니다.”

4.jpg

진세훈 원장과 엄홍길 대장이 산딸나무꽃을 보면서 향기를 맡고 있다.

“정말 정상에서의 저가 했던 생각과 행위를 돌이켜 보면 저도 이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뭣 때문에 여기 서 있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밑에서 보면 전혀 정상적이지 않죠. 정상을 밟았다는 감동이 뒷전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나 돌이켜볼 때 아찔한 생각이 들죠. 생사를 그렇게 넘나들고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겁니다.”

5.jpg

진세훈 원장과 엄홍길 대장이 녹음이 짙어가는 청계산을 오르고 있다.

“네팔에 학교를 많이 짓는 일도 정신적 능력과 물적 토대, 인적 네트위크 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장기려 박사는 국가의료보험을 실시하기 전에 개인 의보를 실시했습니다. 개인이 단돈 1,000원을 내는 의보였는데도 적자를 내지 않았습니다. 조직이 방대한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조직을 운영하는 마인드가 포인트입니다. 조직을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도둑만 모이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돌아가실 때까지 재산 하나 없었습니다. 모든 재산관리를 온실관리인이 했습니다. 단돈 한 푼도 허투루 쓰는 일이 없었으니 새는 돈도 당연히 없었죠. 그러니 개인의보도 1,000원만 받고도 적자 없이 잘 운영된 겁니다.”

6.jpg

진세훈 원장이 엄 대장과 청계산 진달래능선우수조망명소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진짜 자신의 영혼의 가치를 드러낸 경험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정말 엄 대장은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등반 세계에서는 그런 면이 다반사입니다. 그게 기본적으로 발휘돼야 정상까지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할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갈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끝없는 수련을 통해 내공이 쌓여야 가능할 겁니다. 수련을 해도 품질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에도 당연히 품질이 있지요.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근기가 있다는 말이죠. 자신을 관리 통제할 인격과 인간성을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진 원장은 등산하면서 진지한 얘기를 끝없이 했다. 이번에 직접 ‘겸손’이란 화두를 진 원장에게 던져봤다.

“단순한 개념으로는 나를 낮추고 마음을 비우는 상태를 말하겠지요. 하지만 엄 대장의 겸손은 좀 다르다고 봅니다.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발휘하려면 욕심이 없어야 하고, 에너지도 딴 곳에 쓰지 않아야 합니다. 즉 자신에게 충실해야만 하는 게 겸손입니다.”


“저는 산에 가는 데 에너지를 씁니다. 그리고 산에서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를 더 비우죠. 그래야 채워집니다. 산에 가면 온갖 세속에 찌든 욕심과 스트레스가 한 순간 사라집니다.”

“엄 대장 같은 사람이 더 비우면 영원히 하늘나라로 갈 것 같습니다. 그만큼 비웠으면 됐을 것 같은데요.”

7.jpg

엄홍길 대장이 진세훈 원장에게 등산할 때 스틱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면서 진 원장의 등산예찬이 이어졌다.

“러닝머신 1시간 하는 것과 등산 1시간 하는 것을 비교해봅시다. 달리는 거리가 같으면 에너지 소모도 비슷할 겁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산에 가는 게 훨씬 좋습니다. 한 자리에서 맴도는 것보다 자연을 보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성취감을 느끼는 큰 차이가 있죠. 저는 등산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어릴 때는 금정산, 성인이 돼서는 우면산, 지금은 청계산 자락에 살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등산을 하게 됐죠. 한번은 겨울 소백산을 등산했는데, 눈보라에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쳤습니다.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 눈보라가 그치기를 기다렸죠. 그 때 8,000m 이상의 산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심정이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산의 경건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6~7년 전에 등산하다 십자인대가 찢어져 산행을 못 하다 최근 좋아져 다시 북한산이나 도봉산, 청계산에 살살 다니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항상 모이면 히말라야 트레킹 가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8.jpg

진세훈 원장이 엄홍길 대장의 이마 흉터를 보며 “한번 찾아오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덧 청계산 우수조망대 봉우리에 도착했다. 도심을 내려다보지만 흐린 날씨라 별로 보이는 건 없다. 마침 엄 대장이 이마에 상처를 보여주며 “이 흉터도 치료됩니까”하고 묻는다. 남미에서 행글라이더 타다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을 때 입은 상처가 남긴 흉터다. 진 원장이 이마를 들여다보며 “한번 찾아오세요. 이런 함몰된 흉터는 흉터 자체를 없앨 수 없지만 살을 키워 정상 부위와 똑 같이 평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산악인들이 입는 동상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동상으로 인한 조직 손상이 생기면 아무리 손상된 조직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제거하지 말고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완전히 손상된 조직이 구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손상 순간은 회복될 수 없이 보이는 조직이더라도 주변의 혈액공급을 받아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감사합니다. 후배 산악인들한테 진 원장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저는 네팔에 열심히 학교를 짓겠지만 원장님은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그동안 치료하기 어려웠던 깊은 주름이나 함몰 흉터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선정해서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 시술을 조금씩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사회복귀와 재활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이등부터 꼴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등은 시기심과 질투심을 유발하며, 타도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애초부터 일등을 할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세상이 편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었습니다.”

IMG_1588.jpg

청계산 우수조망소에 걸터앉아 진 원장과 엄 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교 3년 때 3일 동안 학교 안 가고 교육심리학 교수댁에서 적성검사를 한 결과, 의과대학 가서 성형외과 하는 게 맞다고 해서 의사가 됐다는 진 원장. 의사라는 전문 지식을 주관적인 판단으로 환자, 즉 남을 위해 사용한다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는 그런 의사다.

“인공적인 개발은 당장은 좋아 보이고 편리해 보이지만 이후 자연스러움을 잃거나 산사태의 재앙으로 돌아오듯이 성형도 미학적인 균형에서 깨어진 부분만 맞춰주는 수술을 해야 어색해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자신의 얼굴에서 미를 찾아내는 것이 성형이지 완전히 바꾸어 딴 사람의 얼굴이 되는 것은 성형이 아니라 변장이나 둔갑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의 코나 눈을 흉내 내지 말고, 만족하면서 마음을 성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형외과 의사가 성형을 권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성형하라고 한다. 진세훈 원장은 그런 의사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