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사람은 여러 번 죽습니다. 이 때 죽는 것은 사람의 숨이 끊어진다는 의미와 차원이 다릅니다. 내가 등산과 야영을 하지 않거나 못하면 난 그 부분에서 죽은 것입니다. 남녀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그것도 그 분야에서 죽은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사실은 이러한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 총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등산과 야영을 즐기는 이유는 나의 존재가치를 등산과 야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닿을 때까지 등산과 야영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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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강원도 고성 신선대에서 갑오년 첫날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맞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사진부 이덕훈 기자

50여년 야영과 등산 관록의 양승태(梁承泰․66) 대법원장의 갑오년 새해 첫 일성이다. 그것도 2014년 0시 0분 전후해서 후배 법관들과 직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였다. 그 자리는 법원산악회 주최로 매년 개최하는 신년 일출산행 일환으로 강원도 고성 금강산 신선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날 신년 일출산행엔 전국 법원 32개 기관 소속 222명이 참가했다. 대법원․법원행정처․서울고법 등 수도권 소재 법원뿐만 아니라 제주지법에서도 5명이나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성황을 이뤘다.


법원산악회는 1969년 창립된 전통 있는 산악회로, 역대로 등산을 좋아하는 대법관이 회장을 맡아 왕성을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다소 침체 상태에 빠졌다. 이를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법관 시절인 2005년부터 2009년 4월까지 회장을 맡아 산을 좋아하는 후배 법관들과 직원들을 산으로 이끌었다. 대법원장은 법원산악회를 재건하는 동시에 야영의 ‘야’자와 등산의 ‘등’자도 모르는 법관들과 직원들을 지금 등산전문가와 야영전문가로 조련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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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법원산악회의 신년 일출산행에 전국 법원 32개 기관 222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강원도 고성 신선대에서 갑오년 첫 일출을 맞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도 양 대법원장은 본진이 출발하는 31일 밤 11시보다 조금 이른 시각인 오후 7시, 업무를 마치자마자 후배 법관 및 직원 10여명과 함께 출발해서 백담사 만해마을 인근 야영장에서 야영에 들어갔다. 어둠이 깔리기 전 대법원장보다 먼저 도착한 법원 직원들이 숙련된 솜씨로 순식간에 텐트를 쳤다. 그들은 전부 대법원장한테 배운 솜씨라고 자랑했다. 대법원장의 산행과 야영 경력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부산 경남고) 1년 때인 1963년 경남고 산악부에 가입한 이래 지금까지 누구 못지않게 험한 산행 위주로 산을 오르내렸다. 서울대 법대 시절엔 고시 공부하러 깊은 산사(山寺)에 들어갔다가 틈틈이 주변 산을 오르내렸으며, 1970년 사법시험 합격한 뒤에도 산과 끈끈한 정을 이어갔다.

대법원장과 이전에 2번이나 야영을 경험한 바 있는 기자는 대법원장의 야영솜씨를 이미 직접 확인한 바 있다. 몇 년 전 칼바람 부는 화악산을 등산하다 어둑어둑해지자 눈이 1m 가량 쌓인 자리를 찾아 텐트를 쳐야만 했다. 날씨는 체감온도 영하 40도는 넘는 듯했다. 모두들 몸이 꽁꽁 얼었고, 손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당시 6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직접 본인 텐트를 고정하는 못을 박는 모습이 부담스러웠던 후배 법관이 “저에게 주십시오. 저가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이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네. 바람을 제대로 막으려면 숙련된 솜씨로 단단히 고정시켜야 하네”라고 웃으며 계속 작업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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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터기 전 새벽 6시에 강원도 고성 델피노리조트에서 법원산악회 신년 일출 산행을 출발하고 있다. 헤드랜턴을 켜고 산을 오르는 행렬이 마치 가로등이 길게 연결된 듯하다.

이날은 비록 대법원장이 조금 늦게 도착하는 관계로 후배 법관과 직원들이 이미 텐트를 친 상태였다. 아마 대법원장과 함께 왔더라면 다시 한 번 대법원장의 텐트 치는 능숙한 솜씨를 봤을 텐데….

텐트 내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대법원장은 강추위를 예상하고 가장 두꺼운 옷까지 준비해왔다고 하면서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날씨가 별로 안 추워 영 재미가 없네.”

“예, 작년과 비교하면 텐트 안은 호텔 수준입니다. 지난해에는 눈 위에 친 텐트 안으로 칼바람이 송송 들어와 체감온도 영하 30℃는 족히 됐을 겁니다.”

설악산에서 발원해서 야영장 주변으로 흐르는 하천은 전부 꽁꽁 얼어 있었다.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날씨인데도 별로 안 춥다고 할 정도인 강골 대법원장이다.

밤은 깊어갔다. 제야의 종소리를 방송으로 듣고 대법원장은 덕담 겸해서 ‘사법부의 관료화’에 대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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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쯤 동이 터기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산악회 회원들이 산행 출발에 앞서 장비점검을 하고 있다.

“사법부의 관료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격하는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져야 할 법관들이 지나친 형식과 관례에 얽매며 자칫 법의 형평성을 잃을까 우려됩니다. 다른 정부 부처에서 그런 지적을 할 때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런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난 그런 고리타분한 형식과 관례를 전혀 원치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법관들 모두 ‘내가 관료적이지 않았나’를 고민하고 그런 점이 있다면 스스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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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눈길 위를 걷고 있다.

얼마 전 신임 판사 임명 자리에서도 작심하고 한 마디 했다고 소개했다.

“법관이라는 괜찮은 직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직업을 발판으로 정계나 다른 직업으로 옮기려는 사람, 편하게 직장생활 하겠다는 사람 등은 아예 처음부터 법관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고 말했다. 신임 법관들에게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라는 강한 주문이었다.

대법원장의 지적이 워낙 신랄했던지,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신임 법관이 전 비서실장에게 “대법원장님께서 사명감이 없으면 관두라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라”고 굉장히 고민스러워 하더라는 말까지 전했다.

물론 대법원장은 2014년 0시0분1초를 같이 맞은 후배 법관들과 직원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인사말은 빼 먹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무르익어가자 대법원장은 “꼬박 2년 동안(12월31일 밤부터 1월1일 새벽까지를 지칭하는 농담 스런 표현) 술자리를 하니 피곤하다”며 자리를 파하자고 했다. 그 시각이 밤 1시30분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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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산악회 회원들이 설악산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년 일출 산행 출발예정 시각은 5시50분. 그러기 위해선 새벽 4시쯤 일어나야 한다. 수면 시간은 불과 2시간 남짓. 일제히 헤드랜턴을 켜고 취침을 할 각자 텐트로 돌아갔다. 잠시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선잠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4시, 텐트 여기저기서 알람이 울렸다. 부랴부랴 텐트를 정리하고 출발지로 향했다.


아침 6시15분, 델피노리조트에서 떡국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금강산 신선대로 향해 출발했다. 역시 50여년 관록의 대법원장이었다. 200여명의 대열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대법원장과 같이 등산하면 오랜 관록에서 우러나오는 ‘등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대법원장도 이전의 산행에서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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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산악회 회원들이 눈 덮인 신선대 하산로로 내려오고 있다.

“난 원래 평이한 산행보다는 다소 험한 산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본격적인 바위를 타는 프로급의 산행을 할 실력은 없습니다만, 평탄한 길보다는 암릉코스라든지 산중 야영을 하는 산행을 더 좋아합니다. 공직자라 시간을 잘 낼 수 없어 마음껏 못합니다만 가능하면 법적으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주 야영산행을 하려고 합니다. 몇 년 전 겨울에도 영하 20℃의 추위와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에서 야영하는 재미를 만끽했습니다. 앞으로 체력이 허용하는 한 이런 산행을 계속할 작정입니다. 그리고 난 몸이 좀 늦게 풀리는 편이예요. 야영을 하고 등산하면 다른 사람은 피곤한 듯하지만 난 오히려 힘이 더 납니다. 첫날보다 둘째 날이 몸이 훨씬 가벼워요. 또 등산길은 천천히 오르지만 하산길은 누구보다 빨리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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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 매니아인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년 일출 산행에 앞서 백담사 야영장에서 후배 법관들과 함께 야영을 하고 있다. 사진 박정원

전날 새벽까지 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 옆에선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지만 대법원장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일제히 헤드랜턴을 켜고 오르는 일행들의 불빛은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200여명의 어둠을 가르는 불빛행렬이었다.

화암사 일주문에서 출발한 산행은 화암재를 거쳐 신선대 정상 근처에 다가서자 어둠이 걷히고 여명의 불빛이 밝아왔다. 능선 위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칼바람이 쌩쌩 불었다. 너럭바위였지만 원체 센 바람이라 몸이 조금씩 날렸다.


서서히 구름사이로 갑오년 첫 해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혀를 날름거리듯 모습을 드러내더니 오전 7시40분쯤, 마침내 불쑥 솟아났다. 붉게 타오르는 장렬한 아침햇살의 기운을 그대로 받는다. 갑오년 첫 일출의 장관이다. 일출의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여기저기서 셔터를 누른다. 다들 대법원장과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대법원장은 마치 탤런트가 된 듯하다. 한 겨울 북에서 불어오는 한풍에 서 있기도, 말을 하기도 힘들다. 주변 경관을 돌아볼 여유조차 찾지도 못할 지경이다. 북서쪽으로는 미시령, 남서쪽으로 울산바위, 동으로 동해 바다 등 사방이 확 트여 조망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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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일출 산행 중 잠시 쉬는 동안 법원산악회 직원이 주는 음식을 먹고 있다.

원체 센 바람 탓에 삼삼오오 수바위 방향으로 하산하고 있다. 퍼즐바위~선인재능선~임도길을 거쳐 델피노리조트까지 총 7.7㎞를 3시간 30분 만에 마치고 돌아왔다. 임도 끝지점에서 법원 전 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념 플래카드엔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가족 2014년 신년 일출산행’이라고 적혀 있다. 대법원장이 추구하는 사법부의 화두가 ‘소통’이다. 아무 꾸밈없는 산을 통해서 허심탄회하게 직원과 국민과 소통하는 대법원장이다. 이전에 산에 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산은 정직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어떤 판단을 하는가는 보는 사람 각자의 몫입니다. 산은 엄합니다. 산을 얕잡아 보는 사람은 여지없이 엄하게 응징합니다. 또한 산은 공평합니다. 땀 흘리고 봉우리를 올라온 사람에게는 뿌듯한 성취감으로 잊지 않고 보상을 줍니다.”

산을 법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 법은 정직하고, 법은 엄하고, 법은 공평하다. 대법원장의 말에 따르면 산이 곧 법이고, 법이 곧 산인 셈이다. 그 산을 통해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이다. 법원산악회는 내년을 기약하고 올해의 신년일출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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