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박사와 함께 통영·진주 ‘동양학 트레킹’… ‘군신봉조형’과 ‘無진주 無호남’

“여행은 3간이 맞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같이 하는 인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시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이동이 가능하다고 해서 공간, 이렇게 3간이 맞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아마 3간이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옛말에 공부의 완성은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라고 했습니다. 책을 만권 읽고 만 리를 여행하면 무엇에든 거침이 없다고 합니다. 독서만이 공부가 아니고 이렇게 여행 다니시는 것도 훌륭한 공부입니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케이블카에서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조망된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케이블카에서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조망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동양학자인 ‘조용헌 박사와 함께 하는 동양학트레킹’을 한국 최고의 여행지인 통영과 진주 일대를 지난 8월28~30일까지 2박3일 다녀왔다. 통영은 이미 알려진 대로 한 해 600만 명 이상이 찾는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다. 먹거리․볼거리가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근 도시인 진주도 한반도 3대 누각인 진주성 촉성루와 더불어 논개이야기, 김시습 장군 등 다양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숱한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다.

첫날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오후에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랐다가 걸어서 하산하고, 둘째 날은 매물도와 소매물도 두 섬을 두루 산책한 뒤, 마지막 날에는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진주에 들러 둘러보고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버스가 함양(咸陽)을 지나자 조용헌 박사가 마이크를 잡는다.

“함양은 한자 이름 그대로 이 지역 모두 양기가 넘쳐흐르는 땅입니다. 과거 지방으로 부임하는 모든 부사(府使)들의 집결처이자 명산을 거쳐 가는 분기점입니다. 남쪽의 교통요지인 셈이죠. 양기가 넘쳐 함양에서 나는 풀들은 모두 약초입니다. 인삼밭엔 두더지이고, 당귀밭에 멧돼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귀밭은 물기가 있어 축축합니다. 진흙탕에 몸을 비비는 목욕을 좋아하는 멧돼지들이 딱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당귀밭의 멧돼지가 맛이 좋다고 합니다. 이 멧돼지들의 쓸개가 약이 됩니다. 곰의 웅담(熊膽)이 너무 비싸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반면 멧돼지의 저담(猪膽)은 효과는 별 차이 없고 가격은 웅담보다 훨씬 싸, 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인기입니다. 그래서 함양엔 산삼밭을 가꿔 성공을 거두고 있고, 지리산 북쪽 함양 곳곳엔 약초꾼들이 많습니다. 옛날로 치자면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여 인물이 많이 나던 곳이 바로 함양입니다.”

지리산을 거쳐 한반도의 남쪽, 남해 바다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조 박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동해는 바다가 깊고 맑은 반면, 남해는 자갈이 많습니다. 서해는 갯벌이 매우 넓습니다. 동해 사람들은 서해에 와서는 고기에 뻘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반면 남해는 동해의 멀건 바다도 아니고 서해의 갯벌도 아닌 적당히 자갈과 갯벌이 섞여 해산물이나 생선들이 맛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려해상의 중심인 통영이 가장 볼거리 많고 먹거리 많은 곳입니다.”

조용헌 박사와 함께 하는 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미륵산에서 하산하고 있다.

조용헌 박사와 함께 하는 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미륵산에서 하산하고 있다.

이윽고 미륵산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난 6월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표를 사는 데 2시간, 케이블카 타는데 3시간 등 총 5시간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고 통영시 공무원은 전했다. 그 주말은 통영시 전체가 교통마비로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거기 비하면 이날은 준수한 편이었다.

잠시 기다려 케이블카를 탔다. 한 대당 6명이 나눠 올랐다. 전국 지자체가 부러워하는 케이블카이기도 하다. 시에 많은 수익금을 올려다주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때문이라기보다는 통영시 자체가 원체 볼거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블카가 올라가면서 한려해상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다. 정지용 시인이 한려해상을 보고는 “이 바다의 아름다움을 더 이상 글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 바로 그 바다다. 마침 정지용 시인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비 주위에서 내용을 읽어보느라 시비를 에워싸고 있다. 바로 위 미륵산 봉수대를 거쳐 미륵산 정상에 올랐다. 역시 한려해상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감탄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려수도(閑麗水道)는 한산도(閑山島)에서 여수(麗水)까지 이르는 300리 바다길을 일컫는 말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한려해상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여수 돌산도 조망도 가능하다. 탁월한 전망을 자랑한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으로 고려 말부터 들끓는 왜구들로 인해 봉수대를 설치했다. 한산대첩의 현장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있는 한산도의 제승당이 어렴풋이 보인다.

미륵산 자락에 미래사가 있다. 그 미래사에 한국의 대표적 승려인 효봉스님이 한때 주지로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조 박사가 다시 선 채로 이곳저곳을 보며 설명한다.

소매물도 관세역사관 앞에 있는 후박나무 군락지 앞을 지나고 있다.

소매물도 관세역사관 앞에 있는 후박나무 군락지 앞을 지나고 있다.

“섬이 있어야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섬들이 얘기를 주고받는 듯합니다. 한국 남해안은 세계적 해안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가보니 별 볼 것도 없었습니다. 거기 비하면 통영이 훨씬 낫습니다. 일상에서 열불 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바다를 보거나 석양을 보면서 해소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립니다. 미륵산은 풍수상으로는 군신봉조형(群臣奉朝形)입니다. 여러 섬들이 메시아인 미륵산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는 형국입니다.

이곳에 있는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이 한동안 주지를 했습니다. 효봉 스님은 판사를 하다 출가를 하여 일제시대 엿장수를 하며 전국을 떠돌던 스님 아닙니까. 오래 전 가수 조용필이 효봉 스님을 찾아 뵐 기회가 있었답니다. 효봉 스님이 “너는 뭐 하느냐”라고 묻자, 조용필이 “저는 노래하는 가수입니다”라고 대답하자, 효봉 스님은 “그러면 너는 꾀꼬리구나. 꾀꼬리를 한 번 찾아봐라”고 했답니다. 조용필이 그 몇 년 뒤 발표한 노래가 ‘못찾겠다, 꾀꼬리’라고 합니다. 효봉 스님의 선문답을 가수 조용필이 제대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용필도 그 정도 되니 한국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통영의 한려해상을 배경으로 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통영의 한려해상을 배경으로 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미륵산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조 박사의 재미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은 뒤 미륵산 달아길로 내려왔다. 평균 연령 60을 넘는 참가자들도 400m 남짓 되는 산에서의 하산길은 산책하는 수준이었다. 이어 한국의 최고 일몰을 자랑하는 달아공원에 들렀다. 하지만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달아’라는 지명은 이곳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달구경하기 좋은 곳’이란 뜻으로 쓰인다. 해가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달은 더더욱 보이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달아공원을 그냥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온다. 이젠 저녁식사 장소로 향한다. 통영의 풍부한 해산물과 생선회로 식사를 마치고 첫날 일정은 끝났다.

둘째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소매물도로 가는 배를 탔다. 배 안에서 충무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아침부터 비가 주르륵주르륵 내린다. ‘제발 트레킹 하는 동안에는 비가 그쳤으면….’하고 바랐건만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1시간 20여분 걸려 소매물도 선착장에 도착해 트레킹을 시작한다. 한 참가자가 “비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을 즐기러 참가했는데, 즐기면 된다”고 하며 앞장선다.

소매물도 망태봉에서 등대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등대섬으로 넘어가는 열목개는 비로 인해 개방되지 않았다.

소매물도 망태봉에서 등대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등대섬으로 넘어가는 열목개는 비로 인해 개방되지 않았다.

사실 소매물도엔 무척 볼거리가 많다. 옛날 중국을 통일한 진(秦) 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러 신하를 보낸 곳이 소매물도이며, 그 신하가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巿過此․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란 글씨를 새겼다는 글씽이굴과 남매바위, 촛대바위, 병풍바위와 같은 경관과 하루 한 번 인근 등대섬까지 바닷길이 열리는 열목개 등이 있다. 뛰어난 풍광으로 영화 ‘파랑주의보’와 각종 CF, 작품사진 등에 많이 등장했으며, TV 1박2일에도 소개된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이런 풍광으로 한 해 방문객이 40만~45만 명에 육박할 정도다. 

소매물도의 경관을 즐길 여유도 없이 후박나무 군락지와 소매물도관세역사관을 거쳐 정상 망태봉(152m)까지 갔다 다시 돌아왔다. ‘소매물도 등대길’ 일부만 트레킹 한 것이다. 다른 참가자는 열목개를 건너기 위해 등대섬 앞까지 갔으나 비로 인해 통제하고 있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소매물도의 별미인 멍게비빔밥을 즐긴 뒤 다시 매물도로 향했지만 비는 그칠 줄 모른다.

미륵산 하산길에 조용헌 박사가 참가자들에게 미륵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륵산 하산길에 조용헌 박사가 참가자들에게 미륵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매물도의 대항마을을 거쳐 당금마을에 닿았다. 당금마을은 원래 중국의 비단같이 자연경관이 수려하다고 해서 당금(唐錦)마을이라 불렸으나 후에 금광이 발견되자 당금(唐金)으로 바꿨다고 전한다. 매물도는 소매물도와 달리 전형적인 시골분위기를 띤다. 대항마을 선착장 구판장 아주머니는 “한때 매물도에 100가구가 살 정도로 번성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항, 당금마을 합해서 겨우 20여 가구 산다”고 한다. 아주머니도 육지에서 어머니 일손을 덜기 위해 왔다고 한다.

동양학트레킹 참가자들은 비가 와도 예정대로 트레킹을 떠났다. 내리는 비가 예사롭지 않다. 신발 안에 물이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우의를 입었는데도 비바람이 우의를 벗길 정도로 거세다. 한 여성 참가자의 “비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을 즐기듯이 즐기면 된다”는 말로 빗속 트레킹에 동행하는 사람이 제법 된다. 이들을 따러 나섰다. 트레킹 코스는 ‘매물도 해품길’이다.

잠시 비가 멎는 사이 오른쪽 통제된 길을 살짝 넘어서 가고 있다.

잠시 비가 멎는 사이 오른쪽 통제된 길을 살짝 넘어서 가고 있다.

당금마을에서 떠난 일행은 옛소풍터를 지나 해녀의집→노을정원→제주해녀를 데려온할머니집을 지나 발전소에 이르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쏟아지는 비로 도저히 카메라를 밖으로 낼 수 없을 정도다.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60대 이상의 참가자들 상당수는 그 빗속에도 트레킹을 했다. 비도 자연의 일부고, 같이 즐기기 위해서…. 부럽다. 조 박사는 이 모습을 보고 “여태껏 참았던 여유가 이제야 살아나 제대로 즐길 줄 아신다”고 맞장구친다.

사실 매물도에도 소매물도 못지않게 볼거리가 많다. 봄에는 동백꽃이 지천에 늘려 환상적인 경관을 자아내고 도립보호수인 산제당후박나무도 방문객들이 빼놓지 않고 보는 나무다. 뿐만 아니라 최고봉 장군봉과 수리바위, 조개굴, 일본군 포진지 등 날씨만 좋았으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삐 돌아다녔을 명소들이다. 아쉽지만 다시 육지로 돌아와 둘째 날의 일정도 무사히 마쳤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했다는 바위가 오른쪽에 홀로 외로이 남아 역사를 전하고 있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했다는 바위가 오른쪽에 홀로 외로이 남아 역사를 전하고 있다.

마지막 날은 고려 명종 때 문신으로 유명한 이인로(1152~1220)가 그의 문집 <파한집>에 ‘晋陽溪山勝致 嶺南第一(진양계산승치 영남제일․진주의 아름다운 산천은 영남에서 제일이다’고 진주의 산천을 최초로 예찬한 글을 남긴 진주로 향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에서 왜군에 결사항전해 임란 3대첩 중의 하나인 1592년 진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어낸 장소인 진주성에 도착했다. 사적 제118호다.

진주성에 있는 촉석루는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반도 2대 누각이고, 밀양 영남루를 포함하면 한반도 3대 누각, 남원의 광한루를 포함하면 4대 누각이 된다. 밀양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촉석루가 영남루보다 120여년 앞서 건축했다.

진주 촉석루는 한국전쟁 직전까지 국보 제276호로 지정됐으나, 전쟁으로 원형이 파괴되고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지금 진주를 비롯한 경남에서 촉석루를 국보로 재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화재 지정요건이 중건 후 50년 지나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보류했지만 지금은 촉석루 중건 53년이 지났기 때문에 자격요건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경남도 문화재심의위원들이 현지답사를 다녀오고 문화재청에 재청청구를 한다고 한다.

촉석루는 의기 논개의 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다. 논개는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 순절했다.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의기사(義妓祠)를 세워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용헌 박사가 촉석루 누각의 구조에 대해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조용헌 박사가 촉석루 누각의 구조에 대해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조 박사가 논개에 대한 재미있는 스토리를 소개한다.

“논개가 왜 논개란 이름을 지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논개를 잘 아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논개는 개년, 개월, 개일, 개시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통 개이고, 낳은 것이 개다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인 논개라고 작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논개의 고향은 경상도와 인접한 전북 장수입니다. 원래 기생이 아니고 장수 현감인 최경회 장군의 첩이었습니다. 진주는 호남의 관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진주가 무너지면 호남이 뚫린다는 ‘무진주 무호남(無晋州 無湖南)’이 당시엔 지배적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호남 장수와 의병들이 그래서 진주에 많이 집결했습니다. 최경회 장군도 2차 진주성 전투에 참가해 왜군에게 목숨을 잃었죠. 이에 논개가 낭군을 복수하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해서 왜군의 장수를 깍지 낀 손으로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했다고 합니다. 가미가제와 알 카에다의 원조가 바로 논개입니다. (모두들 박장대소한다.)

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진주 촉석루 위로 올라가고 있다.

힐링트레킹 참가자들이 진주 촉석루 위로 올라가고 있다.

진주 남강은 서출동류의 명당수입니다. 서출동류는 똥물도 약이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서쪽에서 발원한 물은 동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태양을 보고 흐릅니다. 자연히 산소를 많이 함유하기 마련이죠. 서출동류 남강이 진주를 휘감고 흐르다 바다로 가기 전에 낙동강으로 합류합니다. 강과 평야가 넓어 곡식도 풍부합니다. 전국 각지의 시인묵객들이 진주로 놀러와 촉석루에서 글을 남기고 풍류를 즐겼습니다. 촉석루 안에 그 글들이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촉석루에서 남쪽으로 아늑한 산이 보이죠. 저게 앞산입니다. 남쪽에 있다고 남산이고, 대구에서는 앞에 있다고 앞산이죠. 풍수상으로는 안산(案山)입니다. 딱 놀기 좋게 풍수적으로 알맞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역시 진주는 산수가 좋은 동네입니다.”

비로소 짧지만 의미 있는 3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서울로 향했다. 전날과 달리 진주에서의 마지막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로 시계(視界)도 좋았다. 참가자들은 “오늘 날씨가 어제 같았으면…”하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더 좋은 장소와 트레킹을 다음으로 기약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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