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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대법원장과 같이 야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 지났다니…” - 마운틴
“대법원장과 같이 야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 지났다니…”

양승태 대법원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겸 전경련 회장,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대성 경성대 재단이사장, 이명규 전 부산경찰청장(대학산악연맹 회장 역임) 등등….

이들은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산의 명문 고교인 경남고 산악부 출신이다. 경남고 시절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산악부에 소속했다는 유대감 하나로 지금까지 우의를 다지며 같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1964년 7월 경남고 산악반 월례산행에서 천성산 내원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 산악반 소속이었던 양승태 대법원장(중간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옆 세 번째가 허창수 GS그룹 회장 겸 전경련 회장이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양 대법원장과 동기인 허중영 전 방송대 대학원장(뒷줄 왼쪽 세 번째)도 자리를 함께 했다. 51년 전 추억을 되살리는 역사의 한 편을 보는 사진이다. 당시 내원사 모습도 지금과 사뭇 다르면서 정겹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1964년 7월 경남고 산악반 월례산행에서 천성산 내원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 산악반 소속이었던 양승태 대법원장(중간 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옆 세 번째가 허창수 GS그룹 회장 겸 전경련 회장이다.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양 대법원장과 동기인 허중영 전 방송대 대학원장(뒷줄 왼쪽 세 번째)도 자리를 함께 했다. 51년 전 추억을 되살리는 역사의 한 편을 보는 사진이다. 당시 내원사 모습도 지금과 사뭇 다르면서 정겹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 경남고 산악부 출신, 즉 산악부OB들의 모임인 구덕산우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4월18~19일까지 1박2일 동안 조촐하지만 의미 있고 뜻 깊은 행사를 치렀다. 그것도 경남고 교정이 있는 구덕산에서 전국에서 무려 47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구덕산우회가 벌써 창립 50년의 세월을 보냈다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며 세월의 무상함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다들 마음은 수십 년 전 고교시절로 돌아갔지만 몸은 이미 중년과 노년으로 접어든 데 대한 소회로 가득했다. 회고사에서 이명규 전 대학산악연맹 회장은 50년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감회를 피력했다.

1974년 지리산 장기등산 갔을 때 연곡사지 3층석탑에서 야영하는 장면이다.

1974년 지리산 장기등산 갔을 때 연곡사지 3층석탑에서 야영하는 장면이다.

“경남고 산악반은 1961년 16, 17회를 주축으로 창립됐고, 구덕산우회는 이들이 졸업한 뒤 1965년 19회를 주축으로 창립됐습니다. 구덕은 경남고 뒷산 이름을 따서 경남고산악반이 그 뿌리임을 나타냈고, 산우회는 산이 중심인 산악회가 아니고 사람이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구덕산우회라 명명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이름에 걸맞게 구덕정신을 계승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산심을 더 깊게 하고, 더 깊은 정을 맺어온 것은 우리가 우리의 길을 정말 잘 걸어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이는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50년 간 그 당시의 구덕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궤적이 모여 이루어진 실로 장엄한 역사의 파노라마입니다. 구덕의 사람들은 이렇게 50성상을 거치며 가장 근본적인 학창 시절의 인연을 최고로 중시하면서도, 폐쇄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정신과 전통에 동조하여 뜻을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동문이든 비동문이든 여성이든 모두 받아들이고, 산에서 배운 대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열린 마음과 따뜻한 마음을 실천해 나가는 산사람들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1973년 신입생 환영등반을 천성산으로 갔을 때 기념사진을 찍었다. 옷차림과 배낭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1973년 신입생 환영등반을 천성산으로 갔을 때 기념사진을 찍었다. 옷차림과 배낭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명규 동문의 회고사를 들으며 참석자들은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얘기꽃을 피웠다. 1961년 산악반을 창립할 때를 떠올리거나, 매월 떠나는 월례산행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눈 덮인 지리산 종주할 때의 아슬아슬했던 상황들, 하계 한라산 등반을 떠났을 때의 추억, 부산학생등산대회에서 우승할 때의 기쁨, 인수봉․선인봉 등 서울 근교의 산에서 암벽등반훈련 할 때의 단결력, 해외원정과 백두대간 종주 때의 상황을 회상하며 밤은 더욱 깊어갔다. 구덕산우회의 영원한 산악대장 오기현씨는 “산에 갈 때마다 정상주가 있었고, 특히 백두대간 종주할 때는 종주(縱走)가 아니라 종주(縱酒)를 했다”며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구덕산우회가 경남고 교정이 있는 구덕산에서 1박2일을 보내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왼쪽 큰 화환이 양승태 대법원장이 보낸 것이다.

구덕산우회가 경남고 교정이 있는 구덕산에서 1박2일을 보내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왼쪽 큰 화환이 양승태 대법원장이 보낸 것이다.

사실 구덕산우회에서 오기현 대장을 빼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산우회의 정중앙에 서서 때로는 가교역할을, 때로는 리더로서, 때로는 후미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덕산우회 회원들 모두 “오 대장 없이는 구덕산우회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다. 그는 더욱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동기다. 1963년 입학 때부터 산악반으로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구덕산우회의 발자취는 시대별로 구분이 명확하다. 60년대는 산악회 태동과 정착기로서 재학생들의 월례등반, 방학기간 장기훈련등반, 등반대회 참가, 임해 하계트레이닝 등이 주활동이었다. 70년대는 기술등반시대로 서울팀들은 인수․도봉․오봉․우이암 등에서, 부산은 무명암․부채바위․백운산 슬라브 등을 올랐고, 합동으로 울산암․공룡능선․용아장성․천화대리지 등을 탔다. 또한 지리산․덕유산․설악산 등지에서 적설기 등반 및 빙벽등반에 주력한 시기였다. 80년대는 휴지기로 대다수 회원들이 월례등반, 춘추장기등반 등 기본산행에 충실했다. 90년대는 중흥기로 2년간에 걸친 경부합동 전 회원 참석 백두대간 완주, 한강기맥 완주, 해외 원정으로 일본 북알프스, 키나발루 등반 등 활발한 산행활동을 재개했다.

구덕산우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참석한 동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구덕산우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참석한 동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안정기로 매월 월례산행, 춘추계 경부합동암벽등반, 하계트레이닝, 동계등반 및 빙벽훈련 등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했다. 또한 해외 원정에 나서 히말라야 아일랜드피크(6,189m) 등정,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히말라야 4대 트레킹(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랑탕, 마나슬루) 완주, 알프스 몽블랑 등정 등 활발한 등반을 실시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경부 합동으로 2월에 이미 50주년 경부가족합동 한라산 동계등반을 마쳤고, 6월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반이 계획돼 있다. 8월엔 50주년 기념 경부가족합동 해외산행으로 일본 야쿠시마를 등산할 계획이다.

부산 구덕산에서 시작된 구덕산우회의 50년 발자취는 금정산, 경남 일원 천성산, 영남알프스 산군, 가야산, 덕유산, 지리산, 북한산, 도봉산, 천마산, 용문산 등을 거쳐 한라산, 설악산까지 이어졌다. 이어 백두대간 종주로 연결됐고, 전국의 산맥과 암장, 빙폭까지 구덕산우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가 됐다. 해외에서 일본 북알프스, 유럽 알프스, 히말라야, 아프리카까지 알피니즘의 맥을 찾아 세계 곳곳에 구덕인의 영광스런 자취를 남겼다.

경남고 산악반의 시조가 된 17회 기수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경남고 산악반의 시조가 된 17회 기수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서울과 부산으로 나눠 매월 한 차례 정기등산을 실시하는 동시에 1년에 두 번 적정한 지점에서 만나 경부합동산행을 실시한다. 이날만 되면 산이 몸살을 앓는 날이기도 하다. 서울과 부산에서 수십 대의 버스가 산 밑에 집결, 수백 명의 동문들이 동시에 산에 오르기 때문이다. 단합과 우의를 과시하는 날이다.

이들은 이날 구덕산우회 창립 50년을 맞아 새로운 각오 세 가지를 다지기도 했다. 우선 첫째로, 구덕산우회의 역사를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50년사를 발간하기로 했다. 둘째, 휴면회원들과 새로운 회원들이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셋째, 경남고에 다시 산악반을 만들어 자연과 더불어 공부하는 명실상부한 인간교육의 장으로서 활용할 계획이다. 50년을 맞은 구덕산우회는 이날 미래 비전을 밝히는 장이기도 했다.

1974년 부산 학생등산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한 기념으로 우승기를 앞에 놓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 시절의 장비를 엿볼 수 있는 사진이다.

1974년 부산 학생등산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한 기념으로 우승기를 앞에 놓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 시절의 장비를 엿볼 수 있는 사진이다.

이날 공식 행사는 1, 2부로 나눠 진행했다. 1부에서는 부산 총무인 김영출(28회) 회원의 개회사에 이어 서울회장 이영재(23회) 회원과 부산회장 안형수(24회) 회원의 인사에 이어 창립회원인 이창흠(19회) 회원의 대표인사, 내외빈 축사로 이어졌다. 회원들은 성금을 모아 모교발전기금을 전달했고, 50년 산행보고순으로 진행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비록 참석은 못했으나 대형 화환을 보내 자리를 더욱 빛냈다. 50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칭다오에서 한 걸음에 달려온 신용도(27회) 회원으로 인해 기념식은 더욱 열기를 더했다.

2부에서는 미리 준비한 음식과 술을 들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선후배 간의 회포의 정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더욱 피웠다. 또 자주 보는 얼굴끼리는 더욱 진한 자일의 정을 나눴다. 더욱이 현 경남고 교장인 서강태(30회) 동문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 동문들의 열렬한 성원에 답했다.

이날 참석한 모든 회원들은 하룻밤을 꼬박 잠도 자지 않고 같이 새며 40~50년 전 동고동락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못 다한 얘기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 밤 만큼은 그 시절의 감정 그대로, 그 시절 몸 상태로, 그 시절의 정신으로 살아 있는 듯했다. 가는 세월이 아쉬웠고, 사람이 못내 그리운 1박2일 간의 시간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로 되돌아간 추억의 시간이었다.

My name is Garden Park. First name Garden m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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