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유성룡 祖父(조부) 柳公綽(유공작) 묘

소재지 :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 산10

20190323_123635[서애 유성룡의 조부 유공작 묘 전경]

柳公綽(유공작)은 본관 豊山(풍산) 자 裕裁(유재)
이조판서에 증직된 子溫(자온)의 아들이며, 서애 유성룡의 조부이다.
李亨禮(1448-1507)의 딸과 혼인하였다.

20190323_124331[아랫쪽에서 담은 유공작 묘 전경]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蔭職(음직)으로 예빈시 주부, 사헌부감찰 등의
직을 거쳐 간성군수로 부임하여 전임 군수들이 어민들을 수탈해 피해가
극심하였는데, 류공작은 애민정신으로 어려움을 하나하나 해결해 칭송을 받았다 한다.

20190323_123939[서애 유성룡의 조부 유공작 묘]

공은 사람됨이 근신하고 순박하여 간략하고 부지런해서 어머니를
섬겨 사사로운 뜻을 두지않고 여러 아우들과 함께 의복을 같이 하였다.

20190323_123750[墓碑(묘비)]

아들 중영에게 가르치기를 ‘임금의 은혜를 입어 이르렀거늘 다시
두터운 이를 경영하는 일은 내가 능히 하지 못하겠고 벼슬에 있으면서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네가 하지 말것이니라’하였다.

20190323_124301[墓碑(묘비) 뒤면]

서애선생 祖母(조모)가 젊은 30대의 나이세 세상을 뜨자 친정 아버지 묘자리였던
이곳에 장사를 지낸 후, 뒤에 柳公綽(유공작)이 뭍혀 오늘의 풍산류씨 묘자리가 되었다.

20190323_123648[구 묘비와 묘전비]

묘역에는 망주석, 문인석, 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손자인 겸암 류운동이 퇴계에게 묘갈명을 청했다.
옛 묘전비는 퇴락해 다시 세운 묘비가 묘소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20190323_124158[묘전비]

퇴계는 류공작의 묘갈명에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들이 모두 공과 같이 성실하다면
국왕의 은택이 막혀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폐단이 없을 것이니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고 썼다 한다.

20190323_124208[묘전비 뒤면]

류공작의 아들 중영은 승지를 거쳐 예조참의를 역임,
맏손자 운룡은 인동현괌과 원주목사 손자 성룡은 영의정에
이르렀으니 이 묘터가 명당이라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20190323_123722[서애 유성룡의 조부 유공작 묘]

묘자리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서애선생의 조모는 어느 풍수의 전하는 말이 친정의 산소자리가
정승이 나올 명당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때마침 친정 아버지(李亨禮)의
죽음을 당해 그 묏자리에 가서 밤새도록 물을 길러 부었다 한다.

다음날 묏자리를 쓰려고 한 곳에 물이 흥건하여 흉하다 해서 그 옆자리로
묏자리를 쓰니 이곳이 연안이씨의 문중 묘가 되고. 그뒤 친정 오라비한테 부탁하여
그 물이 나오는 산소를 얻어 자신들의 山所(산소)자리를 마련하였다.

서애선생 祖母(조모)가 젊은 30대의 나이세 세상을 뜨자 그자리에 묻고,
뒤에 柳公綽(유공작)이 뭍혀 오늘의 풍산류씨 묘자리가 되었다는 얘기가 구전으로 전해온다.

20190323_123730[좌측 文人石(문인석)]

그후 ‘딸년은 도둑년’ 이라는 전설이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전해지게 되었다 한다.

20190323_123737[우측 文人石(문인석)]

이 내용은 대구 MBC2006년 11월 18일 경상도愛발견이라는 프로에도 방송된 이야기라 합니다.

20190323_123852[서애 유성룡의 조부 유공작 묘]

북쪽에 보이는 산이 五指山(오지산) 또는 오지봉이라 부르며,
오지산이란 산 모양이 마치 다섯 손가락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다섯 손가락마다 명당자리가 있어 五指穴(오지혈)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은 터는 둘째 손가락에 속하는 검지라 한다.
이곳이 바로 그 검지 자리의 묘터라 하네요.

20190323_124239[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류공작의 아들 중영은 승지를 거쳐 예조참의를 역임,
맏손자 운룡은 인동현괌과 원주목사 손자 성룡은 영의정에
이르렀으니 이 묘터가 명당이라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20190323_124943[참꽃]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며 담은 참꽃(진달래)
올라갈때 보이지 않았던 꽃이 내려올 땐 보이네요.
아마도 묘를 찾지 못할까 조마심에 총총걸음하느라 못보았지만,
내려올 땐 답사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꽃도 눈에 보였나봅니다.^^

柳公綽(유공작) 묘소 답사 소개를 마칩니다.

 

2 Comments

  1. 비풍초

    2019년 3월 30일 at 11:06 오후

    내용상 도둑이 아니라 사기꾼 같네요.. 딸년은 사기꾼.. ㅎ

    • 초아

      2019년 4월 1일 at 5:42 오전

      하긴 사기를 친게 맞네요. ㅋ
      암튼 딸년은 시기꾼, 도둑년,
      그래도 이쁜 도둑이라는 말도 있지요.^^
      딸 바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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