端宗妃(단종비) 定順王后(정순왕후) 태생지

소재지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동편마을

20190329_115421[端宗妃(단종비)정순왕후 태생지 와 송계성 遺墟碑閣(유허비각) 전경]

전라북도 정읍지역 답사하다가 우연히 찾아보게 된
端宗妃(단종비) 定順王后(정순왕후)께서 태어나신 태생지에 들리게 되었다

20190329_115439[端宗妃(단종비) 정순왕후 태생지 와 송계성 遺墟碑閣(유허비각)]

定順王后(정순왕후, 1440~1521)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正妃(정비).
본관 礪山(여산). 부사 宋繼性(송계성)의 증손녀이고,
知中樞院事(지중추원사) 復元(복원)의 손녀이며, 판돈녕부사 玹壽(현수)의 딸이다.
시호는 貞純(정순).

정순왕후는 판돈녕부사 송현수(여산송씨)의 따님으로 1440년
이 곳에서 태어나셔서 단종과 가례를 올리고 의덕왕대비에 봉해졌으나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夫人(부인)으로 강봉되었고 단종사후(1457)
지금의 종로구 숭인동 우체국 뒷편인 정업원(터만 남아있슴)에서 머물다
1521년 82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치게 됩니다.

20190329_115456-1-vert[안내판 글 내용]

20190329_115522[遺墟碑閣(유허비각) 현판]

20190329_115510[宋繼性遺墟碑閣(송계성 유허비각) 전경]

부사 송계생은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증조할아버지입니다.
송계생 유허비각 앞에는 ‘단종비 정순왕후 태생지’ 안내판이 새워저 있습니다.

20190329_115540[宋繼性遺墟碑閣(송계성 유허비각)]

정순왕후의 증조부 宋繼性(송계성)에 대하여 알아보았지만,
제 능력 밖인지.. 간단한 기록조차 찾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선정을 베풀어서 유허비를 세웠다는 것만….
유허비를 세울 정도라면 뭔가 자료가 남아 있을번도 한데…찾지 못하였습니다.

20190329_115555[定純王后礪山宋氏胎生之碑(정순왕후 여산송씨 태생지비) 앞면]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孝友(효우)가 있어 가히
종묘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여 단종 1년(1453)
간택되어 이듬해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함에 따라 懿德王大妃(의덕왕대비)에 봉하여졌으나,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으로 세조 3년(1457)
단종이 魯山君(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자 君夫人(군부인)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

한때 신숙주가 그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淨業院(정업원)으로 보냈다.

신숙주가 단종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 한것은
비록 변심은 하였으나 단종비를 노비로 대려와 자신이
보호하여 주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하긴 영광은 누렸을지는 몰라도 평생의 한으로 남았을지도…

이후 남편 노산군의 명복을 빌다가 사망하였으며, 그녀의 능의
소나무는 동쪽 방향으로 굽는다는 전설이 있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90329_115620[定純王后礪山宋氏胎生之碑(정순왕후 여산송씨 태생지비) 뒤면]

숙종 24년(1698) 노산군이 단종으로 追復(추복)되자
다시 정순왕후로 추복, 신위가 창경궁에 옮겨졌다.

시호는 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이고,
능호는 思陵(사릉)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있다.

정순왕후 송씨가 태어난 곳임을 표기한 비석으로 숙종 24년(1698)
증조부 송계성 유허비 옆에 세웠던 것을 1988년 새롭게 재정비해 세운 비석이다.

비운의 왕비인 여산송씨 정순왕후는 단종과 사별하고도
서울 동대문밖에서 82세까지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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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_115639[宋繼性(송계성) 遺墟碑文(유허비문)]

贈資憲大夫 兵曹判書 行通政大夫 / 延安府使 礪山宋公繼性 遺墟碑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행통정대부 / 연안부사 여산송공계성 유허비)라 새겨져 있다.

비문은 宋奎憲(송규헌)이 찬하고 尹用求(윤용구)가 썼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4월 3일 at 9:05 오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권력이 무엇이라고 조카를 죽인 세조가
    미워집니다.

    한 많은 일생을 보낸 정순왕후.그리고
    단종임금 죽어서라도 두분은 만나셨을것
    같아요.

    • 초아

      2019년 4월 3일 at 8:54 오후

      참으로 아픈 역사입니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
      어린 조카도 눈에 보이지 않았나봅니다.
      아마도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꼭 만나셨기를 바랍니다.
      금수저로 태어난 단종, 단종비..
      오히려 흙수저보다 못한 삶을 사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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