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밍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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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가운 오후다. 뒷마당 잔디에 물을 주고 있다, 수도꼭지에서 연결된 호스
끝에 조리가 붙어 있어서 들고 서 있으면 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잔디밭이 넓지 않아 스프링클러를 틀지 않고 직접 주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목마른 허밍버드가 조리에서 쏟아지는 분수에 기다란 주둥이를
대고 물을 마신다.
엄지손가락만 한 몸통에 두 날개는 어찌나 빨리 흔들어 대는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마치 헬리콥터가 허공을 날다 말고 정지해 있는 것 같다.
물을 다 마셨는지 날아가 버렸다

나는 물을 골고루 충분히 주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날아갔던 허밍버드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내가 움직이지 않고 들고 서 있는 분수에 정지해 있는 헬리콥터처럼
한 자리에 머물면서 발을 갖다 대고 날고 있다.
한참 동안 발도 씻고 날개도 씻고 아예 내 눈앞에서 육갑을 떨면서 사라질 줄 모른다.
불과 한 발짝 거리에서 마주 보며 웃고 있다.
너는 나를 믿고 나는 너를 믿고, 서로 해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평화를 지켜주고
아름다움을 낳게 한다.
내가 만들어놓은 분수에서 새는 더운 오후 땀을 씻고 있다.
나는 허밍버드가 날아갈까 봐 조바심이 일었다.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머물게 할 수는 없을까?
나도 모르게 허밍버드의 비위를 맞춰주느라고 호스를 고정 시키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다.
마음껏 놀다 가라는 마음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몸집에 비해서 주둥이가 긴 허밍버드는 녹색과 푸른색이 감도는 작은 몸짓으로
따사한 오후의 햇살과 시원한 인공 소나기에 예기치 못한 호사를 즐기고 있다.
허밍버드가 귀여운 까닭은 앙증맞고, 깜찍하고, 잽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잽싸기로는 1초에 날갯짓을 50번이나 한다니까.
헬리콥터처럼 공중에 몸을 고정시켜놓고 꽃 속에 단맛을 빨아먹으려니
주둥이가 길게 진화했을 것이다.
허밍버드는 작은 몸집에 비해서 수명이 길다. 그 이유는 신진대사가 빠르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 자라나는 시기에 많이 희생당한다.
그 시기만 넘기면 평균 5-6년은 거뜬히 산다. 10년을 넘겨 사는 예도 흔하다.
발목에 밴드를 차고 11년 후에 관찰된 허밍버드도 있다고 한다.

모든 새가 그러하듯이 허밍버드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린 허밍버드가 아쉽다.
조바심이 일어났던 까닭은 행복이 달아날까봐 그랬으리라.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쉬운 까닭은 잠시나마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리니
순간이나마 행복했던 까닭은 네가 날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소중한가.
행복은 단순해서 믿는 순간만큼만 행복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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