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는 비행기 타러 가던 날

1st birthday 291

유교 국가인 한국에서는 효도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처럼 효를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다.
효는 본능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같이 산다고 말한다.
모시고 사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은 매우 다르다.
모시고 사는 것은 생활의 중심이 모시는 대상에 있고, 같이 사는 것은 생활의 중심이
개개인에게 있다.

한국처럼 효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효를 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기 마련이다.
효도 관광도 그런 의미에서 생겨났다.
며칠 전에 한국 시골에서 사는 농사꾼 친구가 캐나다며 미국 동부 뉴욕과
나이아가라를 관광하는 중이라고 했다.
소통이라고 해야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아 알아낸 사실이다.
지금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친구라고 해서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경기도 오산 땅값이 올라서 어느 친구보다도 부자가 됐다.

농사꾼 친구가 친구 중에 제일 부자라는 말을 들었던지라 아마 관광을 다니는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문자로 물어봤더니 자식들이 어머니 칠순이라고 효도관광을 보내줘서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자식 길러 놨더니 늘그막에 효도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자식들은 부모관광도 시켜 주는데 우리 것들은 영 못돼먹었다.
공항에 드나드는 거야 아내가 실어다 주고 태워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리듀리(배심원)에 걸려서 운전사 노릇을 못하게 생겼다.
할 수 없이 이웃에 사는 큰딸에게 부탁했다.
딸은 해야 할 일을 열거하면서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작은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9시부터 학부모 인터뷰 스케줄이 잡혀서 꼼짝
못한단다.
이런 못된 것들이 있나?
자기들이 공항에 드나들 때 내가 다 실어다 주고 실어오고를 얼마나 많이 해줬는데
어쩌다 한번 부탁했더니 일언반구에 거절해 버려? 불효막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그만둬라 내가 택시 타고 가지. 말을 해 놓고도 한동안 괘씸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자식 길러 놔 봐야 다 소용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옛날, 장인어른이 지금 내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한번은 한국에 다녀오시면서
서울에서 원주를 택시로 왕복하셨다고 했다. 말씀을 듣고 돈을 길에다가 뿌리면서
다니시다니 참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유교 사상에 깊숙이 졌어 사셨던 분으로서
어느 자식 하나 모셔다 드리겠다고 나서지 않으니 택시라도 타셔야 했을 것이다.

두어 시간 흐른 다음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자식이 무엇인가? 자식에게서 덕을 보겠다는 것은 유교적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은 자라는 동안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한 것으로 충분한 보상은 다 받았다.
아무리 다 자라 어른이 된 자식이라도 자식은 늘 자식일 뿐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여전히 선물해 주고 있다.
귀여운 손주를 내게 안겨주고, 때가 되면 찾아와서 즐거움을 선물한다.
자식이 없다면 이런 보상을 어디서 받겠는가?

내가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처럼 자식은 또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있다.
물이 거꾸로 흐르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는 그저 한 구루의 느티나무가 되어 햇볕 따가운 여름날 그늘을 제공해 주면 그만이다.
자식이며 손주들이 그늘에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은 다 받았다 하겠다.
잠시나마 생각이 미처 이르지 못했던 것은 효도 관광 다닌다는 친구가 부러워서
회까닥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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