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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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서 산행을 했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여나믄 명이 쭉 서서 찍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서 밥먹다말고 셀폰으로 찍어 날려 보낸다.
이게 다 동창이라는데 사진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아도 낯익은 얼굴은 없다.
하나같이 늙은 노인들이 얼굴엔 웬 살이 위대한 위원장 동무처럼 디륵디륵쪘다.
모자를 쓰고 있는데 옆으로 양털 같은 흰머리가 삐져나왔다.
사진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얼굴들인데 밑에 적힌 이름은 분명히 내 동창이 맞다.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친구들임이 분명하다.
열대림의 변색조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남자 얼굴도 변한다.
기억 속의 내 친구들은 깔끔하고 매끔한 소년이다.
아직도 나는 소년 친구들과 꿈꾸며 이야기하고 노는데, 변해버린 노인들은 누구지?
타임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내가 나를 볼 수 없어서 그렇지 나도 하염없이 변했을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내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다.
거울이라는 매게체를 통해서 자신을 본다는 것은 허상일 뿐이다.
내가 나의 허상을 보면서 후한 점수를 푸짐하게 주는 것이 어찌 나이겠는가?
나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면서 거울에 비친 나를 나라고 믿고 싶지 않다.

남들이 나를 보는 눈이 바로 나일 것이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미운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비치든 그게 바로 나다.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글잘 못 올렸다고 호되게 야단맞았다. 그게 바로 나다.
“셀폰으로 바꿔~ 카톡 좀 하게“ 한 마디 했다가
“넌 너구 난 나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너나 실컷 해라.”
국경 넘어 사는 친구한테서 싫은 소리나 들었다.
야단맞고 싫은 소리 들으며 사는 게 나다.
야단치고 야단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친하다는 이야기다.

아침 TV뉴스를 보다가 Lost & Found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82세 할머니는 고등학교 때 잃어버린 핸드백에서 65년 전 학우들과 재회했다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잃어버린 핸드백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사건은 지난 1월 인디애나의 제퍼슨 빌 고등학교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철거 과정에 오래된 핸드백이 발견된 것이다. 핸드백을 열어보니
말따 이나 잉햄(Martha Ina Ingham)의 신분증이 나왔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로 그녀를 추적하여 핸드백 주인을 찾기로 했다.
페이스 북에 다음과 같이 올렸다.
<고등학교 건물 철거 도중에 1954년에 잃어버린 말따 이나 잉햄의 핸드백을 발견했으니
그녀를 아는 사람은 연락바랍니다>
수일 후 1천마일 떨어진 플로리다에서 말따를 아는 친척에게서 연락이 왔다.
말따 잉햄은 최근에 타임캡슐 같은 핸드백과 재회했다.
“그것은 많은 기억과 오랫동안 들어 본 적 없는 동창들을 되돌려주었습니다.”라고
말따는 울먹이며 말했다.
핸드백 속에는 트랙 미팅 리본, 소녀 시절에 발랐던 립스틱, 유행하던 과일 껌 포장지가
나왔다.
그것보다 더 귀중한 발견은 말따에게 고등학교 무도회에 초청하겠는 사랑으로 흠뻑 젖은
십대의 편지였다.
“말따에게, 폴이 너와 함께 무도회에 가자고 했다는 말을 들었어. 만약 그가 안 그랬다면,
내가 너를 데려가고 싶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말따는 기억한다. “아아, 그때 나는 거절했지.”
“정말 흥미롭네요.” 그녀가 그 발견에 대해 되 뇌였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내 인생의 빛나던 시절에 대하여…”

지구 반대편 어느 산골짜기에서 카톡에 실어 보낸 사진들은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것처럼
아련하다.
60년 전 깔끔하고 낭랑하던 소년들은 어디로 가고……
힘 빠져 축 늘어진 늙은이들로 변했느냐.
죽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데 하기야 잘들 살았으니 변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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