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대통령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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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저녁에 채소 사러 갔다 오다가 문을 열려는데 안 열린다.
배터리가 다 되었으니 갈아달라며 시치미를 뚝 따고 열어줄 생각을 안 한다.
중국제 배터리를 넣었더니 미리 알려주는 것도 빼먹고 그냥 안 열린다.
할 수 없이 관리 사무소에 가서 열어달라고 했다.
나보다도 젊었지만, 여하튼 경비 할아버지가 끄덕끄덕 따라오면서 들려준다.
경비원을 반으로 줄였단다. 하루 8시간씩 3교대근무란다.
아닌 게 아니라 눈에 뻔 찔 띄던 경비원이 뜸하다 했더니 모두 해고당한 모양이다.
듣고 보니 관리소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못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조수는 채용해서 지가 가야 할 건 조수를 시키면서 경비원을 짤라?
당장 달려가 싫은 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원 할아버지에게 왜 경비원을 줄였느냐고 물었더니
최저인금을 올리는 바람에 인원을 감축했단다. 청소하는 아줌마도 감원했단다.
이런 고얀 놈이 있느냐고 경비원 할아버지 편을 들어줬더니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란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데도 경비원 다 감원했단다.
하면서 기초연금도 올려주고 도로 뺏어가는 정부라면서 못돼먹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란다.
관리소장 야단쳐 주려다가 듣고 보니 문 대통령을 야단쳐야 할 판이니 이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에게 기대가 컸었는데 어찌 된 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망은 새끼를 쳐 가면서 점점 더 불어나간다.
도를 넘어 법치 잣대 따로, 도덕 윤리 잣대 따로 휘두르는 사람을 앞세우는 바람에
실망은 절정에 이르렀다.
반드시 조국이어야 한다는 고집이 무엇을 어떻게 왜 하려는 지 속내가 다 보인다.
결국은 보복 정치를 하겠다는 게 아니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끌고 간데 대한 보복을 하겠다는 것처럼 보이니 이것도 문제다.
나는 처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했고 그를 찍었다.
그러나 마지막 그의 마무리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어른이 생명의 존엄성이 마치 자기 소유인 것처럼 행사하다니.
어린 초등학생들이 보고 뭘 배우겠는가?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했을 때 그분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도움은 드렸지만
그분의 정책노선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이 정권은 잡은 다음에 사람들이 우려했던 보복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IMF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역시 위대한 정치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토록 박해를 받았고 궁지로 몰리면서 죽음으로 몰린 적도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철학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큰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 평화상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어제오늘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졸개들의 정치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많이 동원했냐? 내가 많이 동원했냐? 하는 짝으로 동네 애들 패싸움 같다.
이게 어디 정치가 할 짓이더냐? 이런 후진 정치가 지구 상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세상에 겨룰 게 없어서 민중 동원을 놓고 겨루다니.
여기서 통 큰 정치인이 있다면 “민중 동원은 이제 그만” 하고 나서야 한다.
집권당의 총수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이럴 때 나서서 국민을 안정시키고 생업에 매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옳겠건만……
오히려 자기 지지자들을 더 많이 동원하려는 식으로 여당 의원들의 입을 떠벌리게 한다면
이런 대통령을 어찌 어른이라고 모시겠는가?
골목대장만도 못한 것 같아 한심하다는 생각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올라서 해 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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