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길님의 자장면 이야기.
塞下曲(새하곡)”이라는중편소설이있다.이게아마소설가이문열선생을문단에入籍(입적)시키는계기가된,소위신춘문예인가뭔가하는그런소설인듯싶다.한30년전新東亞(신동아)가창간되고얼마뒤부록에엮인것을읽은기억이있다.당시나는제대를한지5-6년되었으나당시의군대가워낙强軍(강군)으로육성된탓에그때까지도軍紀(군기)가아직남아있는상태였는데,마침“塞下曲(새하곡)”을읽으며그생생한표현에아직도군대안에머무는듯한착각을시종일으키며단숨에읽어나갔던그런소설이다.

물론그소설덕분에이문열선생의주가가세상에이목을들어내는계기가되었지만,나역시그소설로이문열선생의왕팬(뭐그렇다고그양반의집앞에서꽥꽥거리는게아니고그양반이출간하는저서는무조건샀다.)이되는계기가되었다.

지금의기무부대전신인보안사령부예하의어느병사가겪는격변기의군대생활얘기인이출세작은당시의시대상을赤裸裸(적나라)이그려낸수작이었다.난그소설의한대목을아직도정확히기억하고있다.일본말을전혀할줄모르는나지만이대목이왜그렇게명확하게기억나는지모르겠다.“군따이와요오료데쓰(군대는요령이다.)”라는.

70년에입대를했었다.그이전선배님들에게외람되고죄스런표현이겠지만,군이많이개선되었다고는하지만,전후방을통틀어의문사가부지기수로있었던시절이다.산꼭대기OP로전출가던어느날산중턱의보병막사에서앰뷸런스가여러대서있고,침울한분위기의병사에게들은얘기는전차지뢰를베치카속에집어넣고몰사를기도했던한병사때문에20여명의사상자가났다는소리를듣고그후그곳을지날때면괜히뭔가잡아다니는것같아M1소총을거꾸로잡고뛰어서오르내리든기억이아직도있다.그런대형사건은조중동에도전우신문에도기사화할수없었던시절이었다.

또있다.정말배고픈시절이었다.壯丁(장정)을거쳐훈련연대로입소를하면강행되는훈련속에먹어도,먹어도배가고팠던그런시절말이다.실제배고픈나머지짬밥통을휘저어건더기를건져먹다기간병에게치도곤을맞는훈련병을가끔씩보았다.얼마나배가고팠으면그랬겠는가.입대하던날꼬깃꼬깃길게접어사리마다고무줄과함께지전몇장을끼워주던어머니의정성이빛나는그런시절,그지전을화장실에서놀래꺼내PX로달려가지금같으면아예쳐다보지도않을조악(?)한빵부스러기또는과자류를사서품안에감추고다시화장실로달려가서꾸역꾸역배를채우던그런시절말이다.

지금생각하면먹는거앞에서는전우가아니라적이상으로살벌(?)했던그런시절이내게도있었다.그렇게전우를내동댕이치고혼자서먹고살겠다고화장실을찾았던…정말지금생각해도부끄럽고양심의가책을받았던시절을억지로,아니내가할수있는혼신을다하여기억저밖으로밀어내는데성공했었고따라서아주새까맣게잊고있었다.

어제는좋아하는이웃한분의‘블로그’에오랜만에들렸다가그분의‘實吐記(실토기)’를읽으며나는그만한30년전의“塞下曲(새하곡)”과아주새까맣게잊고있었던차마기억하기조차부끄러운지난날의일들을떠올리며그분의실토기(?)아래댓글을실토하고말았다.

그이웃분은언제나잔잔한얘기들을실토하듯올리시는분이다.실제某골프전문잡지에수필을올리시는수필가이시기도하다.그분의방에가면많은읽을거리가있음을광고하고싶어이아침에중언부언해보았고,또한그분의글을스크랩도했지만,직접다시따와올려본다.

자장면과양고기

글쓴이:내마음의동심원(구름길)

아내에게서전화가왔다.

별일없으면구미에한번다녀갔으면좋겠다고.

새학기를맞은지달포가다되어가니동학년선생님들께

인사라도한번하면어떠냐는것이다.

해마다하는연례행사이다.

선생님들이아내에게아저씨는어떤사람이냐고더러묻는단다.

어떤위인이기에아내와아들을먼곳에두고

부산에서혼자유유자적하냐는궁금증일까.

자격지심에서인지그런생각이먼저들곤한다.

그래도깨끗한정장차림으로이발목욕까지한후

그선생님들께선을보이러구미로올라갈것이다.

제아내를잘부탁한다는인사와함께간식이라도대접해야지.

대구에서다니는분들이많아저녁식사는마다하신다고했다.

올해아내가맡은학년은1학년이다.

2002년생,갓몽우리진꽃봉오리같은아이들.

좀일찍결혼한친구들에게는그런손자들도있을듯싶다.

나에게도그런시절이있었지.

흠……..세월을좀되감기해볼까.

내1학년시절은참암울하게도시작되었다.

그해5월에5․16군사혁명이일어났다.

정치사회적으로도격변기였지만우리집안도그러했다.

망부께서전재산을사기를당하신것이다.

집과논밭,자그마한산까지.

민주정부가군인들에게정권을찬탈당하듯.

그시절시골의그재산이돈으로얼마나되겠는가.

사기꾼에게고스라니다날리고방한칸도없는난감한처지.

할머니친구분댁아래채에이사를한며칠후입학식을했다.

그래도외손자라고외할머니께서등에매는란도셀가방을사주셨다.

반에서한두명그런가방을가졌던시절이다.

얼핏보면부잣집아들같은차림이지만쌀이없어서

성당에서나눠준구제품밀가루로끓인수제비를먹고학교엘갔다.

그학교엘채한달도못다니고마산으로이사를했다.

아버지께서마산시청에임시직으로취직을하신것이다.

시청근처셋방에서위로누나둘과나그리고넷째인여동생을임신해서

만삭이신어머니…….그렇게다섯식구가살았다.

월영국민학교를다녔는데하루는학교를가니집으로돌아가라고했다.

지금생각하니그날이바로5월16일이었다.

나라에변고가있으니1학년여덟살짜리도하루휴교를했다.

터벅터벅걸어서집으로돌아오는길에방직공장에서철거덕철거덕

기계돌아가는소리가참듣기좋았다.

그무렵내가처음먹어본자장면의맛이지금도잊히지않는다.

시장통입구에두번째집인가화교가하는중국집이있었다.

내또래여자애가있었는데그애는화교학교에다녔다.

그애의이름도기억이나지않지만우리말도곧잘했는데

자기엄마와하는쏼라쏼라중국말이그렇게신기할수가없었다.

같이놀다가점심때가되니내게도자장면한그릇을주는게아닌가.

그고소한향기는회가동한다는말그대로였다.

촌놈인나는눈치만보다가젓가락으로휘휘섞어서먹는걸따라했다.

아그맛이란……….그후일요일만되면그집앞을얼쩡거리던나.

나는지금도그걸못잊어가끔점심을자장면으로때운다.

5․16군사혁명은우리집이또한번이사를하는계기가되었다.

군사정부는임시직시청직원에대한정리해고를단행했던것이다.

그래서할수없이진주로다시이사를하지않을수없었다.

마산을떠나며자장면과그중국소녀와헤어지는게너무슬퍼서울었다.

내가진주로간다고말을하니중국집사람들도미국으로갈거라고했다.

그아이는지금미국어디서어떤모습으로살고있을까.

내가너무걸신들린듯먹으니자기몫을좀덜어주며생긋웃던그모습.

세월이거의반세기나흘렀으니이젠만나도서로알아보질못할것이다.

본성동의진주큰집에서1학년을마치고내가1학년입학을했던

시골의국민학교(초등학교)로2학년초에다시돌아왔다.

동네사립고등학교에아버지께서다시교편을잡게되셨던것이다.

작은트럭에조촐한세간을싣고이리저리옮겨다닌내유년의한때.

다시세월을조금만원위치시키자.

오랫동안잊히지않는것이두가지있다고했다.

진심으로해주는칭찬한마디.

그리고음식으로인해마음상한것과고마운것.

다른사람은몰라도내경우에는그두가지가지금도어제일같다.

그자장면이고마운것이라면그로부터14년후훈련소에서의양고기

한덩이는지금도잊히지않는서운했던기억의먹을거리이다.

1975년논산훈련소제29연대.

한여름의훈련소에무슨날인지모르지만양고기국이나왔다.

내기억으로단한번맛본훈련소에서의양고기였다.

줄을잘서야된다는게군대에서나온말이라지만진짜그랬다.

그런데난그날줄을잘못선것이다.

내국그릇엔양고기가채한숟가락도안되는초라한양이었다.

그런데나와친했던S의국그릇엔제법주먹반만한것이들었던것이다.

부러워서흘끔거리는날못본척그걸볼이미어지게먹던S.

반이라도아니그반의반이라도……….하며은근히기대했었는데.

PX에서내가S에게브라보콘을사줬던게몇개였던가.

숟가락잃어버리고울먹일때내가조달해준은공은또어쩌고.

면도칼빌려준것과담배나눠준것만도기하이냐말이다.

생긴건말쑥하게계집애같이잘생긴S가그렇게미울수없었다.

훈련소에서헤어지며보병병과였던S와또만날일은없을줄알았다.

대구국군군의학교에서후반기위생병교육을받고동해안최북단부대에

배치되어간것이그해10월.

그당시만해도전방엔전깃불도들어오지않던시절이다.

그부대에서한해정도지나갓상병진급을할무렵S를다시만난것이다.

보병부대의상황병과그부대의무대에파견근무를간위생병으로.

양고기건을내색하지않았지만반가워죽겠다는S를끌어안았는데

S의어깨너머저멀리DMZ철책선안에산양이언덕을오르고있었다.

“어이저거산양아니가?”

“어디?아,맞아.폭풍지뢰를밟아다리가셋뿐인넘도한마리있는데….”

“야,훈련소양고기생각나나?”

“어?양고기……그럼생각나지.”

그러면서S는어색하게웃었다.

알고는있었구나……..너도……..그럼됐어.

나그때정말야속하고서운했거든.

그렇지만내가너라도똑같이했을지몰라……..배고픈청춘들이었으니까.

수백계단의고진동계곡수려한단풍을배경으로잘생긴얼굴에

만면에웃음을머금었던S는그날본것이마지막이었다.

두번째휴가를마치고귀대하니S가죽었다는소식이들려왔다.

M16소총총구를턱아래에받치고방아쇠를당겨버린것이다.

소문으로는상습적으로상관에게계간을당한모멸을못견딘것이라고.

잘난얼굴이때로는단명의단초가되기도하는것이다.

군형법에서는군인의계간행위를처벌하고있다.

(군형법제92조(추행)계간기타추행을한자는1년이하의징역에처한다.)

어두운그시절에는쉬쉬하며유야무야덮고넘어갔으리라.

연고있으면좀달라고해서야전구급낭에있던걸모두주었었는데

연고의용도를그제야알수있었다.

어딘지모르게그늘이진얼굴이라더니그런아픔이있었구나.

훈련소양고기건을마음에서다지우지도못했는데그렇게죽다니……….

자장면과양고기이야기를중앙동의내친구에이야기해줬더니

자기도그저께먹을거리때문에실수를했노라고했다.

양고기의S처럼나누지못한후회같은것.

주차장에있으면손님들이가끔씩먹을거리를준다고한다.

그날은커다란스티로폼박스에얼음을채운삼치두마리를얻었단다.

오후에관광버스기사가주고간것인데그게마음에걸린다는것이다.

“야간에만세우는OO제강버스가있는데……..그기사가여러가지로

마음씀씀이가고마운데도삼치한마릴안준거야……욕심많은내가.”

“음……그걸본모양이군,그사람이.근데너답지않네?”

“그렇제?지금은후회된다…….정말.”

전철까지들고가는데벌써기진맥진.

근1m급삼치두마리니무게만해도묵직한데다얼음까지채워졌으니

그런중노동이없었노라고쓴웃음을지었다.

유난히생선을좋아하다보니구이를해먹을까찌개를할까하는생각이

먼저들어다른사람배려는전혀하질못했다고.

“아직도냉장고에한마리가남아있는데저걸어쩌지?”

“자르고손질도하고얼렸어?”

“음.그럼.”

“지금도안늦지.내일반만갖다가그사람줘라.”

“그럴까?지금줘도될까?”

“안될리가있나.먹을거가지고삐지면오래가니……빨리풀어.”

주차장펜스따라심어진느티나무들이꽃가루를뿌리기시작했다.

그펜스를따라군데군데동백과장미가심어져있다.

“어이,저거웬장미냐?”

“꽃피면폼나겠지?구청에서화단을새로단장했어.흙도다르잖아.”

수선화등은다뽑히고이름모를여러종류의꽃들이자태를뽐낸다.

봄이오는부두길에여전히오가는차량은많은데부두에

층층이쌓였던컨테이너는눈에띄게줄었다.

경기가그만큼안좋다는증거이다.

불황이오래간다지만그래도계절이오가듯호시절이또올것이다.

연일외인들의매수세로후끈달아오르는주식시장이그전주곡일까.

그랬으면좋으련만…….베어마켓랠리치곤상당한상승폭이다.

슬슬클럽도좀닦을계절이다.골프장페어웨이엔잔디가좀올랐을까.

올해는딸아이에게돈을더보내야하니골프는많이줄여야한다.

골프도골프지만지금부터라도먹을건가능하면나누며살일이다.

욕심부리면그만큼서운한사람도있는법이니……….

나역시그런잘못을더러저질렀을것이다,기억을못할뿐이지.

늘듣는힘빼라는말은그욕심을줄이라는말이기도할것이다.

구미에올라가면오랜만에금오산산행이나한번해야겠다.

아지랑이아른거리듯중국소녀의추억도낙동강구비처럼가물거리리라.

S의어깨너머산등성이를오르던산양마냥깔딱고개를거쳐

금오산정상현월봉(懸月峰)에올라내마음도거기걸어두고와야겠다.

내마음의동심원이미국까지……저승까지퍼지라고.

자장면고마웠다고…….지금은마음편하냐고묻는내안부인사와함께.

*골프스카이에게재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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