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각본. 연출. 주연의 ‘순사와 독립군’

 

 

어떤 분께서 계림 극장얘기를 하시며 옛 추억을 더듬으셨지만, 본인 역시 그 계림 극장을 두세 번 갔었다. 무슨 연유였는지 모르지만 청소년시절 서울 시내의 모든 극장을 섭렵해 보는 것이 내 꿈(?)이었다. 따라서 당시 서울 시내에 있는 극장이라는 극장은 개봉관을 비롯하여 3류 동시상영관까지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특히 관람료가 충분치 않던 학창시절엔 학교에 바쳐야할 월사금을 삥땅 쳐서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있었다. 물론 DG게 얻어맞는 것으로 죄 값을 하곤 했지만….

 

그 후 영화 관람료 정도는 내가 벌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스스로 고학생을 자처하며 고등학교 2년 때 조선일보 안국동 지국에 당당히 장원(단독지원)으로 입사하여 배달민족의 후예답게 조간신문을 배달했는데 당시 내 나와바리가 인사동 일부와 길 건너 관수동 및 관철동이었다. 지금처럼 배달용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통금해제 싸이렌만 울리면 눈이오나 비가 오나 바람 불거나 지국으로 달려가 광고용 간지(찌라시)를 일일이 수 작업한 신문200여 부를 새끼 끈에 매면 솔직히 그 무게는 자라나는 청소년의 어깨를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그런 신문을 다 돌리고 학교엘 가면 이번엔 거의 매일 선생님께 DG게 맞곤 했다. 맨날 지각한다고…(우리 쌤 불쌍한 고학생의 고달픔도 몰라주고…흑흑흑..) 그 기까진 좋은데 이번엔 월말만 되면 직접 신문구독료 수금을 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문 실컷 보고 구독료 안 주는 놈들 많았다. 어떤 놈은 한 달 내내 보다가 월말 쯤 조선일보 제호를 오려서 그 밑에‘사절’이라고 대문짝에 붙여 놓는 놈들도 있었다. 약 오르게….간신히 1년을 버텼으나 학년 말쯤 내년이면 대학도 가야하고 이 짓도 못할 짓이라고 지국장님 앞으로 의원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했지만, 그러나 그 소중한 1년이 나로 하여‘시련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라는 삶의 목적과 의지에 대한 개념을 세운 시기다. 따라서 이 자리를 빌어 새삼 조선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아이고! 이 얘기가 아닌데…ㅋㅋㅋ………

 

기왕 조선일보 얘기가 나왔으니 조선일보와 연관이 있는 극장 얘기를 해 보자. 광화문 네거리 현 동화 면세점 자리엔 국제극장이 있었는데 80년대 중반인가? 그즈음에 폐관을 했고, 그곳에서 100m내외에 정확하게는 코리아나 호텔자리 쯤에 두 개의 극장이 있었으니, 그 하나가 아카데미 극장이요 그 둘이 시네마 극장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극장은 마당을 하나로 사용한 한 마당 두 극장이었는데, 위에 언급한 국제극장이나 아카데미 극장은 개봉관이었고 시네마 극장은 3류 극장이라고 칭했던 동시상영관이었다. 두 극장이 폐관 된 것은 60년대 말인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코리아나 호텔 건축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만 유추해 본다.

 

그러나 아무튼 아카데미 극장은 그 장소에서 폐관 한 후, 한 때 김두환 선생의 아지트(나와바리)였던 우미관 극장(재개봉관)에 아카데미(재개봉관)라는 간판을 바꿔달고 수년 간 유지 되었으나 역시 얼마 뒤 그 이름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네마 극장은 3류 동시상영관이었는데 그곳은 딱 한 번 공짜로 관람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어떤 영화를 관람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날짜는 분명히 기억난다. 1966년 3월5일이다. 왜냐하면 66년도에 고2년이었고 3월5일이 조선일보 창간일 이었기 때문이다. 즉, 조선일보 창간 기념일을 기하여 나 같은 조선일보 배달 고학생들을 시네마 극장에 무료입장을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선일보가 좀 짜긴 짰던 모양이다. 어차피 한 마당 두 극장인데 쌈빡한 개봉관인 아카데미 상영작을 관람시킬 것이지 싸구려 동시상영을….ㅋㅋㅋㅋ…암튼 그래도 공짜로 씨네마 극장 관람을 했으니 후회는 없다.

 

근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왔는데…. 내가 왜 극장 얘기를 했던가? 뭣 때문에… 뭐였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 하! 그 참! 치맨가? (잠시 커피 한 잔 마시며 생각 좀 해 봐야겠다.)

 

커피 한 잔 하러 갔다가 아예 저녁(라면)까지 먹고 얘기를 이어 간다. 저녁(라면)을 급히 먹다가 사래가 들렸다. 캑캑거리며 눈물 콧물 짜내는 과정에서 위의 극장 얘기가 생각났다.

 

그래 이거다.

 

文대통령 “‘칼 찬 순사’ 일제 경찰 그대로 편입…그림자 벗는 원년돼야”

출처 : http://news.chosun.com//html/2019/02/15/2019021501212.html

 

 

1989년 동의대학교 학생들이 노동자대회 원천봉쇄에 항의하며 학교 부근의 파출소에 화염병을 투척하였고, 사복경찰 도서관에 감금하고 농성하였으며, 화재가 발생하여 경찰관 7명이 숨졌으며, 학생들은 민주화운동자로 인정받았다.

 

2009년 1월 20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들, 경찰, 용역 직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발생한 화재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세입자 2명, 전철연 회원 2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경찰관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국가를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다가 죽고 다친 병신 같은 경찰관은 왜놈 순사고, 그 순사를 죽인 학생이나 폭도들은 독립군이냐?

 

눈물 없인 못 보는 ‘검사와 여선생’은 익히 알고 있지만, 문재인 각본. 연출. 주연의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6본 입체 트랙‘순사와 독립군’를 기대 하시라! 개봉박두!!!

 

만약 아카데미 극장이 지금까지 유지 되고 있었다면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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