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들.
‘진수성찬도어두움속에서는먹을수없다.’
아무리맛있는음식이라해도그것을눈으로보면서먹을수있어야한다.
볼수없다면,보이지않는다면없는것이나마찬가지다.
그음식을볼수있게해주는게’빛’이다.
발광체에서나온빛은인간의시신경을자극하여물체를알아볼수있게해준다.
반대로칠흑같은어두움은아무리많은것들이존재한다해도그것들을볼수없기
때문에무존재화(無存在化)시킨다.
빛과어두음의대비는그렇게극명하다.
빛이사물을보게해주는기능이물리적인설명이라면보이지않는것을보여주는
‘빛’은종교적이다.
세상의빛에는이기능이없다.
오직종교적인빛만이’안’을비춰주는기능이있으며그빛을통해비로서보이지
않는세계를볼수있다.
한인간이종교를가진다는것은또하나의’빛’을가진다는의미이기도하다.

구약성경창세기에는정말의미심장한서두가기록돼있다.
1장3절에보면,
가장처음창조된것이’빛’이다.
빛이없다면삼라만상은볼수없게된다.
이빛은물리적인빛이며동시에종교적인빛이기도하다.
유대교에이어기독교에이르기까지’빛’은언제나야훼의상징이자선과정의와
진리의상징이다.
어두움과악의세계를이기는야훼의힘이기도하다.
신약성서마태4장에는,
세상을향해복음을선포하는예수에대해이사야9장의말씀으로그의미를설명한다.
‘흑암에행하던백성이큰빛을보고사망의그늘진땅에거하던자에게빛이비취도다.’
예수를이미예고된’빛’으로묘사하고있는것이다.
요한복음12장에서는더구체적으로이점을강조하고있다.
‘나는빛으로서이세상에왔다.
그러므로누구든지나를믿는사람은어두움속에살지않을것이다.’
이변화가종교적용어의’구원’이다.

위성사진을보면,
한반도의북쪽은암흑세계다.
그러나남쪽은불야성(不夜城)이다.
지름우리모두는풍부한전력공급으로어두움을모르고산다.
‘빛’은차고넘치고,얼마든지,모든곳,모든일에쓸수있다.
그런데왜성경은이렇게휘황찬란한빛가운데사는우리들을어두움과죽음의그늘진
땅에사는백성이라고표현하고있는가.
그대답은간단하다.
성경이말하는빛은세상의빛이아니기때문이다.
디오게네스가대낮에사람을찾는다고등불을들고다닌게그상징이다.
세상의모든빛은’겉’만보여줄수있다.
그어떤빛도인간의생각,마음을보여주지는못한다.
이땅위에는인간의’내면세계’를보여줄수있는빛은없다.
성경이말하는빛은’안’을보여주는,사람의근본을보여주는빛이다.
그래서예수를빛이라고부르는것이다.
예수를통해구원받는다는종교적인표현이바로그뜻이다.

‘종교의빛’이보여주는대표적인내면의세계가’사후의세상’이다.
내세(來世),천국,천당,또는열반,극락세계라고부르는곳이그곳이다.
인간의육신이땅에묻히는동시에인간은’영의몸’을입고다음세계로떠난다.
그래서종교의내용은그사실에대한신앙-믿음의세계다.
어두움속에앉은백성이큰빛을봤다는표현이바로그것이다.
예수를통한구원을그렇게설명하고있다.
때문에모든크리스챤은그빛과불가분의관계에있는백성들이다.
크리스챤이된다는것은’빛에속한다’는의미다.
그빛의존재와의미를깨달아알고믿는것이다.
그래서모든크리스챤들은이세상안에서빛을담당하는하나님의자녀가된다.
빛이세상에비추기위해서는그빛은매개하는존재가있어야하기때문이다.
교회의순기능이그것이며크리스챤의올바른신앙생활이바로그기능이다.
‘너희는세상의빛이다,너희는세상의소금이다.’는말씀도그뜻이다.

실천신앙을가장크게강조하는책이’에베소서’다.
‘여러분이전에는어두움의세계에살았지만지금은주님을믿고빛의세계에서살고
있읍니다.그러니빛의자녀답게살아야합니다.
빛은모든선과정의와진실을열매맺습니다.’5:7-8절.
‘빛의자녀’라는말은’너희는주안에서빛이다.’라는의미다.
모든크리스챤은예수의빛을받은사람들이다.
이세상안에서예수의빛을드러낼책무가주어진존재들이다.
이세상안에서’빛의기능’을실천해야하는주의빛들이다.
세상사람들이삼라만상의겉만보는동안,그껍데기만보는동안,
그것들을보게하는빛과는전혀다른,안을보게하는,의미와뜻을보게하는,
내일을보게하는빛을알게해줘야한다.
잠깐보이다가사라지는세상의것이아니라영원히존재하는보이지않는것,그러나
분명하게존재하는그것을보여줘야한다.
오직’행하는믿음’만이그것을보여줄수있다.
그리고그것은자기믿음에대한증거이기도하다.

에베소서의본문은,
빛의세가지열매를말하고있다.
그첫째가선(善).
선은착하고올바른것이며윤리적으로는도덕적생활의최고이상이다.
악(惡)에대한가장분명한반대개념이다.
성경의선은,agathosune.
마음씨나그행동이올바르고어질다는뜻이다.
올바르다는것은어긋나지않는다는뜻이며어질다는것은너그럽고인정이많은것이다.
두번째가의(義).
사람이지켜야하는바른도리가의다.
바른방법,바른길이그것이다.
성경의의는dikaiosune.
소극적으로는’율법’이지만,
적극적으로는하나님의공의-公義다.
절대적인’기준’이라는뜻이다.
거변적인세상의기준이아니라불변의’하늘기준’이라는의미다.
세번째가진실(眞實).
거짓이없고바르고참된것이다.
성경의진실은aletheia.
참,실재의뜻도있지만,’진리’가그본뜻이다.
참된도리와바른이치,
그타당성이누구에게나인식,인정되는내용이다.
그러나성경의뜻은’하나님의말씀’이다.
예수의모든가르침이기독교의진리다.
그래서aletheia는믿음의내용이된다.

‘여러분이전에는어두움의세계에살았지만지금은주님을믿고빛의세계에서살고
있읍니다.그러니빛의자녀답게살아야합니다.’
오늘의크리스챤들은’빛의자녀들’이다.
주안에빛이라는뜻이다.
모든선과정의와진실의열매를맺을책무가주어진존재들이다.
이세상안에서빛의자녀로산다면이세가지열매는맺을수있다.
그렇다면빛의자녀로산다는것은무엇을의미하는가.
사실은크게어려운문제도아니다.
건전하고,정상적인크리스챤의신앙적삶을살면된다.
주의할것은,건전하고정상적인되려면’성경’만기준하는생활을해야한다.
인간에의해해석된,인간에의해덧칠해진,오랜세월이흐르는동안이끼가끼어
그본래의것이보이지않는,형식이내용을삼켜버린’거짓’을분별할수있어야
한다.
오늘날한국의개신교가배척받는가장큰이유는그’사이비성’이다.
비슷해보이지만진짜가아닌가짜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이가짜라고지적할정도로크게변질됐다.
성경에서멀리떠나갔기때문이다.

지금의우리사회는그어느때보다’빛’에목말라있다.
빛은진리이자또희망이기때문이다.
무릇모든시대에걸쳐종교는가장어려운시기에그빛을찬연하게발해왔다.
칠흑같이어두운밤,길을잃고헤맬때멀리서보이는작은불빛도큰희망과
길라잡이가되는게그런것이다.
경제적으로큰한파를만나모든개인,가정,사회,국가가어려움에직면해있고,
국가를운용해야하는정치는이판사판의수준을넘지못하고진흙탕에빠져죽기
아니면살기로싸우고있다.
그어디에서도국가리더십을찾아볼수없어모두가황당해하고있으며온갖부패와
무질서가검은구름이되어우리사회를짓누르고있다.
사람들의심성은거칠고황폐해져만인이만인을향해쟁투하고있으며애들을올바로
가르치지못해국가의내일을기야하기어렵다.
사회의분위기가찰라적이고,표피적이고,선동적이다.
사람들은양(量)만추구,질(質)의세계를상실했으며돈이주인이되어인간을마구
부리는삭막한세상이됐다.

교회가,크리스챤이’빛의자녀’가되기위해서는적어도세가지를먼저버려야한다.
물량화-物量化,기복화-祈福化,미신화-迷信化가그것이다.
본래이것들은기독교교회와는전혀무관한것들이다.
그럼에도이것들이교회안에스며든것은교회를운용하는사람들의’인간적탐욕’
때문이었다.
이세가자를그대로가지고는종교적기능을할수가없다.
그것들은그본질에서기독교적인것이아니기때문이다.
비본질적인것을버리지않는한교회는기독교가아니다.
단지탐욕스러운인간의집단일뿐이다.
어찌거기에’신앙적기능-빛의기능’이있겠는가.

빛에대한옛사람들이설명은그들이살았던시대가기준이다.
그때는’전기’가없었다.
그래서그들은’등불’을빛으로설명한다.
지금으로비유하자면’촛불’이그것이다.
크리스챤이빛의자녀가된다는것은스스로빛이되어야한다는얘기다.
그빛은’자기를태움’으로서생긴다.
크리스챤이있는곳에는그게어디든어두움,악의세력이물러나게된다.
그때크리스챤이빛으로존재하는방법이언행,즉말과행동이다.
더직접적으로는’일상-日常’이다.
특별하려고할때반드시변고가생긴다.
‘일상에없는것은거짓이다’라는경고가그것이다.
행하는믿음,자기를희생해서더큰것을이루는신앙의세계.그게빛의자녀들의
삶이다.
크리스챤은그리스도라하는분을따르는사람들이다.
지름우리사회는절실하게그들을필요로하고있다.
정말물실호기-物失好機해서는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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