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셋을 서울대에 보낸엄마.

집에 고3자녀가 있는 모든 가정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산다’ 는 말이있다.
사실이 그러하다.
한 가정의 모든힘을 오직 고3자녀의 대학입학을 위해 집중하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한가정, 온가족의 ‘총력전’ 이다.
단선사회는 다양성이 크게부족하기 때문에 모두가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일류대학, 대기업, 높은보수, 잘된결혼, 큰집, 큰차가 모두이 최종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거개의 엄마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 자식에게 매 달린다.
온갖 정보를 위해 뛰어다녀야 하며 아이를 시간에 맞춰 여러학원으로 실어
날라야하고 사교육비의 부족 때문에 안하는 알바가 없다.
글자그대로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래서 헬리콥터맘 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한 엄마가 아들셋을 전부 서울대에 보냈다면 이건 충분히 ‘사건’ 이다.
사실 애 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가끔 이런일이
보도되는 것을 보면 아주 없는일도 아닌것같다.
이제 아들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한 엄마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해 보자.
가장 큰 이유는 이 엄마가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
서다.
전혀다른 방법,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으로 애들을 키워 서울대에 보냈다.
거의 모든 엄마들은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한다.
그게 덜 불안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갖학원으로 밤늦게까지 애들을 뺑뺑이 돌리는것도 경쟁에서 쳐질까봐 조바심
하기 때문이다.
자기철학으로, 자기식대로 자녀를 키우는 엄마는 그래서 찾아보기 어렵다.

기자가 그 엄마에게 물었다.
-알림장을 확인하고 숙제를 했는지 확인하는가.
엄마가 대답한다.
-그걸 왜 내가 하는가.
-엄마가 안하면 누가하는가.
-애들 스스로 해야한다.
그게 그 아이들의 일이잖는가.
-아이가 그러다 수업시간에 준비물을 빼먹을수도 있지 않는가.
-그것도 그 아이들의 몫이다.
엄마가 아이들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 있는 것이 아니잖는가.
비결의 하나가 밝혀진 셈이다.
독립심과 책임감이다.
자기일은 자기가 해야한다는 큰 원칙이 어려서부터 교육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세 아들은 스스로 자기공부를 해서 서울대에 합격했다.
애들 인생을 엄마가 대신 살아줄수 없다는 철학이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녀들을 키워낸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과 크게 다른점이기도 하다.

선행학습에 대해서도 이 엄마는 그 생각이 아주 달랐다.
-다들 목숨을 걸고 선행학습들 시키는데 나는 묻고싶다.
남들보다 먼저 조금 빨리아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빨리 하는 것 보다 끝까지 하는게 더 중요하다.
그래봤자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남들이 하니까 불안해서 하는 것이다.
이 엄마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글도 못떼고 들어간건
그 아이 하나뿐이었다.
선행학습의 폐해를 알았고 자신은 그 길로 가지않았다.
대신 ‘끝까지 가는’ 애들로 키운 것이다.
끝까지 가는 애들이었기 때문에 셋이 모두 서울대에 갈수있었다.
선행학습은 정상적인 커리큘럼을 방해하고 혼란만 야기시키는건 이 조사된바
있다.
이 엄마의 가장큰 특징, 장점은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지금 학원에 안 다니는 학생은 거의없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학원이 담당하고 학교는 그 사실을 인증하는 기관이 된지
오래다.
학교는 결석해도 되지만 학원은 빠지면 안된다.
학원에서 지친 애들이 학교수업시간에 책상에 앞드려 자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풍경이다.
공교육이 붕괴된 나라의 앞날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이 엄마는 아들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과외자체를 시키지 않았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서울대에 갈수 있다는 ‘딴길을’ 실천한 것이다.
공부는 학생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고 그 책임도 철저히 본인의것 이라는
철학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학원에 매달려 있는 엄마들이 반드시 깊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학원은 단지 입시기술을 가르치는 곳일뿐 한 인간에 대한 전인교육은 없다.
그게 장사-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도 하면 안된다.
인간교육은 결국 학교의 몫인것이며 이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이 엄마는 막내가 고3일 때 외국에 나가 1년간 연수생활을 했다.
고3아들은 엄마에게 있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지존이다.
그런 아들을 두고 밖에나가 1년을 지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엄마는 자기의 삶을위해 실제로 그렇게했다.
그 아들도 서울대에 합격했다.
디테일에 매 달리는것과 큰 틀을 짜는 것은 아주다르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가 해결해주는 애들은 사실 아주 위험한, 냐약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크게 기운 배에서 탈출못한 세월호의 애들이 그런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자기일을 할수있는것과 엄마가 해 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인간을 만들고
그 삶도 아주 달라진다.
엄마가 끝까지 살아남아 애들의 인생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면 일찍부터
독립심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다.
그게 부모도 애도 사는 길이다.

세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이 엄마는 서울대 독문과 출신이며 언론사의 기자로
6년간 일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39세의 나이로 이대 대학원에 진학, 여성학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엄마는 그 자신이 엘리트코스를 거친 ‘깬엄마’ 였던 것이다.
우리주변엔 이 엄마와 비슷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엄마들이 얼마든지 있다.
왜 그들은 같은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엄마처럼 살지 못할까.
왜 모두가 똑같이 애들에게 매달려 자기의 인생, 삶도 없이 허우적 거리고
있는것일까.
가치관이 없거나 다르기 때문이며 자기의 정체성, 자기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생각이 없으니 단선사회의 매마른 목표에 매달려 고단하게 살고 있다.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왜 모두가 똑같아 지기위해 그렇게 애쓰고 있는가.

이 엄마의,
‘내가 애들인생을 살아줄수 없다’ 는 얘기는 뒤집으면 애들도 내 인생을 살아
줄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닭쫓던 개 지붕쳐다 본다’ 는게 있다.
허망할 때 쓰는 격언이다.
애써키운 자식일수록 나중에 그 부모를 헌신짝처럼 버리는게 세상이다.
겪어보지 않은사람들은 절대로 모르는 함정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는 단지 애달픈 넋두리일 뿐이다.
애키워 결혼시킨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들은 뜻밖에 많다.
그래서 모름지기 자기인생을 준비할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자기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노후준비’ 는 발등의 불임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대책없는 늙은이’ 가 되어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된다.
은퇴노인 5명중 하나는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지금 애들은 그 부모에게 문안전화도 잘 하지않는다.
제살기에 바쁘고 고달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인생은 미리미리 자기가 준비해야 나중에 가슴과 땅을 치는
불상사를 면할수 있다.

아들셋을 서울대에 보낸 이 엄마도 지금은 여섯손자의 할머니이며 세며느리의
시어머니다.
그런데 세 며느리는 애들을 데리고 매주 시댁에 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며느리들은 절대 부엌에 못들어간다.
할머니가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고부간 갈등, 부엌의 문제를 끊은 것이다.
대단히 개성적인 엄마임을 알 수 있다.
애들은 같아보여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가 아주 다르다.
하늘이 내려준 천부가 그것이다.
애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업(業) 이 되게 진로지도를 해야한다.
그러면 장(직장)이 열리고 돈도 많이벌수 있다.
지금은 모든 분야가 전문가의 시대가 아닌가.
애들인생은 애들이 살고,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살아야 한다.
그걸 상생이라고 부른다.

학원은 학교가 아니다.-yorowon.

3 Comments

  1. 김 수남

    2016년 3월 9일 at 3:05 오전

    네,정말 공감 가는 글입니다.저의 생각 역시 그렇습니다.부모는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그 자체가 최고의 자녀 교육입니다.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성실하게 살게 되니까요.소개해 주신 이 어머니 참 멋지십니다.자녀 키우는 방법에서 저와 닮은 부분이 있어서 참 가까이 느껴집니다.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2. 비풍초

    2016년 3월 12일 at 11:21 오전

    60-70년대에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지금보다는 훨 쉬웠는데요… 세아이 서울대 모두 보낸 집안이 흔했는데요…

  3. 이길영

    2016년 3월 30일 at 8:34 오후

    아주 기분이 좋은 소식이었음. 나도 두애를 키워서 다 결혼시키고 손주까지 보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기가 쉽지를 않다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나도 다행이 아이들이 그런대로 공부를 하여 다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고, 딸과 아들 모두 CC couple로 만나서 결혼하였다. 언제가는 나의 둘째의 공부한 것을 글로 올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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