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류의 사회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회가 있다. 첫째는 정글 (密林) 사회요, 둘째는 스포츠 사회요, 셋째는 심포니 (交響樂) 사회다.  아프리카의 밀림 사회에는 폭력(暴力)과 투쟁(關爭) 의 법칙이 지배한다. 내가 살기 위하여 남을 무자비하게 죽여 버린다. 독사는 개구리를 잡아먹고, 독수리는 독사를 살해한다. 먹느냐 먹히느냐, 사느냐 죽느냐의 살벌한 싸움이 벌어진다. 이와 이, 발톱과 발톱, 폭력과 폭력이 잔인하게 대결하는 비정(非情)과 야만의 사회다.

 

짐승의 사회에는 도덕도 없고, 대화도 없고, 예절도 없고, 양보도 없다. 피비린내나는 무서운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양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다. 짐승은 생긴 구조부터가 폭력적으로 되어 있다. 호랑이의 발톱, 사자의 투쟁력, 황소의 뿔, 독사의 혀, 독수리의 눈, 악어의 이, 말의 달리는 힘, 고슴도치의 피부, 모두 야성(野性)과 폭력의 무기다. 정글 사회는 가장 무서운 하급 사회다. 밀림 사회는 도덕(道德) 이전, 도덕 이하의 무법천지(無法天地)의 세계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는 아직도 동물 사회의 법칙이 잔존한다. 국가간의 침략적 전쟁을 보라. 인종간의 잔인한 싸움을 보라. 자기의 사랑하는 동생을 질투 끝에 죽인 카인의 무서운 피가 우리의 혈관 속에 아직도 맥맥히 흐르고 있다.

 

둘째는 스포츠 사회다. 스포츠 사회는 법(法)과 경쟁(競爭)의 법칙이 지배한다. 투쟁과 경쟁은 개념이 다르다. 투쟁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고 말살하려고 한다. 경쟁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정한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승부를 가린다. 스포츠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룰이 있다. 그것은 준엄한 준법(遵法) 사회다.

스포츠에서 룰을 안 지키면 반칙이 되고, 처벌을 받고, 퇴장을 당한다. 스포츠에는 공정한 심판이 있고 선수는 심판의 판정에 복종해야 한다. 스포츠는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린다. 그것은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사회다. 뛰어난 자가 이기고 열등한 자는 패배한다. 그것은 올바른 질서다. 승자에게는 승리를 축하하는/박수를 보내고, 목에 영광의 금메달을 걸어주고, 머리에 자랑스러운 월계관을 씌워준다. 패자에게는 더욱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스포츠의 선수는 서로 헤어질 때 우정(友情)의 악수를 나누고 재회(再會)를 기약한다. 스포츠는\참으로 아름다운 질서다.

 

그것은 가장 신사적이고, 합리적(合理的)이고, 인간적인 게임이다. 스포츠는 인간이 발명한 멋이 있는 제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포츠를 사랑하고 열광(熱狂)하고 도취하고 흥분한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승자(勝者)와 패자가 있다. 모두가 영광스러운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승자는 기쁘고 패자는 슬프다. 우리는 스포츠에서 공명정대(公明正大)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정정당당하게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이냐.

 

셋째는 심포니 사회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심포니 사회는 협동(協同)과 조화(調和)의 법칙이 지배한다. 교향악의 연주를 보라. 모든 악사의 악기와 소리는 각각 다르다. 바이올린은 섬세한 소리를 내고 첼로는 은은한 소리를 내고 북은 힘찬 소리를 내고 트럼펫은 씩씩한 소리를 내고 클라리넷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피콜로는 가느다란 소리를 낸다. 모든 연주자는 컨덕터의 지휘봉에 맞추어 일사불란 (一絲不亂)하게 움직여야 한다. 여러 악기가 저마다 제 소리를 내되 딴 악기 소리를 방해하거나 침범하지 않고 전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음악이라는 뛰어난 미 (美)를 창조한다.

 

음악의 소리는 탁음이나 소음이 아니고 청음(淸音) 과 화음(和音)이다. 음악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 모두가 승자다. 그것은 공생공화(共生共和)의 세계다. 음악처럼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없다. 악(樂)의 세계는 곧 낙(樂)의 세계다. 한문자의 악자는 원래 고대 중국의 악기를 그린 상형문자다. 나무(木)의 받침대 위에 다섯 개의 방울을 매단 악기다. 그 악기를 두드리며 모두 즐거워했다. 그러므로 악기의 악자는 동시에 즐거운 낙자다. 악 즉(則) 낙이다.

옛날 중국인들이 인간성 (人間性)의 순화(醇化)를 위하여 예악(禮樂)을 강조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음악을 지극히 사랑했던 공자(孔子)는 음악의 세계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라고 했다. 모든 악기는 결코 동일(同一)하지 않다. 저마다 각각 제 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여러 소리가 아름다운 협동과 조화를 이루어 즐거운 음악의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은 개성적(個性的) 존재다. 저마다 제 노래가 있고 제 말씀이 있고 제 빛깔이 있고 제 향기가 있고 제자리가 있고 제 갈 길이 있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한다. 내가 네 길을 가서도 안 되고, 네가 내 길을 가서도 안 된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오도(吾道)는 일이관지(一以貴之)라고 공자(孔子)는 갈파했다. 네 갈 길을 열심히 가라. 우리가 이 세상에 건설해야 할 가장 이상적(理想的) 사회는 어떤 사회냐. 심포니와 같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질서요, 인간다운 사회다.

<안병욱교수님의 사람답게 사는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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